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김기영 감독

영화감상평

하녀- 김기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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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화녀-충녀로 연결되는 김기영 감독의 식모 시리즈이다. 당대의 대스타들을 기용해 홍상수스럽게 똑같은 얘기를 반복한 이 감독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인생도 영화처럼 별장에서 부인과 불타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시대의 거장. 일본에 이마무라 쇼헤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김기영이 있다. 주류 감독이랄 수 있는 임상수마저도 그의 영화를 리메이크 했다. 비록 잘못된 리메이크였지만 말이다.
하녀 시리즈를 거론하기 전에 근대 여성의 직업군을 따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근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직공(공순이), 식모, 창녀 뿐이었다. 다른 일도 있었겠지만 대표적으로 또한 대다수로 꼽을 수 있는 직업이다. '직업여성'이란 말이 '호스티스'를 뜻하는 은어라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여성의 경제성이란 섹슈얼리티와 곧바로 연결된다. 이것은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며 오직 경제적 능력을 갖춘 이는 남성이라는 가부장적 시스템을 망가트린다. 이런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가 하녀 시리즈를 만들어낸 중요한 기점이랄 수 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선 남자가 무능력하게 나온다. 대체로 캐릭터가 없이 우유부단하다. 충녀에서는 집안의 가장인 남궁원씨가 완벽한 무능남으로 나온다. 그래도 가장의 여자가 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경제력을 몽땅 쥐고 있는 충녀의 본처는 첩인 윤여정씨에게 월급을 준다. '남성의 공포'를 알레고리화 한 것인데 남성을 차지하기 위해 두 여자가 벌이는 접전은 무조건 살인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가정사는 식모의 출현으로 언제나 더러워지지만 본처와 가장은 가정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잡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욕망과 음모.
이 시리즈에서 '쥐'는 중요한 상징이다. 10마리가 100마리가 되고 100마리가 1000마리가 되는 번식력, 즉 마르지 않는 거대한 성욕을 갖고 있으며 병균을 옮기고 식량을 훔치고 인간에게 해가 되는 동물이다. 윤여정씨는 아름답지만 묘하게 쥐를 닮기도 했다. 그래서 이 시리즈내내 쥐와 비교 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충녀'를 굳이 해석하면 곤충같은 여자이다. '일본곤충기'라는 영화를 찍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생각나지 않는가? 그 영화 역시 가정사를 파헤친다. 대를 이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어찌보면 일본의 역사를 알레고리한듯 하기도 하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여자들은 창녀이다. 남자들은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아 기른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관점에서 곤충이 본능만을 갖고 사는 동물의 성질을 인간에게 투영한 것이라면 김기영의 곤충은 짝짓기 이후 수컷을 먹어치우는 암컷의 무시무시한 욕망에 대한 상징이다. 
이 시리즈의 가정구조는 언제나 2층이다. 결말은 식모의 죽음 혹은 식모와 남자의 죽음인데 식모는 대부분 계단에서 떨어져 죽는다. 식모가 계단을 올라가면 가장과 본처의 성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으며 안락한 가정의 일원이 되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판타지에 불구했던 식모의 꿈이 현실로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본처를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가정의 식량을 갉아먹는 쥐처럼 말이다. 식모들이 죽을 때 쥐약으로 죽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이다. 상승과 추락의 이미지는 영화의 중요한 자리를 매운다.
 
임상수의 하녀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왜 칸에 갔는지가 의문이다. 확실히 이 영화는 하녀 시리즈에 대한 오역이다. 하녀의 스토리만 빌려 임상수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하지만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갖고 있던 엽기적인 여성의 모습이나 남성의 무능력함 등등 중요한 상징들은 모두 포기해버렸다. 전도연은 매력적이지만 엽기적이진 못했고 이정재는 무능력하기보단 너무 카리스마가 넘쳤다. 전도연의 롤모델이랄 수 있는 윤여정씨도 전도연이 죽을 때 '이건 못할 짓이야'하고 돌아서는 장면 역시 잘못된 해석이 아닐까 한다. 누구보다 하녀의 욕망과 추락을 보며 공감하고 통곡해야 할 본래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조금 더 특별한 역할이나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냥 까메오로 나온 느낌이랄까.
그의 전작을 들먹이긴 싫지만 '그때 그사람들'에서도 특별한 추리나 음모론 없이 박정희의 죽음을 교과서적으로 다룬 것도 불만스러웠다. 차라리 김기영이 만들어놓은, 지금봐도 충분히 엽기적인 그 위대한 감독의 발상을 현대적인 이미지로 옮겨놓았더라면...그리고 차라리 10.26 사건을 임상수의 상상력으로 덧칠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물론 국내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앞의 장례식 다큐멘터리가 잘려나갔겠지만 말이다.
하녀 시리즈를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그 시리즈에서 열연한 주인공들이 본인의 캐릭터를 감독의 요구에 따라 얼마나 엽기적으로 표현하려 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쥐를 잡거나 본처를 죽이고 가정을 가로채려 하거나 남자에게 여보~라고 하면서 자신만의 상상공간에 빠져 안방마님으로 빙의되는 무시무시함말이다. 김기영 영화 제작에 대한 다큐를 본 기억이 있는데 하녀로 상정된 모든 주인공들의 연기는 김기영이 주문한 것이라더라...
이 영화가 시리즈가 된 것 역시 당대 대중들에게 충분히 반향을 일으킬 작품이어서였겠고 리메이크될 수 있는 여건 역시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탈피하지 못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공포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기영의 영화를 본다면 틀림없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감 분명 변태다...' 하지만 임상수의 하녀를 본다면 실망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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