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세계”와 “이노므 세상”

영화감상평

“우아한 세계”와 “이노므 세상”

1 흰곰 3 2405 5
“또 조폭영화냐? 한국영화는 조폭, 험한 욕 뭐 이런거 아니면 안되나?”

이런 소리를 듣기도 지겨워질 만큼

우리 영화계를 주름잡는 것이 조폭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세계”는

“송강호”라는 캐릭터의 묘한 아우라를 좋아하기에

개봉 전부터 무척 보고싶었다.

물론 아이의 아빠가 된 후 개봉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

롯데리아 만큼 세트메뉴화 되어

아이 둘과 아내 한 세트로 움직이다 보니

이것저것 고려하여 가지 치다 보면 그나마 볼 수 있는 것은

여러 동물의 탈만 바꿔서 같은 스토리에 입히는

드레싱 소스 개발의 달인 격인

미국식 애니메이션 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 때문에

결국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집에서 간신히 보게 되었다.

내가 뭐 그리 죄진 것도 빚진 것도 아닌데

이런 종류의 영화는 언제나

간첩이 모르스 부호로 은밀한 정보를 보내는 것처럼

가족이 다 잠든 야심한 밤에 최대한 숨소리를 죽여가며

투명인간 같은 존재 감으로 있는 듯 없는 듯 봐야 한다.

한국영화의 음향기술은 왜 그리 발전이 더딘 지

“안나의 일기”를 충분히 쓰고도 남을 척박한 영화 시청 환경 속에서

독일 비밀경찰과 비슷한 공포를 주는 가족을 깨우지 않고도

배우의 대사를 또박또박 알아들을 수 있는 절대 음감의 영역을 찾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이 열악함을 기꺼이 감내하고 본 “우아한 세계”는

내 기대에 부응한 “우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반도체 기술을 향후 20년간은 향상시킬 수 있는 비밀이 내제된 세밀한 얇기의 내 귀와

3분 안에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다 못해 동조까지 할 수 있는 주책없는 내 마음으로는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만한 영화였다.

이 시대의 아버지가 가지는 피곤함과 외로움을

영화 “행복을 찾아서”에서 그린 것처럼

좀 더 긍정적 접근으로 표현하지 않고

신물 날 정도로 지겨운 조폭으로만 대변해야 하는가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다지 조폭스러운 것과 다를 바 없기에

꼬투리 잡을 정도의 미스테이크는 아닐 듯 싶다.




한우와 수입산 쇠고기만큼이나 구분하기 힘든

조폭 세계와 약육강식의 현실.




한때 목이 쉴 정도로 부르짖던 자랑스런 우리 조국.

“대~한.민.국” 소리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짝짝짝~짝짝”

장단 맞췄던 이 위대한 나라가

이다지도 조폭 같은데

그 아래 사는 이 사회야 오죽하랴…..

“그대로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을 생색내며 외치는

말 바꾸기쟁이 복지정책이

1000원 주며 일주일 치 쇼핑목록의 식료품을 사오라는

조폭하다 헤어스타일 하나 고치지지 않고 바로 들어온

어깨고참과 다를 게 뭐며

프로그램이 어떻든 일단 틀어놓고

t.v를 보든 말든 공과금에 붙여

강제로 시청료를 징수하는 공기업이

돈 없다는 아이에게

단 물 빠진 껌을 직업정신으로 씹어가며

연신 10원에 한대를 강조하는,

꺾어 신은 신발을 포인트로

그 세계 패션의 정석을 보여주는

동네 양아치와 뭐가 다른가?

애국심 하나로 목숨 내놓고 밀어준 국민기업이

최선의 차를 외국에 헐값으로 수출하고

이 나라 국민에겐 1000만원 웃돈 붙여 똥차 몰라고 강요하는 이 행태에서

불쌍한 사람 좀 도와 달라며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이유를

눈 부라리며 설명하는

문신 화려한 볼펜 세일즈맨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느냐 말이다.




