'듄'의 오리엔탈리즘

영화감상평

'듄'의 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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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의 오리엔탈리즘 (미르 알리 호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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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3 QUARKS DAILY / 2021년 10월 18일
https://3quarksdaily.com/3quarksdaily/2021/10/the-orientalism-of-dun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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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 알리 호세이니 Mir Ali Hosseini는 직업상 인문주의자이다. 수년 동안 그는 테헤란, 프라이부르크, 루벤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이론적, 정치적, 문화적 비평을 웹과 때로는 인쇄물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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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에서는 대부분의 영화관이 한동안 문을 연 상태다. 레스토랑과 바에서 몇 번 실내에 있은 후 낯선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즐거움에 서서히 다시 이끌렸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한 번 영화관에 발을 들일 적절한 순간처럼 느꼈다.

약 1년 반만에, 나는 영화관으로의 복귀가 서사시적이기를, 문자 그대로 서사시적이기를 바랐다. '듄 Dune'의 시놉시스는 정확히 그것을 약속하는 것 같았다:

신화적이고 정서적으로 충만한 영웅의 여정인 '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운명을 타고난 똑똑하고 재능 있는 청년 폴 아트레이드 Paul Atreides가 자신의 가족과 동족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프랭크 허버트 Frank Herbert의 소설 '듄' (1965)이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드니 빌뇌브 Denis Villeneuve의 2021년 각색을 보기로 했다.

나는 봉쇄 해제 후의 첫 영화관 경험이 은색 스크린에 완전히 다시 매혹되는 것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를 골랐을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것에 대해 읽는 것을 피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리뷰를 읽은 적은 없지만, 내가 접한 모든 리뷰 제목들은 훌륭한 작품, 어쩌면 걸작이 나의 관람을 기다리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글쎄, '듄'은 나를 놀라게 했다 - 비록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였지만.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맥락을 좀 더 설명해야겠다: 좋은 친구와 함께 영화관에 갔다. 우리는 둘 다 유럽에 살고 있는 중동인이며 둘 다 인문학 배경을 가지고 있다.

'듄'의 이야기는 프레멘 Fremen이라는 신비한 원주민의 고향인 황량하고 황량한 모래 행성 (그래서 "듄")인 아라키스 Arrakis에서 펼쳐진다. 아라키스 행성은 우주에서 가장 귀하고 극도로 희귀한 자원인 "스파이스 spice"를 공급한다. 이 자원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굽히며 성간 여행에 필요한 인간의 잠재력을 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종의 마약이다.

'듄'의 "훌륭하고 재능있는" 영웅인 폴은 고귀한 혈통의 백인이며 아트레이드 Atreides 가문의 후계자이다. 폴의 아버지인 레토 아트레이드 공작은 제멋대로인 프레멘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데 실패한 하르코넨 Harkonnen 가문에서 아라키스를 인수하라는 은하제국 황제의 명령을 받았다. 폭력으로 통치하는 잔인한 하르코넨과는 달리 아트레이드 공작은 프레멘과 동맹을 맺으려 한다.

영화가 시작된 지 불과 몇 분 만에 우리는 플롯이 때로는 코믹하게 세계사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트레이드 가문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외모, 이름, 생활 방식 등 서유럽인이다. 반면 하르코넨 가문은 소련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그들의 잔혹한 통치 방식은 차치하고, 가문의 수장은 아마도 가장 전형적인 러시아 남성 이름일 블라디미르 Vladimir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라키스가 있다 - "동양"의 석유와 광물이 풍부한 땅의 허구적 등가물.

처음부터 이 모든 요소들은 그 영화가 사이언스 픽션 작품이기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이탈시켰다. 물론, 이 말로 나는 사이언스 픽션이 현실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우리의 짜증은 듄의 현실 지시들/준거들 references이 대단히 조잡하고 정교하지 않다는 것에 의해 야기되었다.

그렇다 해도, 영화는 여전히 제국주의적 경쟁에 대한 훌륭한 비판으로 판명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결국 영화가 각색된 소설은 냉전의 절정기에 집필되었다.

그렇지 않았다.

영화가 계속될수록, 우리는 스크린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인물들은 평면적이었다. 스토리는 매력이 없었다 felt unengaging. 그렇지만 최악의 문제는 프레멘의 묘사에서 우리가 느낀 심한 불편함이다.

