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성에 심취한 장인들-최민식과 문성근

영화감상평

절실성에 심취한 장인들-최민식과 문성근

1 성유경 4 10377 119
'올드 보이' 최민식 : 산 자들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어떤 귀기 어린 악력. 마른 풀잎 같은 머리를 갈기채로 부여잡은 손은 새하얗게 질려있고, 광대뼈와 볼우물, 턱으로 이어지는 부분엔 피가 쏠려있다. 어떤 죄악이 끓어 넘치는 냄비 속에서 구원을 희망할 때, 너무 격렬해서 세계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운명이 꼴값을 제대로 하느라 지독하게 머리 아픔...그리고 총격전이 끝나기를 바라는 순진한 외마디 비명.

그의 얼굴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를 빌자면 "너의 맑은 눈은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그것을 채워주고 싶다, 색깔과 오리들로, 새로운 것들의 동물원으로"...나는 동물적인 양감이 느껴지는 그의 얼굴이 좋다. 웅장하고 고전적인 느낌의 사자에서 순진한 듯 둥글넓적한 오리너구리까지. 해석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얼굴. 

'질투는 나의 힘' 문성근 : 문성근이 아니면 과연 누가? 우리가 미처 신앙하지 못한 배우, 평범한 군중 속에서 도드라지는 이지적인 추임새, 징글징글 야비하면서 사람 잘 다루는 노련한 캐릭터, 스타카토가 살아 있는, 이 배우의 에네르기라고도 할 수 있는 독특한 억양.

그의 얼굴에는 에지(edge)가 있다. 설 깍정이 같기도 하고, 웃어도 날이 선 미소...쉽게 동요되지 않으며 촌스럽게 수작부리지도 않을 것 같은 남자. 냉정한 가면. 하지만 나무처럼 다정한 그대.   

'올드 보이'와 '질투는 나의 힘'은 작년에 참 좋게 보았던 영화들이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해 은근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최민식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로, 얌전한 짐승 같고 격조 높은 삼류인생 같은, 극과 극을 조화시키는 힘이 강한 배우다. 어쩔 땐 한 대 탁 치면 '어유, 아파유' 팔을 비비꼬는데, 또 어쩔 땐 '이런 계세요^^야!' 맞짱 뜰 태세로 달려든다. 참으로 불꽃 튀기는 연기, 그에 못지 않게 그렁그렁 축축한 요소도 좋다.

문성근은 한국 영화사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배우. 마스크 자체가 지적이지만 삐딱선 심히 타며 뒷통수 내리치며 거기에 여자들의 거미줄 심리까지 갖춘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캐릭터 살리는 데 공헌하였다. '질투는 나의 힘'만 하더라도 그가 분한 한윤식은 얼마나 복잡미묘한 인물이란 말인가. 특히 그가 동성의 남자 후배에게 '자기'라고 호칭하는 것은 나 같은 소심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충격을 주었겠는가.(연륜과 경력이 꽤 된 여자들은 같은 여자 후배들을 '자기'라고 부른다. 과연 남자들도 남자 후배를 '자기'라고 부르는지...문성근의 자연스러운 '자기' 호칭 하나만 보더라도 한윤식 역은 완벽하지 않았나 싶다) 한윤식은 그런 사람이다. 잡지사 대빵언니 특유의 짱짱한 언변과 꼬장꼬장하면서도 유들유들한 인간관계 대처능력+허영심 많은 남자+부조리한 로맨티스트. 문성근은 작품을 잘 읽은 것인지, 타고난 배우여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농담조로 얘기해 그가 영화판을 버리고 정치판으로 가지 않아서 뿌듯하다.

최민식과 문성근은 현란한 테크니션맨보다는 텍스트와 교양, 신념, 절실성에 심취한 장인들이다. 그들에게는 연기를 초월하여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겉멋이 없으며, 바람 부는 날 칼을 갈지 않아도 번쩍 솟구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지 않아도 무성한 가지 자를 수 있는 내공의 소유자들이다. 억세게 내색하지 않는 자,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들을 지켜봐야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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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네바스찬Jr.4세  
  요즘도 문씨를 배우로 애써 기억해주는 팬이 있군요.^^
문성근 띄울려고 최민식까지 끌어들이면,
진짜 배우 최민식이 섭섭하지 않을까요?
1 류기현  
  문제 :
우리나라에서 이 두 사람 중 문성근을 제외하고 최민식과 비교할 수 있는 남자 배우를 논한다면 누가 있을까?

<나의 답> 없다.
1 김익현  
  없을 수밖에 없겠죠. 배우들 각자가 맡아온 배역들도 틀릴 뿐더러 그동안 쌓여온 이미지 란게 잊지 않습니까. 내가 정말 맘에 들어하지 않는 쓰잘데기 없는 입싸움중 하나가 그배역을 누구누구가 대신 맡았으면 더 멋있었을텐데.. 입니다. 최민식씨가 최고의 배우라고 해서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씨를 대변할 수 없고, 지구를 지켜라의 신해균씨를 대신할 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1 겔로4  
  신해균->신하균

그리고.. 뭐 확실히 그런 입싸움이란건..
지난일이고 하니 해봐야 별 소용도 없지만..
어디서나 그런건 아니고 그런 입싸움과 논쟁 속에서 다음에 그와 비슷한 역에는 더욱 어울리는 배우를 맞추는 결과가 생기는 수도 있습니다.

대변할 수 없다는건 뭔말인지[..]
대변을 왜 하나요?[..]
대신 두번 쓰기 싫어서 대변 쓴거 같은데 말그대로 대변이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