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렇게 사는게 재밌니?" 행복이 말하는 것들

영화감상평

"너는 이렇게 사는게 재밌니?" 행복이 말하는 것들

1 흰곰 2 6684 1

서울대 앞에 사는 친구 덕에 중학교 시절 처음 최루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터졌다하면 만화에서나 나올 법 한 폭포수 눈물과 콧물을 흘리게 하는 그 위력이란...


그 이해 못 할 현상에 괴롭기도 했지만 금방 반응하는 내 몸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놀라운 효력도


경험이라는 내성과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요령 앞에서는 별 힘을 못 쓰게 되더라.


민방위 훈련만큼 익숙해진 다음엔 그냥 눈물 콧물만 빼고 나면 그만일 뿐


더 이상은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한바탕 쏟고 나면 시원하기까지 했다.


최루성 영화도 그러하다.


어머니라도 돌아가신 것처럼 목 놓아 울다가도


극장 문을 나설 무렵엔 짧은 순간 어렵게 결정한 저녁메뉴


우동에 돈까스 먹을 생각에 입 꼬리 치켜 웃는 철없는 3살배기로 돌아가고 만다.


그건 우리가 마른하늘의 여우비처럼 변덕스러워서가 아니다.


다만 그것은 무릎에서만 찰랑거리는 목욕탕 수위의 깊지 않은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얇은 감정의 동요만을 일으키는 그런 낯 뜨거운 고백은


결코 우리 마음 속 깊은 곳까지는 발 담글 수 없다. 그저 가슴에 손만 댈 뿐...


 


 


최근에 대단한 놈을 만났다.


보고 난 다음 날에도 마음이 아픈...


이걸 그냥 "슬프다" 말하고 나면 아무렇게나 내뱉는 무성의한 표현처럼 느껴지는...


가슴이 저민다고 해야 할까?


가슴을 베어낸 것처럼 아파오는 날카로운 슬픔.


그 후로도 계속되는 생체기의 고통이 마치 지병이라도 될 것 같은 강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그래 이 느낌은 상처의 아픔과 그것이 아무는 시간을 넘어서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흉터로라도 남아 끝까지 내 가슴에 있으리라.


눈물이 흐르지 않아도 가슴이 내려앉는듯한 무게감을 주는 영화.


바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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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외국 나가... 한 일, 이년 걸릴거야..."


 


방탕한 생활이 남긴 병으로 인해 요양원에 가야하는 영수.


그런 처지가 창피해 그럴 듯한 포장용 거짓말을 한다.


애써 변명하는 빈말이 무슨 설득력이 있을까?


보는 이도 듣는 이도 민망해서 흘려보낼 뿐...


삶으로 보여준 말만이 가슴을 파고듬을 우린 다 알고 있다.


허세를 부리는 그가 우스워 보이지만 사실 그 모습이 내게서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 또한 부족함과 치부를 선뜻 펼치지 못해 감추고 포장하기에 바쁜 젠장맞을 속물이다.


무덤을 대리석으로 덮고 꽃으로 치장하면 무슨 소용인가?


무덤은 무덤일 뿐 그 안은 썪어나는 시체와 지독한 악취만 있다.


 


그렇게 영수는 희망의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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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잘 죽는다. 너는 잘 살아라."


 


희망의 집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폐암환자.


살 수 있다는 바람으로 온갖 유혹을 참아내며 절제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에 후회뿐인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


"내가 왜 담배를 피웠을까?" 세계2위의 흡연 인구를 가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이 평범한 질문이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라선 그리 평범치 않게 들린다.


그런 그가 유서를 남긴다. "나는 잘 죽는다 너는 잘 살아라"


우스꽝스러운 이 마지막 글귀는 그 길이와 달리 그리 짧지 않은 의미를 남긴다.


느껴지는가?


앞의 "잘"과 뒤의"잘"의 다름이...


 


그의 죽음으로 영수는 정신없이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순수한 영혼' 은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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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희는 폐병환자다. 숨이 차서 뛸 수 가 없다. 걷다가도 힘들면 쉬어야 한다.