프레멘은 피부가 거무스름했다. 사이언스 픽션적인 요소를 벗겨내면, 그들의 의상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전통 의상에 대한 다른 할리우드 묘사와 거의 똑같다. 프레멘 인물들 중 한 명인 차니 Chani는 히잡 같은 것을 입기도 했다.

나와 친구가 완전히 포기한 순간은 아라키스에서 폴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것 같은 한 무리의 프레멘들이 "Lisan al-Ghaib, Lisan al-Ghaib"를 외치며 그에게 인사했을 때 왔다 - 그리고 그때 우리가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이 깨졌다: 프레멘은 문자 그대로 아랍어를 구사했을 뿐만 아니라 백인인 폴은 시아파 메시아로 판명되었다! 바로 이 순간, 내 친구와 나는 마치 갑자기 누군가가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발언을 할 때처럼 완벽하게 동기화된 방식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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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une.fandom.com/wiki/Lisan_al_Gaib
Lisan al Gaib는 메시아에 대한 프레멘 용어이다. 이 용어는 "혀"를 의미하는 아랍어 "لسان"(Lisan)와 "숨겨진" 또는 "보이지 않는"을 의미하는 "الغيب"(al Gaib)에서 유래했다. 이슬람의 맥락에서 "الغيب"(al Gaib)은 '실재의 보이지 않는 차원'을 의미하고 "보이지 않는 자의 혀"는 "이방인"이 아니라 "예언자"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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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멘의 묘사에서 문제적인 것은 그들의 통상적 generic 외모나 언어뿐만이 아니다. 프레멘은 야만적이고 부족적이다. 그들은 개성을 중시하는 유럽적 아트레이드인들과 달리 삶에 초연하다 indifferent to life. 프레멘은 현명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들의 지혜는 지식을 적극적으로 추구한 결과가 아니라 그들의 열악한 생활 조건과 "스파이스" 소비의 신비로운 부산물이다. 이 고정 관념들 stereotypes은 너무 교과서적이어서 듄은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가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이라고 불러 유명해진 것의 세심한 리버스 엔지니어링 reversed engineering의 결과처럼 느껴진다.

예술에서 고정 관념에 기대는 것에 그 자체로는 잘못된 것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아마도 폴과 아트레이드는 프랑스 문학 이론가인 제라르 주네뜨 Gérard Genette가 이야기의 "초점화자 focalizer"라고 불렀던 이들이리라; 즉, 달리 말해, 우리는 그들의 문제적 시각을 통해 프레멘을 본다. 어쩌면 '듄'은 - 매우 불필요하게 우회적인 방식으로라도 -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적 열망들을 비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듄'은 정치적 예술이 아니다. 시청자의 매료를 유지시키기 못한다 it fails to keep the viewer engaged 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다. 서사적인 이야기는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entertaining 한다. 식민주의를 둘러싼 담론들을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듄의 오리엔탈리즘적 지시들/준거들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 영화를 즐기는 것이 불가능해 진다.

나는 나 자신이 이 사안들에 과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백인 남성이 쓴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인종주의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나는 작품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톨킨 Tolkien의 '반지의 제왕'에 인종주의적 지시들/준거들이 있지만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과 피터 잭슨 Peter Jackson의 각색이 여러 면에서 훌륭하고 철저하게 재미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듄'에서 이야기의 핵심이 오리엔탈리즘적 통념들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듄'에 예술적 장점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을 감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한 기괴한 준거들/지시들을 기재하지 않을 영웅적 능력이 없다면, 또는 단순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면, 나는 '듄'을 관람하지 말것을 권하겠다. 봉쇄가 풀린 후 첫 번째 영화 관람으로라면 특히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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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7 oO지온Oo  
간만에 칼도님 글을 다시 보는군요.  새해들어 건강은 어떠실지 여쭤봅니다.
당연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계속 칼도님의 게시글은 흥미롭게 봤었지만, 기억해 보면 댓글은 잘 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군요.
어쨌든, 글 다시 보게되어서 반갑습니다.
2 칼도  
따뜻한 말씀 고맙습니다. 산 날보다 살 날이 적어진 나이가 좀 지난 다음부터는 몸이 예전같지 않지만 이럭 저럭 별 탈 없이 살고 있습니다. 평안하고 즐거운 새해가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