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로봇] 묵시록적 비전을 던지는 SF, 하지만 희망은 존재한다..

영화감상평

[아이 로봇] 묵시록적 비전을 던지는 SF, 하지만 희망은 존재한다..

1 제르 6 8680 130
SF라는 장르는 선택하는 시선에 따라서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과학기술의 순기능을 다룬 유토피아적인 SF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의 역기능을 다룬 묵시록적인 SF이다. 물론 그런
시선이 장르에 대해서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전개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 때는 SF에
대해 묵시록적인 비전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 있었다. SF에
복합장르를 과감하게 섞었던 '터미네이터'와 묵시록적 SF의
대표작인 '블레이드 런너'가 있었던,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이 그러했다. 그 뒤로 묵시록적이다 유토피아적이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러티브에서 크게 그 방향을 나누려는 시도는
줄어들었으나, 98년 등장한 '다크시티'라는 영화는 그런 존재감이
아직 있다는 것을 보여줬던 것을 떠올릴 수 있겠다. SF에 대한
묵시록적 접근법을 즐겼던 '알렉스 프로야스'가 헐리웃의 코믹 액션
스타 '윌 스미스'와 돌아왔다. 하지만, 묵시록적 SF와 코믹 액션
스타와는 왠지 모르게 뭔가 삐거덕 거리지 않는가?

일단 감독에 대한 얘기를 좀 해봐야겠다. '크로우' '다크시티'
그리고 '아이 로봇'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쉽게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SF이던 액션이던간에 그가 추구하는 연출
스타일은 확연하게 두드러진다는 얘기다. 아마도 위의 영화들의
제목만 딱 봐도, 왠지 칙칙하고 암울한 미래상이 그대로 가슴에
와닿지 않는가? 초지일관한 연출 스타일은 작가주의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기에 앞으로 그의 영화들을 더 두고봐야겠지만, 이번
'아이 로봇'은 약간의 의외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대자본의 기술력과 헐리웃의 스타 '윌 스미스'가
바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과정인 셈이다. 그것도 여름 개봉을
준비했던 헐리웃 블럭 버스터라면 이번엔 아예 맘먹고 암울/우울
모드로 초지일관하지는 않겠다는 계산이 쉽게 나오지 않는가?
물론, 그것이 관객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제작자도
똑똑하게 알고 있을테니깐 말이다. 그가 헐리웃의 자본력을 등에
엎으면서 얻은 것은 기술적인 완성도와 여름개봉을 통해 톡톡히
유명세를 어필했다는 점이겠지만, 영화의 성격과 맞지 않는
배우와의 작업은 감독과 배우에게 모두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름 블럭 버스터에 헐리웃 스타가
빠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미스캐스팅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다른 맛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윌 스미스'란 배우의 역량에 대해 높이 평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 촬영 내내 그의 코메디적인 감성이 얼마나 근질근질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에드립 칠 곳이 없는 각본을 대한 그의 표정에서
살짝 미소가 흘러나온 것도 사실이다.

로봇과 공존하는 미래의 상황은 현재의 인류가 열심히 준비하는
근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완벽하게 로봇과
일치된 사회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뉘양스들을 강하게 풍기고 있고,
하물며 로봇을 혐오하는 주인공 역시 몸의 일부가 로봇인, 로봇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다.
아니, 아이러니라기 보다는 어쩌면 그것이 우리 인류가 인정해야 할
로봇과 인간의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감독도 로봇이 없는,
혹은 과학기술이 발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겪어야할 상황에 로봇의
휴머니즘이라는 일말의 희망에 대한 넋두리가 아닐까? 영화
전체적으로 보여졌던, 묵시록적 비전은 마지막에 '써니'가,
휴머니즘을 갖고 있는 '써니'가, 로봇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듯한
뉘양스의 엔딩으로 유토피아적인 희망을 던져놓고 있다.
희망사항일 뿐인 휴머니즘을 갖고 있는 로봇에 대해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최선은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미래일 뿐이었을까?
하지만 유독 휴머니즘을 갖고 있는 로봇이 또 있다. 그는 바로
'윌 스미스'다. 암울한 과거 때문에 로봇에 대한 지나친 혐오증을
갖고 있지만, 그는 결국 로봇을 피부에 와닿게 이해할 수 있는, 등장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로봇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로봇에 가장
많이 의지해서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점은 로봇과 인간의 가장
친밀한 공존 체제를 보여주는 부분이 아니겠는가?