 


그런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를 업고 올라갈 누군가 일 것이다.


방탕이 준 병으로 제 몸 추스르기도 힘든 영수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쉬운 사랑을 포기한다. 업혀 올라갈 그 길을 버리고 손잡고 가야할


어쩌면 오히려 잡아끌고 올라야 할 그 길을 선택한다.


 


사리분별 밝은 나의 아내는 이것이 단지 영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만나지마...사귀지마...계속해서 읊으신다.


어쩌겠는가? 대본도 사랑도 그러한 것을...


그 감정을 맘대로 주무를 자 누군가? 그것이 되는 그대 "선"이나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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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받아, 내가 답답해서 그런거야..."


 


수연은 받지 않으려는 영수에게 기어코 그가 쓰던 핸드폰을 떠넘긴다.


잊고 살았던 과거, 별스럽지 않게 흘러 들어온 기억이


은희와 영수의 하나됨을 흔드는 균열의 진원이 된다.


유혹과 욕망...그리고 절멸.


그것은 항상 보잘것없는, 지극히 작은 한 점에서 시작된다.


초등학교시절 교과서의 네덜란드 소년이 막았다던 그 조그마한 구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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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너 우리같은 30대가 필요한 노후자금이 얼만지 알아? 4억7천이야... 4억7천"


 


어린 시절 등교길에 늘 올라야 할 전설의 108계단이 있었다.


고개 꺾을 가파른 높이와 촘촘히 쌓여진 계단의 개수에 압도되어


집에서 나오기 전부터 한숨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힘들 걱정이 시작부터 생각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기업들이 상품을 팔기위해 펼치는 마케팅의 핵심은 "불안감"이다.


"이 제품은 좋고 왠만한 사람이면 다 이걸 쓴다."


"남들도 다 이 배기량, 이 브랜드의 차를 탄다. 너만 사과박스 타고 다닐래?"


"애들아! 이 아파트 아니면 니 여자친구가 널 사람으로도 안 봐." 항상 요따구다.


우리는 그들이 조성한 밑도끝도 없는 위기의식에 조바심 내며 냉큼 넘어가버린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문화도 같은 무늬의 붕어빵이다.


'이 정도는 돼야 해!' '다 이렇게 살거든..' 연신 윽박지르며 그 선 밟은 자를 겁준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그 정도'의 양을 늘린다.


그러면 우리는 늘어난 만큼 더 뛰어야 하는 거다.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지키기 위해...


 


 


"108계단"


공포를 주었던 그 놈은 사실 별거 아니었다.


친구와 연신 "가위바위 보"하며 재미있게 오를 수 있는 그런 녀석이었다.


물론 학교에 늦어 혼날 때도 있었지만 그게 어떤가?


돌아보면 씩 웃음이 나오는걸...


 


영수는 그 불안감에 자신을 다시 세상으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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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너는 밥 천천히 먹는 게 좋냐? ... 난 지겨운데..."


 


세상이 주는 유혹을 덥석 물어버린 영수.


그는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주었던 은희와의 행복했던 생활이 못마땅해진다.


그리고 그는 결국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행복한 현재를 포기한다.


그렇게 나서는 저 문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다. 자신의 영혼을 세상에 맡기는 순간...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지천에 깔린 세잎클로버를 즈려 밟고 찾던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


정체모를 불안을 잠재워줄 '행운'찾기에 바쁜 우리는


흔하디 흔해 보이는 일상의 '행복'을 무시하며 희생시킨다.


천년을 하루같이 참아내며 성공을 위해 일하지만 정작 그 끝에 가서는


그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천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종국에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그 시간은


평생을 바쳐 번 그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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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희와 마지막으로 놀러간 곳에서 홀로 놀이기구를 타는 영수.


 


재밌자고 탄 놀이기구에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빙빙 도는 스피드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영수는 또한 그렇게 세상에 남겨진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다 눈물 흘리는 은희.


이별을 예감하고 함께한 그녀는 연인의 마지막이 될 모습에 끝내 울어버린다.


