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하자드: 무한의 어둠 (2021)

영화감상평

바이오 하자드: 무한의 어둠 (2021)

2 칼도 0 452 0

바이오 하자드: 무한의 어둠 (2021)
https://www.imdb.com/title/tt1317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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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고 숭고한 대의명분을 위해 테러를 저지르는 악당은 이제는 클리셰이다. 제이슨은 이 세계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대중들이 실감하게 하고 싶어한다. 권력이 배후에 있는 끔찍한 폭력과 음모를 언론에 폭로하는 것 정도로는 아무 효과도 없다고 믿는다. 나로서는 상당히 동감이 되는 인식이다. 이 세계의 가장 나쁜 점은 이 세계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이 세계가 그 끔찍함을 댓가로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편리와 쾌락을 누리는 사람들이 전혀 아닌 이들 사이에서도 말이다. 그 괴물스러운 세계를 살짝 미화시켜주고 적당히 순화시켜 줄 뿐인 언론같은 장치들/기구들을 그 세계를 본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동원할 수 있다는 생각은 소박하다. 그러나 제이슨은 자신의 그 래디컬한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 동료를 서슴없이 해침으로써 그 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한, 끔찍하지 않은, 평화로운 세계의 건설이라는 대의명분을 저버린다. 물론 그렇게 해치지 않았어도 제이슨이 성공했다면 테러가 수많은 사람들을 휘몰아쳤을 것이다. 즉 이러나 저러나 제이슨의 결단은 무지하다는 죄밖에는 없는 이들의 희생을 수반한다는 의미에서 자기모순적이다. 그러나 제이슨을 자신을 믿고 자신과 행동을 같이 했던 동료를 주저없이 해치는 인물로 묘사하는 것은 제이슨을 자기모순의 체현 이상인 존재, 악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 묘사가 의도하는 것이 제이슨의 그 래디컬한 신념이 반영하고 있는 그 답답하고 무거운 현실로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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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것을 건드려 놓고는 아리송하게 얼버무리는 것은 대중적 서사물들이 흔히 하는 짓이다. <무한의 어둠>은 노골적으로 미국을 비난한다. 이윤을 그 무엇보다도, 그러니까 국익보다도 중시하는 자본가들과 한편에 서서 중국을 악마화하고 그것을 통해 미중대결을 부추켜 그 사이에서 이윤을 챙기려는 국방장관이 등장하는데, 미국의 국방장관인데다가 그 미국은 그 악마화 음모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들이 그 악마적인 것의 끔찍함을 실감하게 할 결심을 한 제이슨이 "그런다고 아무 소용 없어 이 나라의 추악한 과거도 현재도 바꿀 수 없어 잘 알잖아! 진정한 공포를 보여주겠어"라고 시원하고 정확하게 단죄하는 미국이다. 텔레비젼 토론 장면을 통해서는 미국이 페남스탄에서 하려는 것은 페남스탄에 민주주의와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전술적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임이 시사된다.

중국을 겨냥한 그 악마화 음모는 별 설득력이 없고 CIA 국장이나 안보보좌관인 듯 보이는 인물이 그 별 설득력 없음을 강변하지만

더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양국 관계는 좋았잖아요
대통령님이 이 연설문의 한마디라도 하신다면
방울뱀을 건드리는 꼴이
될 겁니다!
게다가 세계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요!
전쟁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고요

대통령은 국방장관의 삯대질에 가까운 요구에 넘어가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연설을 할 결심을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주인공인 레온이 앞으로 하게 될 일이 제이슨의 시도를 저지하는 동시에 그 악마화 음모를 폭로해 그 연설도 저지하는 것임을 즉각 알게 된다. 마침 레온은 대통령의 딸을 구해준 적이 있어 레온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이 대통령은 언제부턴가 미국의 텔레비젼 드라마와 영화들에 등장하기 시작한, 실제의 미국 대통령보다 더 순후하고 더 정직한 허구적 미국 대통령의 계보를 잇는다. 정확히는, 근본은 바로 서있고 성정은 올바른 대통령이다. 이를테면 평소 미중대결을 부추키는 발언을 많이 해온 국방장관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샤프하지는 않아서 국방장관의 무리한 요구에 넘어가기는 한다. 이 적당히 이상적인 허구적 미국 대통령들의 극중 역할은 아주 분명하다. 한편에서는 막대하고 끔찍한 악을 개인들보다는 구조 - 자본의 논리와 미국이라는 국가 - 의 탓으로 돌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렇게 타락하지 않은 미국 최고 권력자를 보여줌으로써 희망이 아예 없지는 않음을, 악이 사실은 그렇게 근본적이고 구조적이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레온이 자신에게 부과한 그 임무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것을 건드린, 깊은 진실을 알고 있는 제이슨의 잔인한 행동을 부각시키는 것은 그 부과와 성공을 당연한 것이 되게 한다. 물론 <무한의 어둠>이 대중적 서사물이고 제작진과 각본가는 일본인이라고 해도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방영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도 미국 대통령은 샤프하지는 않아도 근본은 바로 서 있고 성정은 올바라야 하며 레온은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무한의 어둠>이 근본적인 진실을 건드리고 얼버무리는 것에서 끝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우선 그 적당히 이상적인 미국 대통령의 훈훈한 연설은 어딘가 공허하게 울린다:

또한 탐욕스럽고
평화를 위협하는 이들이
설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미국은 앞장설 것입니다
세계의 자유를 향한 길을
밝히면서 말입니다

내가 유난히 반미적인 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무한의 어둠>이 벌여놓은 것들 때문이기도 하다. 어둠이 무려 무한하다고 해놓고, 미국 이익 중심주의와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굴러가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그 어둠의 실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해놓고서는 생각 바른 대통령의 이 정도 감동주의적 연설로 그 의심을 해소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국방장관이 죽은 것 외에는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무한의 어둠>의 훌륭한 점은 의도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결말부에서 레온의 태도를 해소의 편에 놓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레온이 제이슨을 완전히 해치우지 못했다고 말해도 마찬가지이다. 레온은 제이슨이 죽어가면서 자신에게 한 다음과 같은 외침에 흔들린 것 같이 행동한다. 언론에 그 악마화 음모를 폭로하는 것을 포기한다:

끝이 아니다
네가 있으니까
네가 증인이다
이 공포의 증인
그리고 네가 퍼뜨릴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알게 되겠지
진정한...

언론으로 대표되는 통상적이고 점잖은 진실전파 장치로는 대중들에게 어둠의 무한성을 실감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레온이 테러를 통해 그 실감을 유도해야 한다는 제이슨의 믿음에 동화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레온은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레온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자신이 "영웅이 아니라고,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믿는 한명의 유한한 개인으로서의 레온이 말이다. <무한의 어둠>은 물리적으로 고급지고 세련되게, 스펙터클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에서는 훌륭하지 않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려고 하고 그 문제로부터 감상자들의 눈을 다시 멀어지게 하려는 무마 술책을 거의 의도적으로 대충 구사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는 훌륭하다. 즉 <무한의 어둠>은 대중적 서사물이 그럴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비판적이고 소박하지 않다. 물론 이것을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가 계속되게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시니컬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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