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9점] 헝거(Hunger, 2008)

영화감상평

[리뷰: 9점] 헝거(Hunge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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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둔 사회극으로서 아름다운 영화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

평점 ★★★★☆


<헝거>. 일단 나는 이 영화가 바탕을 둔 실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영화를 보고서야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조금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스티브 맥퀸 감독은 "보비 샌즈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맥퀸 감독이 영국인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되려 그 단어의 보편성을 만들어낸다. 아일랜드 국민이라는 특수한 집단이 아닌 마치 전세계가 기억해야 하는 인물이라는 듯 말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 1981년 아일랜드 단식 투쟁을 다루고 있는데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배경이 어느 정도 바탕이 되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영화 하지만 영화는 인물에 대해 거시적으로 바라보면서 사건을 이해하라고 울부짖지는 않는 것 같다.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실제 인물 ‘보비 샌즈’를 바라보는 데 있어 어떠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인지 영화를 보는 동안은 가늠하기 힘들다. 부차적인 설정들로 어느 정도 유추는 가능하지만 그러한 의도적인 정보의 부재는 마치 배경 지식들이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스티브 맥퀸 감독은 그러한 의식적인 해설은 되려 영화에 치명적인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회극에 주관이 지나치게 개입된다면 자칫하면 인물을 전시하여 선동의 발판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념이 나뉘어진 사회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이것은 많은 영화들이 범하는 실수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헝거>는 그러한 함정을 미리 예상한 듯, 인물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한다.


영화는 인물에 대해서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평가하지도 않으며 주관적인 시선으로 인물에게 동화되지도 않는다. 다만 교도소 내의 인물들을 끈질기게 관찰할 뿐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절제되고 건조한 시선이지만 카메라에 담기는 인물의 시선은 매우 다채롭다. 그렇게 맥퀸 감독은 어느 한 이념에 쉽사리 동화되지 않으며 결국엔 거시적인 시선과 미시적인 시선을 동시에 겸하기에 이른다. 사회의 단면을 교도소라는 한정된 공간으로도 풍부하게 표현해내며 그러한 것은 ‘보비 샌즈’라는 개인에게 정확하게 투영되어 한 개인의 신념도 풍부하게 묘사되는 지점에 이른다.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다루는 관찰의 형식적 미학이다.


이 영화는 거의 무성영화에 가깝다. 대사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장면은 인물들의 행동으로 채워진다. 느린 호흡의 전개이지만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 감정의 세부는 그만의 몰입도를 만들어낸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교도소 내부에 있어 꼼꼼한 공간의 묘사가 한층 더 집중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무성(無聲) 그 자체는 영화의 관찰의 형식에 기인하여 사실성을 한층 더 높이는 아름다운 형식미다.


그 안에 유독 튀는 장면은 당연코 16분 간의 롱테이크 장면일 것이다. (실제로는 24분을 한 번에 찍었다고 한다) 이 장면만 유독 대사의 향연이다. 이 장면에 접어들게 되면 대사의 가뭄에서 대사의 홍수를 맞이하게 되는 경험을 겪게 되는데 기존과는 빠른 호흡으로 오가는 이 대화는 관객으로서 당혹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보비 샌즈’라는 인물의 개인사와 신념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인물을 입체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 신념과 육체, 개인과 사회의 가치판단에 있어 기꺼이 자신의 몸을 희생하겠다는 인물의 신념은 숭고하기까지하다.


<헝거>는 미니멀한 영화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둔 사회극으로서 아름다운 영화가 갖추어야 하는 기교를 갖추었다. 사회와 개인의 드라마의 균형. 이 형식미가 아니더라도 영화는 인물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 ‘보비 샌즈’가 단식에 돌입하고 몸이 점차 허약해지는 대목에서 장르 영화 같은 인위적인 갈등 구조를 가미하지 않은 것도 눈에 띈다. 단지 영화는 그의 변화를 절제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낼 뿐이다. 그 자체로서 이 영화는 엄청난 체험이다. 인물을 가학적으로 몰고 가지 않는 상태에서 그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해낸다. 하지만 더불어서 인물의 신념은 더욱 확고해지고 풍부해진다. 즉, <헝거>는 인물의 드라마가 아니라 신념의 드라마라고 불러도 좋다. 결국에는 <헝거>는 ‘보비 샌즈’를 기리며 1980년대에서 2016년 현재까지 시대를 관통해 보이기까지한다. 사회극으로서 지녀야 하는 스펙트럼이 가장 아름답게 적용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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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4 소맥  
제목만 보고 그 헝거인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ㅎㅎ
얘전엔 실화바탕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실화바탕영화들을 기피하게 되네요

이번 평도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