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밍 풀] 머리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감상평

[스위밍 풀] 머리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G 이덕형 0 11645 74
올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기상청의 통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듯이 이틀에 한번 꼴로 내린 비는 올 여름을 여느 해보다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었지만 피서를 가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사람들에게는 저주스럽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파란 수영장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비키니를 입은 채 누워있는 미녀를 담고 있는 영화 <스위밍 풀>의 포스터는 올 여름 파란 하늘을 구경하기 힘들었던 우리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기에 충분했다. 포스터부터 이목을 끌었던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는 작품이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프랑스의 [프랑수와 오종] 감독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서 주로 다뤄지는 여자들의 심리와 관계를 비롯해 미스터리 요소를 곳곳에 심어 놓은 <스위밍 풀>은 분명 한번쯤 '보고 넘어 가야할' 영화였다.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인 [사라 모튼(샬롯 램플링)]은 베스트 셀러 작가로 인기가 높지만, 자신은 매너리즘에 빠져 자신의 글에 만족을 하지 못한다. 이런 그녀에게 출판사 편집장이자 애인 사이인 [존]은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별장으로의 휴양을 권유한다. 외딴 곳에 위치해서인지 한적하고 조용한 별장은 [사라]가 글을 쓰기에는 천국과 같은 장소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묘령의 소녀 [줄리(뤼디빈 샤니에르)]는 자신이 편집장의 딸이라며 그곳에 자연스럽게 짐을 푼다. 예기치 않게 동거를 하게 된 [사라]와 [줄리]. [사라]는 [줄리]의 자유분방을 넘어선 방탕한 생활에 치를 떨지만 어느 덧 그녀에게서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게 되는데..


<스위밍 풀>은 매너리즘에 빠진 한 여류작가가 외딴 곳에서 휴양을 보내며 그동안 그녀가 썼던 글과는 전혀 다른 신작을 들고 돌아온다는 것을 주요 줄거리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갔던 그 곳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그런 소설이 나왔을까 하는 과정이 <스위밍 풀>의 미스터리 요소가 되고 있다.


별장에 있는 '수영장'은 어떤 의미였으며, [사라]에게 [줄리]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과연 두 여인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프랑스의 외딴 곳으로 휴양을 가서 집필에 몰두하던 [사라]는 새롭게 떠오르는 영감에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난데없이 찾아온 [줄리]라는 소녀 때문에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항상 품위를 지키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상대방을 쳐다보는 [사라]에게 [줄리]는 시도 때도 없이 여러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이는 탕녀에 불과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게 멸시에 찬 눈빛으로 [줄리]를 바라보는 [사라]지만 [줄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중년에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가정이 없는 [사라]는 '대마초와 섹스'를 즐긴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줄리]의 파격적인 매력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줄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라]에게는 집필을 위한 '자극'이 되고, 소재의 '발견'이 된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줄리]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 [사라]가 [줄리]와 저녁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눈 뒤에 일어나는 시선의 변화이다. 화자 역할을 하며 이야기를 이끌던 [사라]의 시선에서 [사라]를 감시하는 [줄리]의 시선으로 역전이 된다. 그리고 [사라]의 방에서 소설의 초고를 몰래 읽으며 변하는 [줄리]의 표정은 또 다른 미스터리 요소로 파생이 된다. 이전까지 [사라]의 시각에서 바라본 [줄리]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과거와 정체, 그리고 '멍든 눈두덩'이 미스터리였다면, 이 시선의 역전을 통해서 [줄리]의 이야기라고 당연하게 여겼던 [사라]의 초고에 담겨진 내용이 또 다른 미스터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벌어지는 식당주인의 살인과 영화 끝에서 던져지는 '편집장의 딸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은 [프랑수와 오종] 감독과 벌이는 기분 좋은 '수 싸움'임에 틀림없다.


이제 <스위밍 풀>의 반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영화를 나중에라도 보고자 한다면 읽지 마시길 부탁드린다..) 스릴러 영화의 미덕은 언제부터인가 '반전'이 되버렸다. 어설픈 반전은 영악한 관객들의 추리에 너무 일찍 김이 빠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시나리오의 조악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감독의 친절로 인해서 너무 많은 단서를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위밍 풀>은 반전을 명쾌하게 해석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는 주어지지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스위밍 풀>의 마지막 반전에 주어지는 질문은 [줄리(뤼디빈 샤니에르)]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녀는 [사라]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캐릭터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사라] 자신이 모국인 영국을 떠나 프랑스의 외딴 마을에서 혼자 집필에 몰두하며 상상에 빠져 만들어낸 가공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사라]와 [줄리]가 만들어내는 중첩되는 이미지가 그러하다. [줄리]의 모습은 [사라]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스스로 갈망해왔던 이상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줄리]의 행동을 시종일관 지켜보며 동경과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이리라.


[사라]는 별장에 수영장이 있음을 알았지만 덮개를 들춰보고는 감히 들어가지 못한다. 반면에 낙엽이 둥둥 떠있는 그 물 속을 헤엄치는 [줄리]의 모습은 [사라]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시작을 표현한 듯 보인다. 자신이 스스로 가둔 '틀'(창작에 대한 압박감, 편집장이 보이는 무관심, 신진 작가에게 느끼는 위기감 등) 속에서 매너리즘을 느껴 떠나온 휴양지에서 그녀는 그렇게 변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스위밍 풀>에서 '수영장'은 '변화의 공간', '소통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생명의 모태가 되는 바다를 축소시켜 놓은 듯한 '수영장'에서 [사라]는 새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녀의 변화된 모습은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 편집장과 만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옷맵시에서부터 드러난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메마른 듯한 표정, 트렌치 코트에 접는 우산을 든 무채색의 신경질적인 모습에서 밝은 표정에 그린톤의 체크무늬가 있는 자켓에 핑크색의 스카프를 두른 화사해 보이는 모습으로의 변화는 [사라]의 심경 변화를 나타내주는 듯 하다.)


이 밖에도 <스위밍 풀>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남아있다. 과연 살인은 일어난 것인가 라든지 [사라]가 쓴 소설 [스위밍 풀]은 [줄리]에 대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줄리]가 전해준 초고에서 나온 소설인지 하는 것이다.


역시나 아직 머리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씨네스트 전문필진 (www.cineast.co.kr)
BOOT 영화비평단 (www.boot.pe.kr)
뉴스타운 영화담당 기자단 (www.newstown.co.kr) / 이덕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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