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Catch a Killer (2023)

영화감상평

To Catch a Kill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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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보신 후에 읽으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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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Catch a Kill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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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를 무척 힘들게 한 영화를 보았다. 징그럽도록 리얼하고 심각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이다. 특히 사회/문명/현실 부적응자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일품이다. 그 연기가 구현한 딘이라는 인물은 며칠 전 감옥에서 죽은 카진스키의 완벽한 정신적 아들같은 아우라를 풀풀 풍긴다. 다른 점은 훨씬 더 무자비하다는 것뿐이다. 새해 맞이 불꽃 놀이가 한창인 동안 자신이 무단 주거하고 있는 빌딩의 한 사무실에서 저격총으로 사람을 무려 29명이나 살상해놓고 세상이 자신의 그 행동을 왜 납득하지 못 하느냐고 얼굴을 찌푸리며 반문한다. 그에게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세상에 안주해 있는 모든 이들이 죽어 마땅한 이들이다. 잡힐 수도 있으니 자제를 할 뿐이다. 권력자들과 부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책임을 더 묻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뀔 리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복수심에서, 그리고 일부 사람들이라도 자신의 그 행동에 충격을 받고 사회/문명/현실에 대해 근본적 회의에 빠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영화는 수류탄과 폭탄까지 써가며 추가로 40명 정도를 더 죽이는 그를 채식주의자로 그린다. 그가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도살장에서 일한 경험 때문이다. 공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일하던 그는 어느날 생생히 살아 있던 소들이 해체되어 커다란 고기 덩어리들로 변하는 공정의 전 과정을 따라가 본다. 영화는 그가 보았을 장면들을 일부 보여준다. 불안해 하는 모습으로 모여 있는 소들은 물 세례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도살 공정에 밀어넣어진다. 껍질이 벗겨지고 몸통이 길게 갈라지고 내장이 쏟아진다. 몸통만이 아니라 살점은 다 저며지고 왕방울같은 두 눈알만 불거져 있는 머리들도 줄줄이 매달려 있다. 이 비주얼은 그가 기계적인 민첩함과 냉정함으로 사람들을 살상하는 장면, 그의 최초의 대량살상의 희생자들인 29명의 시신이 줄줄이 누워있는 검시실 장면과 아울러 시각적 충격을 준다. 그는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죽음이라는 인위적 운명을 처분받는 소들과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하면서 매일같이 아무 생각없이 그 인위에 가담하는 우리 거의 모든 보통 사람들 일부의 '행동을 정지'시킨 것 뿐이지만 영화는 그 두 죽음들이 똑같이 슬프기 짝이 없는 죽음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를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어느 정도 공감하는 인물을 두 명이나 등장시킨다. 그 중 한 명은 엘레노어라는 여주인공이다. 경찰이 되기 전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했었고 온갖 마약도 다 해보았다.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거짓을 싫어하기 때문에 FBI 입사 면접에서 자신의 그런 모습을 감추지 않아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살아남는다. 유능하고 책임감 강하지만 그를 잡는 데만 관심있는 그녀의 상관 러마크는 살아 남지 못한다. 다른 한 명은 러마크의 친구인 개빈이다. 그는 학자인 것 같다. 그는 세상이 엉망이 되었고 미국같은 나라의 시스템이 세상이 그렇게 된 데에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물질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고 '사람 좋은' 사람이다. 자신과는 생각이 다른 러마크와도 사이가 좋다. 생각은 바르지만 아무런 실질적 행동을 못하고 입바른 말만 하는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화는 엘레노어가 수영을 하는 장면을 두 세번 보여준다. 딘의 그 살상 행위만큼이나 민첩하고 기계적이다. 그 장면 앞에 그녀가 힘들어 하는 모습이 배치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장면은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을까?
물론 딘은 살아남지 못 한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리 없다. 애초 다른 사람들의 죽음은 가볍게 여기지만 자신의 죽음은 무겁게 여기는 인물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딘같은 인물들이 계속 등장할 것임을.. 근 미래의 어느 순간에라도 등장할 수 있는 제 2의 딘은 저격총과 수류탄과 폭탄 이상의 것을 동원할 것이라는 것을..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고독한 인간의 문명을 향한 끔찍한 테러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문명의 쌍둥이다.
다음은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이 집약되어 있는 대사들이다. 오역과 누락이 있어서 살짝 고쳤다.
1
개빈: 범인은 여기 출생이 아니고 자신이 자랐던 곳이 끔찍한 곳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세상 거의 대부분도요. 그 엉망인 상황에 대한 책임이 반 이상 이 나라에 있다고 믿는 것 같네요.
러마크: 이런, 당신 고소 공포증 아니면 내가 용의자로 찍었을 거야. 무서운 건 당신도 상당 부분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거고. 미국은 나치를 막았어. 달에 발자국을 찍고 인간 유전자 구조도 밝혔고 화성에 우주선을 착륙시켰지. 여기서 2억 2천 5백만 km 떨어진 곳에..
개빈: 그러면서 우리의 브랜드들, 우리의 플라스틱, 우리의 왜곡, 우리의 과장을 세계 도처에 착륙시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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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 신용카드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문자 그대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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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빈(엘레노어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보고타에 강의하러 갔었죠. 거기 커피가 일품인데 어디 데려가게요? 스타벅스요. 온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걸 가져가 더 나쁜 것으로 만들어 돌려주죠. 이득을 노리고 말이죠. 친구라고 부르면서 그 짓을 하죠.
