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등장하는 홍상수

영화감상평

<소설가의 영화>에 등장하는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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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수 자신에 대한 유사 다큐멘터리 


영화 <소설가의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 제작, 연출, 촬영 등등 대부분이 홍상수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를 덧붙일 필요가 있다. "주인공 : 홍상수"가 그것이다.


이 영화에는 3명의 홍상수가 등장한다. 영화 속 영화감독(권해효 분)은 홍상수의 일면을 담고 있다. 그가 "최근의 영화가 달라졌다"라는 말에서 그것을 말해준다. 홍상수의 최근 영화는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을 바라볼 뿐이다. "솔직하게, 더욱 솔직하게". 홍상수는 이것만을 유일하게 붙들고 늘어진다.


영화의 주인공인 소설가(이혜영 분)도 또 다른 홍상수다. 영화 속에서 소설가가 만들려는 영화는 곧 이 영화 자체와 합치된다. 실제 영화의 크레디트와 소설가가 만든 영화 속 영화의 크레디트가 교묘하게 엉겨 붙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소설가가 요즘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을 너무 과장해 왔다"는 자기 고백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홍상수 자신의 고백이며 자신의 영화가 최근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진짜 홍상수가 있다. 물론 화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 속 길수(김민희 분)의 남편이며 동시에 실제의 김민희의 남편이다. 여기서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을 준다. 주인공 소설가가 자기가 만들려는 영화를 설명하자 촬영과 편집을 담당한 김민희의 조카(하성국 분)는 "그러면 이건 다큐인가요?"라고 물어본다. 이렇듯이 이 영화 <소설가의 영화>는 마치 등장하지 않는 홍상수 자신에 대한 다큐라고도 말할 수 있을 법하다.


홍상수의 예전 영화에서 인물들은 흐느적거리며 서로 엉겨 붙는, 그러면서 느물거리게 자기 자신의 욕망을 발산하는 속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의 영화, 특히 이 <소설가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마치 단단한 호두와 같다. 서로 부딪히며 끊임없이 달그락거리지만 한 번도 자신의 속을 열어 내보이지 않는 단단한 호두. 이것이 홍상수의 인간탐구의 결론일런지 모르겠다.


카메라는 꼼짝 않고 고정되어 있으며, 롱테이크가 점점 더 길어진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홍상수와 대화를 계속해 나간다면 좀처럼 눈길과 정신을 놓을 여유가 없다. 단지 바라건대 홍상수의 "나에게 솔직히!"라는 구호가 세상을 향한 고슴도치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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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37 하늘사탕  
감사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