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의 꿈'에 뜨거운 갈채를

영화감상평

<디 워> '영구의 꿈'에 뜨거운 갈채를

1 ROCK 2 3180 11
070802118600779240889600.jpg
열대어 애호가들에게 장래 키워보고 싶은 물고기를 고르라면 반드시 높은 순위에 랭크될 어종 중 하나인 아로와나(Arowana). 자연에서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여 보호종으로 지정된 희귀어로 남아메리카의 아마존과 호주,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귀한 물고기다. 자연에서 서식하는, 소위 ‘자연산’은 임의로 포획할 수도, 거래할 수도 없지만 그나마 양식된 개체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애호가들의 품에 안겨지는데 그 중 가장 고가로 거래되는 종류가 바로 아시아산 아로와나. 적게는 몇 십 만원, 많게는 수억을 호가하는 이 귀하신 몸들의 또 다른 이름은 다름 아닌 ‘용(龍)’이다. 유난히 용을 신성한 영물로 여기는 동양인들의 정서도 이 물고기 작명에 크게 작용을 했겠지만, 다른 지역에서 사는 사촌들과는 달리 찬란한 금빛과 처연한 적색으로 물드는 아시아 아로와나의 비늘 모양과 색깔을 실제로 본다면 하찮은 물고기에게 신령한 ‘용’의 이름을 허락한 까닭에 대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오래 묵은 뱀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 ‘용’은 아니지만, 용 비늘을 두르고 있는 이 물고기를 키운다면 가정을 지켜주겠지, 건강과 재산을 지켜주겠지. 동양인이 전설 속 ‘용’에게 갖고 있는 경외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전설 속 ‘용’과는 전혀 다른 열대어 ‘용’이 현세에서 거래되는 몸값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영화 <디 워>는 이런 동양 사람들의 신령한 영물 ‘용’을 생생하게 꿈틀거리는 모습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성과를 보여준다. 저 대단한 할리우드 CG에 비해 크게 손색없이, <용가리> 때에 비한다면 장족의 발전으로. 이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영구의 꿈’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낼 수 있다. 전체적인 짜임새가 약하다, 설정과 플롯이 엉성하다, 배우들의 표현력이 부족하다, 충분히 공감하는 영화 <디 워>의 단점들. 하지만 한국인 감독과 기술자들의 노고로 탄생한 순수혈통 동양 ‘용’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질책과 비난에 앞서 자신감과 기대를 갖게 만든다. 적어도 비주얼적인 기술만큼은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들과 경쟁할 수 있겠구나, 이야기의 뼈대와 전체적 구조가 좀 더 충실해진다면 얼마든지 대단한 토종 SF 영화가 탄생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열린 시장에서 그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겠구나, 저 엄청난 자본과 기술력이 양산하는 할리우드산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이전에 이런 기대와 자신감을 주는 토종 SF영화가 있었을까. 비록 오늘 본 영화 <디 워>에게 별 다섯 개를 주지는 못하더라도, <디 워> 제작진들의 다음 영화를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인내를 줬기에, 다시 한 번 나는 ‘바보 영구의 꿈’에 아낌없는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영구의 꿈’은 이제부터가 관건으로 보인다. 전작 <용가리>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커다란 발전의 성과를 이뤘지만, 감독 심형래가 호언장담하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 같은 브랜드와 월드와이드하게 붙기엔 <디 워>는 여러 가지로 무르고 약하다. 찬란한 발전을 이뤘어도 어차피 CG는 영화를 표현하기 위한 한 가지 도구에 불과한 것, ‘우리도 이만큼 멋지고 생생한 괴물을 만들 수 있어’라는 자랑은 이미 관객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다. 맛있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 좋은 배추가 필요하고 군침 도는 피자를 굽기 위해선 최고의 치즈가 필요하지만 어차피 배추나 치즈나 본체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완성물인 본체, SF 장르의 특성상 CG로 만들어진 화려한 볼거리는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양념일지는 몰라도 전체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척도일 수는 없다. 관객이 극장을 찾는 것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지 컴퓨터게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감독 심형래의 차기작은 새로운 기술의 CG를 고민하기보단 영화 전체의 뼈대를 탄탄하게 설계하는데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1991년작 <터미네이터2 - 심판의 날>은 초반 별다른 CG 볼거리 없이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보는 이를 이끌며 대단원을 위한 적절한 상황전개를 이어간다. 심형래 감독과 굳이 비슷하다면 비슷한 궤적을 그려온 주성치의 <쿵푸 허슬>도 자체적으로 만든 CG 기술력이 영화 적재적소에서 빛나며 탄력을 준다. <용가리>에 이어 <디 워>에서 축적된 토종 기술력도 반드시 그렇게 쓰여야 할 것이다.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만큼. 영화감독이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검증된 원작이나 실력있는 작가의 시나리오를 스크린에 옮기는 것도 얼마든지 즐겁고 행복한 작업 아닐까? 관객들에게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함께 영화를 본 여섯 살배기 딸내미가 묻는다.

‘아빠, 아까 그 머리에 뿔 달린 괴물은 뭐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우리 전설 속의 용을 처음 봤으리라. 이무기와 용의 관계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주곤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물었다.

‘응, 조금.’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아빠 덕분에 갓난이 때부터 극장에 다니면서 <반지의 제왕>,<해리포터> 시리즈는 물론이고 <킹콩>,<스파이더맨>,<캐러비안의 해적>부터 최근의 <트랜스포머>까지 어지간한 할리우드 SF 영화들은 두루 섭렵한 딸아이의 평가는 제법 희망적이다.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우리 토종 블록버스터가 월드와이드로 개봉하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이런 꿈이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란 자신감과 가능성을 보여준 <디 워>의 심형래 감독과 제작진들에게 다시 한 번 따뜻한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C9569-51.jpg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2 Comments
1 반지  
  잘 보았습니다..^^ .
디워를 보는 따뜻한시선을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표현만 다르지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2 오발탄  
  심형래 감독이 한번쯤은 꼭 이글을 봤으면 합니다.  애정어린 질타와 격려의글..
관객은 냉정합니다.  다음 작품에선 그래픽 뿐아니라  짜임새있는 스토리도 함께 기대해 봅니다.

제 아이도 같은 질문을 하더군요.. 뿔 달린 괴물.. 외국영화에서 보아왔던 날개 달린 용과 우리전설속에 살아 있는용..날개 없이도 잘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