그리고 기어이 보는 이의 가슴에도 대못질을 하니


이 장면 그녀의 모습이 며칠 동안 눈에 밟힌다.


임수정의 예쁜 얼굴 때문이 결코 아니다.


영화 속 은희의 예쁜 마음 때문이다. 바로 그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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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폐는 멈춰도 사랑은 뛴다.


 


사랑하는 영수의 바램처럼 빠르게 지나치며 나도 달려볼까?


아픈 폐를 가진 그녀도 뛰어보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조여 오는 숨막힘에 결국 쓰러지고 마는 은희.


세상의 빠른 뜀박질에 발맞출 수 없는 것이 은희가 은유하는 순수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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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침이면 떠날 영수를 바라보는 은희.


 


둘이 맞대고 누운 이 씬에서 "페이스 오프"의 그 정체성 혼란이 느껴짐은 어인 일인가?


'세상 욕망'이 잠든 사이 애처롭게 바라보는 '순결한 영혼'


영수와 은희는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은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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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는 왜 사는 걸까?


 


은희를 떠나온 영수는 그전처럼 그렇게 자신을 태우며 세월을 보낸다.


하지만 그도 영혼을 가진 인간이었기에


마음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깊은 질문과 뼈저린 공허감에서 자유 할 수 없다.


 


 


감독이 술 좀 마셨나보다


화장실에서 거울 속 모습을 볼 때면 왜 그리 한심해 보이는지...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곤 했었다.


"너 왜 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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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자기 재밌었어?" "응, 재밌었어" "이쪽으로 넘어오지 그랬어? 재밌었는데..."


 


따로 놀던 수연은 영수에게 연신 재밌었냐고 묻는다.


각자 자신이 있던 곳이 재미있다고 말하지만


반복되는 질문은 그들 본연의 마음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야! 미친*아, 너는 이렇게 사는게 재밌냐?"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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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희망의 집


 


알래스카 지방엔 늑대를 잡는 특이한 사냥법이 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얼음덩이 위에 종이도 벨만큼 날카로운 칼을 세우고


그 번뜩이는 칼날에 동물의 피를 뿌려 놓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추위에 굶주린 늑대는 그 피 냄새를 맡고 찾아와


칼날위의 피를 핥는다. 차가운 바람과 기온에 감각을 잃은 늑대는


자신의 혀가 베어나가는 줄도 모르고 연신 흘러나오는 피를 핥는다.


화수분마냥 흘러나오는 달콤한 피가 자신의 것인지 모르고


허기가 부르는 욕구와 따듯한 피 맛에 배를 채우다 그렇게 죽어간다.


 


 


이 늑대가 어리석은가?


아니면 내가 더 어리석은가?


 


남 쉽게 답하지 못한다.


 


 


"행복은 얻을 때에 오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때 온다."


누구나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말이 나는 너무 어렵다.


 


 


그렇게 영수는 다시 희망의 집으로 간다.


정말 희망을 찾을 수 있으려나?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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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석정권  
영수:요즘 노후자금이 얼마 드는 지 알아? 4억7천이래.. 4억7천
은회:그렇게 많이 왜 필요해? 우리처럼 살면 큰 돈 없이도 살 수 있는데..
영수:그게 그렇지가 않지.. 앞날은 어떻게 하고...젊었을 때 뭔 가 대비를 해야지..
은희: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앞날을 왜 지금 부터 걱정해? 오늘 하루 잘 살면 그걸로 됐지..그리고 내일 잘 살구..그렇게 살면 된다고 생각해 나는...
영수:뭐가 그렇게 살면 되는데? 응.. 야..니 생각 처럼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건줄 알아. 지금 좋다고 나중까지 좋으란 법이 있어?
은희:난 나중 같은 거 몰라...
우린 앞날을 생각 하면서 행복과 멀어지고 있다.. 행복은 단순하게 생각 해야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이다...
영수 십새끼 한테 말하고 싶다.. 그래서 넌 미래 생각 해서 술마시고 다시 병원 왔냐?
3 체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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