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로서의 증상, 서부극으로서의 폐허

영화감상평

좀비로서의 증상, 서부극으로서의 폐허 <The Chase, 1966>

13 리시츠키 0 579 0

Directed by Arthur Penn    
Writing Credits  Horton Foote     ...     (novel)
                      Horton Foote     ...     (play)
                      Lillian Hellman     ...     (screen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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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호러버전은, 로메로의 <시체들의 밤, 1968>인가. 그러나 50년대 미 남부를, 알레고리로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재현한

<더 체이스, 66>의 적나라함은 더욱 공포스럽다. 영화는 미 남부 텍사스, 마을의 모든 경제권과 치안권 그리고 문화를 관장하는

석유재벌 발 로저스의 생일인 토요일을 배경으로 한다. 배경이 상징하듯 공권력과 도덕률이 부재한 상태에서,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계급에 의해, 인종문제에 의해, 또 각자의 욕망에 의해 증상을 앓는 듯하다. 사채업하는 좀비, 아첨하는 좀비, 술취한 좀비,

바람 피는 좀비, 사랑해달라고 애걸하는 좀비, 살인하는 좀비, 린치하는 좀비, 매카시즘 좀비, 인종차별하는 좀비, 찬송가 부르는

좀비 등, 감독은 50년대 미국 남부의 공기를 그대로 재현해낸다. 이들에 있어 이성과 도덕은 공백상태이기에, 폭력과 쾌락만이

남게되는데, 이는 물론 50년대 미국의 모순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광기의 밤, 말그대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좀비떼가 되어, 기어이 레드포드를 죽이고야 만다. <시체들의

밤>에서 주인공 흑인이 이유없이 죽듯, 레드포드 역시 돈을 홈치지도 살인을 하지도 않았다. 이로써 좀비는 미국 고유의 장르임이

천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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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쩌면 고전 서부극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난폭하게 뒤집는 것이기도하다. 정의로운 보안관이 마을 외부에서 오는 인디언이나

악당에 의해서 고난을 당하고, 후에 이들을 물리치고 마을의 정의와 문명을 지킨다는 신화는, 감독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다.

사실 고전 서부극은 말그대로 신화일뿐인데, 영화 결말에서 악당을 물리치고 다시 찾은 마을의 문명의 평행상태는 결코 정의롭지도

평화롭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부영화는 늘 바로 거기서 끝나버린다. 그래서

<더 체이스>는 결말 이후부터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 왜냐면, 외부 악당을 제거했다해도, 마을 내부의 실제 모순은 은폐되었을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며, 그 위장된 잠시 동안의 내부의 정의와 평화는, 악당이 주기적으로 침범하는 시간차 만큼의 간격

동안만의 정의와 평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악당은, 늘 외부에서 내부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침범해야하며, 그것으로서 마을의 정의와

평화가 이뤄진다는 아이러니가 늘 발생하게된다.

그렇다면, 외부의 악당이 내부를 침범하지 않는다면 마을은 어떻게 되는가. 내부 자체가 악당이 되면된다. 참으로 미국의 50년대스런

현상이랄 수 있는 이 마을사람들은, 석유재벌을 기점으로 계급별로, 직급별로, 인종별로, 성별로, 나이별로 수직적으로 직능화된 내부

모순들이며, 이들 내부는 또다른 내부의 타자를 만들어낸다 (말론브란도가 린치를 당하고, 경찰서를 기어나와 줘터진 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샷/역샷에서, 감독은 내부폭력의 50년대 미국의 아이러니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모순을 온몸으로

체현하는, 레드포드(도망자), 말론브란도(보안관), 래스터(흑인, 폐차장 직원)는 끝내 죽거나 린치를 당한다. 심지어 초등학생조차

레드포드를 죽이려 혈안이 된다.



이쯤되면 <보니와 클라이드, 67>는 대단히 얌전한 뉴웨이브로 보일정도다. 아서 펜은, 그 전 해의 <더 체이스, 66>를 통해, 백인들의

정의와 평화, 그 내부를 치열하게 추적한다. 그리고 린치와 학살로 얼룩진 광기의 미국을 회복불능의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에필로그에서

말론브란도가 떠날 때의 부감샷, 마을에는 아무도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 헐리우드 뉴웨이브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LMDb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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