러마크: 그 이익 덕에 세금을 내고 그 세금으로 연구 개발을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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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딘: 엄마보단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엘레노어: 들어봐요 딘, 전 엘레노어예요.
딘: 하지 마. 경찰 학교에서 배운 헛소리 나한테 하지 말라고. 나 그런 놈 아니니까. 이름 불러주면서 공감해 주면 그냥 잡혀 주는 약에 쩐 얼간이 아니야. 설탕이나 꾸러 온 게 아니고 날 죽이러 왔잖아. 아닌 거 아니까 위하는 척 하지마. 다른 사람처럼 거짓말하면 고통 없이 죽지도 못 해.
엘레노어: 틀렸어.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공감할 수 있다고.
딘: 드디어, 200명을 죽였더니 드디어 관심을 가지네. 진전은 좀 있나?
엘레노어: 여기 왔잖아아. 죽는 건 무섭지 않아. 죽고 싶을만큼 내 자신이 미울 때도 있고 가끔은 다른 사람들을 지도에서 싹 날려 버리면 날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이래봐야 사람들은 안 아파. 당신은 오락거리야. 전광판의 시계고 클릭 몇 번에 평가하면서 더 원하지. 액션과 피를. 감옥에 가서 이야기를 바꿔. 왜 당신이 총을 들고 사람들을 쏠 수밖에 없었는지 모두를 납득시키면..
딘: 그게 왜 납득이 안 되지? 사람들은 너무 시끄러워. 해가 바뀔 때마다 고요와 어둠이 적인 것처럼 불꽃놀이 하면서 소리나 질러대지. 동굴로 좀 돌아가라고. 밤에는 불빛이 너무 많아서 별도 안 보여. 내 시간이 필요해. 내 공간도. 사람들은 다 가지려고 해. 망할 놈들. 이게 재미있다면 멍청하거나, 졸리거나 둘 중 하나겠지. 하루에 12시간을 다른 사람 똥 닦아내고 녹색 종이 몇 장 받는 거? 난 안 해, 더 이상은.
엘레노어: 난 당신이 무슨 말 하는지 다 알아. 이런 대화를 당신이 선을 넘기 전에 했다면 좋았을 텐데. 오늘 도살장에 갔었어. 라모나라는 여자를 만났지. 당신 좋아하는 것 같던데.
딘: 그래. 괜찮은 사람이었지. 하지만 거긴.. 어느 날 아침에 야간 근무 끝나고 소 통로를 되짚어 가 봤지. 버거 구역을 시작으로 절단 구역을 지나면서 소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자르고 머리에 볼트가 박히는 것도 봤지. 그러고 트럭을 따라 농장으로 갔어. 담을 뛰어 넘고 호수 주변을 걷다보니 소들이 있더군. 대단했어. 마치... 스스로의 존재에 감사하는 것 같았지. 변화를 원하지도 진화를 원하지도 않고 그냥 거기 있고 싶어했지, 숨 쉬면서. 살다가 죽고 그 다음 분해되어 전체로 돌아가는 것. 우리가 원하는 건 그거 아닌가?
엘레노어: 그냥 사라지는 게 어때? 목장의 소처럼 살 수 있는 곳이 있을 것 같은데..
딘: 아니, 어딜 가든 주인이 있어. 어딜 가든 돈이 있어야 하지. 어딜 가든 사람들이 정체를 알고 싶어하고 늘 확인하고 질문하고 감시하지. 이젠 드론도 있고 우주 밖에서 위성으로도 감시해. 그냥 이 지구 전체가 빌어먹을 감옥이야. 왜 내가 너희 규칙을 따라야 하지? 나는 돈 버는 방법도 모르고 선거 이기는 방법도 몰라. 그러나 누가 진짜 힘을 갖고 있지? 나는 천 피트 떨어진 곳에서 생과 사를 결정하지. 평화를 찾긴 글렀지만 복수는 할 수 있지.
엘레노어: 당신은 복수가 필요한 게 아냐.
딘: 그럼 뭔데? 사랑?
엘레노어: 그래. 사람은 너무 학대 당하면 좋은 기분이 뭔지도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어. 기쁨으로 이어진 다리가 타 버린 거지. 하지만 다시 지을 수 있어.
딘: 아니, 난 너무 늦었어. 기차는 이미 놓쳤고 애써준 건 고맙다. 걱정 마 다음은 없으니까. 널 괜히 살려둔 건 아냐. 날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그렇게 해줘. 난 저기 가서 엄마 옆에 눕고 싶어. 아이였을 때처럼 안고 싶어. 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 난 무척 지쳤으니 금방일 거야. 그럼 내 머리를 쏴. 내 시체가 뉴스에 퍼지는 건 싫으니 휘발유 통 들고 우리 시체에 부어서 불을 붙여. 잘 구워지면 친구들 불러서 전리품 챙기면 돼. 됐나? 엘레노어?
엘레노어: 알았어 딘, 성심성의껏 죽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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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20 zzang76  
영화가 좀 어둡고 찝찝한거같더라구요. 그냥저냥 봤습니다
37 하늘사탕  
세세한 감사평 감사합니다
S 푸른강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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