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감춰진 진실은 늘 약자의 몫이다.

영화감상평

[도가니] 감춰진 진실은 늘 약자의 몫이다.

1 황형기 3 4273 2


 안개가 심하게 낀 어느 동네를 비춰준 첫 화면에 문득 무진기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연이 아니었다. 무진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한 이 영화는 우리의 슬픈 현실을 반영한다. 2005년 광주에 위치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현재도 진행중인 이야기이기에 분노하게 하는 영화다. 그리고 감춰진 진실은 늘 약자에게만 남겨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되는 영화라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할 것이다. 용기가 없다면 그냥 지나쳐도 좋다. 하지만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기에 그리고 그 현실을 잘 보여준 영화이기에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방의 어느 청각장애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된 강인호(공유 분)는 자가용을 몰고 학교로 찾아가는 첫 날부터 불길한 일을 겪는다. 안개로 잘 보이지 않는 도로를 지날때 무언가를 차에 치게 되고 내려서 확인해보니 산짐승이다. 이와 동시에 인터커팅(이 상황에 이 용어가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으로 어느 아이가 철길을 따라 걷다가 기차에 치어 숨진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며 둘은 현재 아무 관계도 없지만 둘의 관계가 이 영화의 어느 부분에선가 연관이 있게될 것임을 암시한다. 고장난 차를 몰고 무진시내에 위치한 카센터에 들려 차를 고치려 하다 카센터에 들른 무진인권운동센터 간사인 서유진(정유미 분) 덕에 완전 고장이 나고 만다. 서유진의 차를 타고 자애학원의 입구에 도착한 강인호. 이제 영화는 본격적인 시작이다.


 여러 표창을 받은 자랑스런 자애학교에 도착한 인호는 교장실에서 교장과 첫 만남을 갖게 된다. 대학교 은사의 소개로 자애학원에 올 수 있게된 인호는 그런 이유로 교장에게 더 조심스럽다. 교장실의 벽면에 걸린 액자는 교장이 기독교신자임을 보여주며 실제 교장은 무진교회의 장로다. 화면은 교장의 왼쪽 깃에 있는 십자가 뱃지를 자주 비춰주는데 그래서 십자가가 삐뚤어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의도적이었을까?


 인호가 학교의 진실을 알게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 학교에 10년간 있었다던 어느 남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남학생을 폭행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방과 후 기숙사 담당 선생님이 한 여학생을 세탁기에 처넣으며 고문하는 모습도 보고 여자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애절한 비명소리도 듣게 된다. 진실을 파헤치게 되는 시작이다. 그러나 인호가 진실을 알게된 사실만을 중요하게 볼 수 없다.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폭행하던 장면은 절대 잊을 수 없다. 학생을 무섭게 패던 선생님에게 소통은 없었기 때문이다. 폭행에 소통은 없다. 폭력을 행사하면서 선생은 뭐라 뭐라 지껄이지만 청각장애가 있는 학생은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다. 이것이 일방적인 폭력이다. 애초에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었다. 말도 할 수 없고 서로간의 의사소통도 거부당한 학생에게 남아 있는 건 그저 눈빛이었다. 교무실에서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 인호를 바라보던 민수(백승환 분)의 원망과 애원과 여러가지를 담고 있는 듯한 복잡한 눈빛.


 인호로 인해 진실을 알게 된 유진과 함께 이 둘은 진실을 밝히려 애쓴다. 하지만 이곳은 무진시다. 안개의 도시 무진시. 안개의 도시임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무진시다. 안개란 존재는 객관적인 사물의 본질을 흐리게 하여 잘 분간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들을 반기지 않는다. 오랫동안 함께 생활을 해왔던 무진시는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으나 외부에서 갓 들어온 이들은 제대로 볼 수 없다. 장로의 아내는 무진여고 출신이며 유리(정인서 분)를 진단했던 병원의 의사는 무진여고 출신이다. 자애학원생들을 성폭행했던 교장을 변호하던 변호사는 무진출신으로 개업 후 처음 변호업무를 맡게 된 수재 그리고 이외 경찰 나머지 다양한 사람들이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있다. 이들에게서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기란 너무 약한 사람들이다.


 인호가 법원의 입구에 들어서면서 바라보았던 자유 평등 정의란 글자는 순진한 인호에게 그 사실 그대로를 믿도록 만든다. 약자가 말하는 자유 평등과 정의는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 평등 정의의 의미가 아니었음을 잘 몰랐던 것이다. 법원에서 진실을 세상에 내보이고 증명받기 위해 인호와 유진 그리고 자애학원의 세 아이들 연두 유리 민수가 노력을 했지만 벽에 부딪히고 만다. 피고인의 죄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던 검사마저도 피고인의 편이 되어버리고 재판이 종결되었을 때 진실은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만들고 말았다. 약자가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어 증명하기란 엄청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이다.


 진실의 표리는 언제나 날카롭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며 누군가는 그 진실에 의해 상처를 받게 된다. 진실을 밝히면 밝히는 대로 상처를 받고 진실을 감추면 감추는 대로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진실을 밝히게 되면 인호는 아픈 자신의 아이와 노모를 보살필 수 있는 직장을 잃게 되고 진실을 감추게 되면 자애학원의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게된다. 그래서 더 힘들다. 이미 인호 이전에 자애학원을 거쳐갔던 많은 선생들이 불편한 진실을 목격하고도 입을 막는 댓가로 서울의 학교에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던 것처럼 진실을 감추려 하는 자들은 약자의 이런 약점을 이용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를 꺼려한다. 그런 점에서 무진시는 좋은 소재가 된 것 같다.


 09년도에 판권이 팔렸음에도 투자자를 모을 수 없어 이제야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늦었지만 그래도 이제야 영화가 나오게 되었음을 감사한다.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인 성인임을 감사한다. 나 또한 사회적 약자로서 세상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이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이러는 것이다'말하는 유진에게서 약자의 도전을 보았다. 이게 내가 약자로서 걸어가야 할 이유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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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0 사라만두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원작은 예전에 읽어봤습니다.
`이 책을 읽고 순간적인 화는 누구나 낼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건 그런 분출이 아닙니다.
화산폭발처럼 일시적인 집중조명보단 휴화산의 부글부글 끓고있는 마그마처럼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외치던 저자의 말이 생각이 나네요.
그때 이후 전 또 다시 분출하고는 잊어버렸나 봅니다.
다시 한번 그 감정을 상시시키기 위해, 꼭 필견해야겠네요.
평 잘봤습니다.
1 황형기  
사라만두님 댓글 감사합니다. 공지영작가님도 참 만족할만한 영화였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꼭 보시기 바랍니다.
1 누룽지™  
약자가 대한민국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가 그만큼 썩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미국을 향해 '물질만능 주의' 라고들 했던것같은데, 미국은 '최소한의 합리성은 존재하는 나라' 이지만, 대한민국엔 이러한 '최소한의 합리성' 조차도 없죠.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더이상 손쓸수 없을 정도로 썩어버린 상태입니다. 돈만 있으면 법따위는 살짝 즈려밟으며 못할것이 없는 나라. 그게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하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건국 초기부터 친일파들을 사회에 포용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해버렸고 현재까지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3대가 망하고, 친일파들의 후손은 3대가 흥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나라에 합리성?? 도덕성?? 진실성?? 법적인 정의?? 도대체 무얼 바라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