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 타르코프스키)

영화감상평

<솔라리스>(1972, 타르코프스키)

4 엑스트라 0 287 0

타르코프스키의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광활한 자연과 인간의 유려한 조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영화에는 넓게 트여진 자연에서부터 인간의 심연에 이르기까지 롱테이크를 이용한 시퀀스라든가 아니면 한 화면에 이를 결합시키는 미장센이 늘 함께 한다. 아마도 이러한 타르코프스키의 의중을 가장 잘 담아주는 것이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 브뤼겔(혹은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이다.


아주 멀리 익스트림 롱숏에서부터 가까운 미디엄숏 내지는 클로즈업까지를 한 화면에 배치하는 구도, 먼 곳에서는 사람들이 오글거리고 그것과 단절된 또는 연속적인 인물이 주제의 무게감을 채우는 구도, 이것이 타르코프스키의 전매특허인데 그는 이러한 구도를 브뤼헐에게서 채용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타르코프스키의 추종자를 자처하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영화 <멜랑콜리아>에도 이 그림이 등장한다.)


그런데 SF 영화 형식을 가진 <솔라리스>에서는 무대가 폐쇄된 공간이기 때문에 광활한 자연을 등장시키기가 어려워 이러한 특유의 구도가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에서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을 다이렉트로 보여준다. 그것도 구석구석을 훑으며 무려 2분 30초 정도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브뤼헐에 대해 구도자적인 태도이고, 어찌 보면 민망스러울 정도의 오마주이다.


영화 <솔라리스>의 결말은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일상적인 문법과 달리 반전 내지는 충격이다.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한계 때문인지 다소 어설프게 표현되기는 했지만, 솔라리스에서 귀환하여 아버지를 찾아간 주인공의 집이 결국에는 똑같은 솔라리스라는 결말은 쉽게 말하면 매트릭스의 변주라고 할 수 있고 철학적으로 말하면 주관적 관념론의 변종이라고 할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이 어떤 힘에 의해 끌어올려져 원자가 아닌 중성미자로 물질화되어 세상을 구성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좀더 소박하게 말해서, 인간은 기억의 침전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래서 인간의 삶이란 결국 그 기억으로 자신을 구성하여 스스로 자신임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타르코프스키의 다른 영화들이 담고 있는 영원과 숭고에 대한 끝없는 애증과는 약간의 거리감을 주는 영화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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