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 그녀가 칼을 빼든 이유

영화감상평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 그녀가 칼을 빼든 이유

G 이덕형 4 9900 56
시대극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칼싸움, 우리들의 귀에는 칼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챙챙’ 정도로 들리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찬, 찬, 바라’정도로 들리나보다. 이렇게 칼과 칼이 맞닿아 내는 소리에서 비롯된 일본의 검극액션, 일명 찬바라 영화는 사무라이 영화를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찬바라 영화는 왜색이 자연스레 짙어질 수 밖에 없는 관계로 국내 개봉이 그리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구로자와 아키라 같은 거장의 작품들조차 회고전 같은 자리가 아니면 쉽게 접할 수가 없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일본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개방이후에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그중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전국시대를 무대로 한 영화들이다. 일본 열도의 패권을 놓고 저마다의 웅지를 펼치고자 했던 다이묘간의 전쟁은 흥미진진한 소재로 다가온다. 여기에 다이묘를 섬기는 사무라이들의 충성심과 의리, 무용담이 가미되면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는 것이다.


020449m2.jpg그런데 찬바라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용맹스럽고 비장미 넘치는 사무라이들의 모습을 주로 담았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무사계급이 아닌 칼잡이들에게도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전운의 천지를 덮고 있는 시대를 살면서 곡괭이 대신에 칼을 선택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가 하면, 장님이지만 극강의 쾌검술을 자랑하는 떠돌이 검객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이하 <아즈미>)도 주류와는 좀 동떨어진 선택을 한다. 아리따운 소녀의 칼에 넘어가는 사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건 분명 색다른 느낌을 준다. 물론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나 기존의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남성보다 강한 여성의 등장이 새삼스럽지 않다. 예컨대 인간 병기로써 암살전문 킬러인 <니키타>(1990)나, 당대 최고수인 [리-주윤발]과 맞대결을 펼치는 [젠-장쯔이]의 <와호장룡>(2000),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에 등장하는 <잔다르크>(1999)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찬바라 영화에서는 자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1954)만 보더라도 때만 되면 거듭되는 산적들의 습격에 마을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떤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에 씨앗과 땀을 뿌려가며 일궈낸 곡식을 약탈해가는 산적들에게 마을 사람들은 속수무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을에는 힘없는 노인들과 아이들만 사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건장한 남자들도 산적의 약탈에는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칼을 들고 사내들을 도륙하는 미소녀의 등장이라, 꽤 흥미가 생기는 일이다.


020449m4.jpg<아즈미>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여자아이가 고도의 훈련을 통해 살수로 키워져 전쟁을 꿈꾸는 다이묘들을 암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즈미- 우에토 아야]는 이 과정에서 어릴 때부터 좋아해온 남자를 죽이기도 하고, 여자로써의 평온한 삶을 꿈꾸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자로써 살기에 세상은 너무도 혼란스럽고, 결국 그녀는 다시 칼을 빼어든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역시 칼을 든 여성인 [브라이드]가 주인공이다. 복수를 위해 칼 한 자루에 의지한 채 단신으로 적진으로 뛰어드는 [브라이드]와 [아즈미]는 일견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그 대상은 분명 다르다. 자신의 아기를 앗아간 적들을 향한 개인적인 복수심이 [브라이드]가 싸우는 이유라면, [아즈미]의 싸움은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명분이 주된 목적인 것이다. 여기에 훈련으로 다져진 우월한 능력과 자신의 행로에 스스로의 의지로 적극성을 가진 다는 점에서 영화 <아즈미>는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의미심장한 주제를 영화는 과장된,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포장해낸다. 여기에 어설프게 드러나는 CG는 비장미 넘치는 장면에서 실소를 머금게 한다. 또한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탓에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는 사항이었지만 극히 [비조마루- 오다기리 조]같이 만화적인 캐릭터들의 독특한 개성은 영화 속에서 활력소의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몰입에 절대적인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이것이 <버수스>(2000)로 속도감 넘치는 액션으로 주목을 받은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대담한 발상이 돋보이지만 아쉬워지는 이유다.


4차 문화 개방이 이뤄진 뒤로 다양한 일본 영화들이 앞다퉈 개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장들의 작품이나 공포물에 국한되어 있던 문화 개방의 폭이 일본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리고 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런 현상은 우리보다 긴 영화사를 가진 일본의 다양한 작품들을 일람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지만 수준이하의 작품까지 접하게 되는 단점으로 동시에 가진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양질의 작품을 골라낼 수 있는 선구안을 키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즈미>는 볼이다.



<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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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G 이제현  
  비조마루 ^ ^
꽤 매력적인 역 아니었나?
약간 사이코같은 넘이었지만~
괜찮게 본 영화였슴다!
G 이덕형  
  네. 전 비조마루 캐릭터 보다는 연기한 오다기리 조 때문에 놀랐습니다. 밝은 미래에서 나왔던 분위기와는 너무 달라서 말이죠. ^^
G fastfan  
  개인적으로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을 좋아합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올 법한 캐릭터 대조와
말초적인 카메라 워크로,
보고 있노라면 즐거워 어쩔줄을 모를 정도죠
하지만 그의 가장 큰 개성이 점점 엷어져 갑니다
아즈미가 그 시작이더군요

최근작인 스카이 하이에서는
괴로운 비명을 연방 질러야 했을 정도로
망가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5 선우도우  
음..아즈미 이 여자 너무 강하더군요...주인공이라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