“기름 아껴야 한다”며 연일 강조하고 있는 재경부 장관 및 그 단체들의

고급차 출근행렬을 보고도 “아하! 그렇구나 그러면 되겠네~”

감탄할 정신 나간 사람이 없듯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조폭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약자에겐 잔인한 정글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감독은 이 새로울 것 없는 상식 수준의 관념들을

전직이 훌륭한 교사가 아니었을까? 라는 상상이 들도록

너무도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조폭 송강호를 일순간에 제압하는 관리소장,

남이야 칼을 맞든 말든 거스름돈을 세세하게 챙겨주는 주차장 관리 아가씨의 카리스마와

어느 회사 과장 같은 평범함을 풍기는 중간 보스 인구(송강호)의 대비는

유난히도 키가 작으셨던 중학교 때 수학 야마꼬(꼬마야) 선생님의 “이꼬르(equal) 증명”처럼

이 시대 > or = 조폭사회,

즉 이 시대는 조폭사회보다 크거나 같다를 증명해 보이려는

은사 같은 감독의 의도를 대놓고 드러낸다.




지금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조폭이든 조폭이 아니든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가족이 우아한 세계에서 살기 원하며

스스로를 태우며 힘겹게 버텨간다.



그 모습을 그리려 한 감독의 그 뜻을

서두에 밝혔던 것처럼

충분히 이해하고 또 흥미롭게 봤지만

개인적으로

남들이 모두 인상 깊게 보았던

인구의 마지막 라면 먹는 씬은 내겐 몹시 불만스럽고 불편하다.

그 불평의 원인은 영화적 완성도와 상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이 냉정한 시기에 자식을 키우는 아빠로서는

인정하고 싶지않고 바라지 않는 결말이어서다.




새마을 운동으로 시작한 전 국민의 노력과 집념은

우리나라에게 눈부실 정도의 부와 경제력을 가져다 주었지만

고속도로를 내고 세계를 뚫은 우리의 경제발전은

모두를 일에 내몰리게 하여 가족간의 소통만은 철저히 막았고

그 결과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이혼률과 수많은 결손가정을 낳게 하는 그림자를 가지게 되었다.

그 성장발전의 시대를 안은 아버지를 대변한

인구는 또한 그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름처럼 모든 인구가 그 당시 산업발달에만 매달렸듯

조폭 인구 또한 그것이 어떠하든 성실히 감당했다.

가족에게 그저 먹고 잘 수 있는 것만 제공하면 되는 줄 아는

이 시대 산업전사 아버지의 전형적인 행로를 걸은 것이다.

이 노므 세상이 강요하는 그 길을 정신없이 달린 것이다.




가족임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함은 소통의 부재 때문이고

철저히 자기자신의 생각과 방식만을 고집해서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

항상 자식에게 좋은 것일 수 없음을 인정하고

대화와 배려, 이해로 대했어야 했다.


인구가 꿈꿔야 했던 것은

가족이 그럴 듯하게 살 수 있는 큰 집이 아니라

꼭 들어가고 싶은 따듯한 집이었어야 했다.

가족의 생각을 무시한 일방적인 희생은

인구 혼자 덩그러니 남은 큰 집 만큼이나

쓸모없고 오히려 가족과 자신을 더 외롭게만 할뿐이었다.




아버지로서 나는 “우아한 세계”의 인구처럼 살기싫다.

같은 시기에 본 영화 ”에스트로넛 파머”의 파머처럼

가족을 위하다 잃은 꿈을 가족의 도움으로 이루는 아버지가 되고싶다.

꿈을 이루는 것보다 소중한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 행복한

다소 닭살스러운 멘트지만 그처럼 사는 것이 내 꿈이다.

정녕

그것이 내가 바라는 “우아한 세계”다.





세상엔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들이 많지만

양육자가 아닌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남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진짜

“아빠”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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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김우빈  
  이 글 읽고 댓글 남기려고 록그인 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칭찬하고 싶은 감상평이었습니다. 박수!!!!!
1 오페라  
  화이팅~ ^^/
1 김우중  
저도 댓글 남길려고 1년만에 로그인했어요.. 솔직히 본인이 쓴글인지 약간이나마 의심은 했지만..
정말 유쾌하고 통쾌하고.. 공감가는 글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