미래에 대한, SF의 발전에 대한 우려와 기대는 언제나 같이
존재한다.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갈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알렉스 프로야스'는 그런 점에서 아직은 어둡고 암울한
미래에 대한 우려를 안고 있는 것 같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연
인류에게 무한한 행복을 예약시켜 줄 것인지는 계속 지켜보며
몸으로 직접 겪어봐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http://www.cyworld.com/ze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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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mario  
  로봇이든 마마압력밥솥이든 대우봉세탁기든 그것들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생명’의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정의해야합니다. 겁나는 일이죠. 95년에 온갖 장광설을 떠들어댔던 (그 비러먹을)‘GITS'도  결국 저이야기를 한 것이었구요.
이영화는 무지막지한 내공이  느껴지는 아시모프할배의 소설 제목을 그대로 달아놨지만 정작 뚜껑 까보니 생명과 영혼의 의미를 너무 낮게, 또는 천박하게 이해하고 있더군요.  프로그램의 예측 불가능한 예외코드가 모이고 모이면 그것이 개성이되고 영혼이 된다니.(‘매이뚜릭수’도  열라 현학적인 구라를  벗겨보면 대충 비슷한 이야기 ) 이런 건 현대의 이진기반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으로도 충분히 맹굴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생명이라 부르지는 않죠. :)
뭐... 윌스미스나오는 액숀영화에서 뭔가 큰걸 바라는게 잘못일지 모르지만 프로야스씨또는 스크립터가 아시모프의 로봇단편들을 읽어보고(안 읽었을 가능성 93.4%) 잠시만이라도 상상력을  발휘했더라면 더 좋은 영화가나왔을 것 같습니다.
1 제르  
  네 그러네요.. 역시나 마리오님의 댓글이 달려있어서 안심입니다. (그리고 스크립터가 읽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네요. 스크립터는 말그대로 스크립만(미국에선 더욱 전문화된 기록일 뿐이니) 할테니까요..)

마리오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인데, 상당히 요점을 잘 집어내시는 것같은데, 장난스러운 비유들이 좀 불필요하게 많다는 점이.. 글읽는 재미는 줄 수 있지만, 촛점을 흐리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워요. 절대 태클은 아닙니다. 주제넘었다면 용서하시구요.
1 mario  
  헐...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 인생을 즐거이 살자는 의미라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영화는 써니를 폐기하는 장면사이에 낑궈진 한두장면 때문에 아쉬웠습니다.
폐기장 컨테이너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조용히 밖을 내다보는 NS4들의 눈망울(?)이 '천공의 성 라퓨타'(1986,지부리)에서 시타를 구하다 파괴되는 로봇의 그것과 겹쳐지면서 살짝 콧날이 시큰해졌거든요.
또, 이 영화는 아시모프가 말년에 (억지로) 상정한 '제0원칙'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궂이 비판하자면 아시모프를 비판해야 할 것 입니다.
아시모프는 대체로 단편은 굿이요 장편은 쉣이라던가요. 특히 말년의 삽질은 SF동네에서는 유명하답니다.
1 제르  
  불쾌하다는 말은 어디서 나온 말인지.. 그런식으로 확대 해석하시면 말하기가 겁난다는..
1 mario  
  헬쓱~ 오바해서 죄송합니다. ;-)
1 김병두  
  흔히 '디스토피아'
이렇게들 표현합니다.
오시이 마모루의 일련의 작품들,
안노 히데야끼의 일부 작품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로부터 메트릭스 시리즈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세계관.

글쎄요 아이로봇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지금껏 공기 속에 부유하던 장면들을 여기저기 가져다 약간의 아이디어로 버무려놓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어떤 철학이라던가 아님 시종일관 밀어붙였던(제르님께서도 지적하시는) 윌 스미스식 유머도 1프로 부족한 느낌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