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2015)

영화감상평

어린왕자(2015)

1 안일범 0 1643 1

머리가 이상한 상황이었다. 피튀기는 영화를, 게임을 너무 많이 봤다. 심신이 지쳐있었다. 뭔가 치유할만한 영상이 필요했다. 닭 한마리를 시켜 놓고 영화를 고른다. 죄다 싸우고, 죄다 목을 자르고, 죄다 펑펑 터트리고 죄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영화 투성이다.

살 수가 없다. 뭔가 치유를 하고 싶은데 말이다.


절대 선택하지 않았던 영화를 고른다. 이 영화라면 절대 목잘릴리는 없지 않은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도 어린 왕자는 아이들의 필독서였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그걸 소재로 삼은 영화라면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것임이 틀림이 없다. 못해도 100번은 스포일러를 당한 영화를 굳이 끝까지 볼 이유가 없다. 그래서 영화를 선택했다. 닭 먹을때 까지만 보지 뭐. 일주일간 미뤄 놓은 빨래를 돌리고 침대에 몸을 눕힌 뒤 닭을 기다린다.  영화가 시작됐다. 배달부 아저씨가 싫었다. 새탁기 소리가 싫었다. 먹던 닭을 구석에 몰아 넣고 영화에 푹 빠져 일요일 오후를 보낸다.


[영화는 한 소녀와 엄마가 학교 먼접을 보면서 시작한다. 이 학교에 들어가야 멋진 인생을 사는 거란다. 엄마는 하나부터 열까지 소녀를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엄마를 따라한다. 어느날 이사간 곳에서 만난 이웃집 할아버지가 어린 왕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어른들을 이야기한다. '어른이 돼야 한다'라는 명제 하에 자신들이 소중하게 느꼈전 별과 장미를 잃어 버리고, 여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들을 거듭하면서 그들은 인생을 살아 간다. 엄마는, 학교는 그런 소녀의 손을 붙잡고 어른이 되기를 강요하고 소녀는 그 손을 뿌리친다. 자신의 꿈을 클립으로 바꾸는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이를 거부하는 소녀.


나도 어쩌면 꿈을 클립으로 바꾸는 것이 어른 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닐까. 여러 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밤이다.


다 돼도 한참전에 다 된 빨래 완료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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