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락보다 더 아픈 하프넬슨
난 원래 아이를 싫어했다.
정말로 애들이 싫었다.
특히 식당 같은 곳에서 그 저력을 보여주는 자유스러운 행동과 고함은
나의 숨겨진 야수본능을 불러일으켜서
그 아이들과 부모들을 번갈아 보며
연신 나오지도 않는 핏발선 안구 레이져를 발사하게 했다.
또한 더 나아가 독립 운동가처럼
한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한탄하게 했다.
그러한 네가지 상실의 족속들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 때는
내 아이들이 생기고 자라면서부터다.
눈만 깜빡이던 것들이 아장아장 걷고 제법 엄마 아빠를 부르더니
이내 세뱃돈에 대한 소유권을 부르짖는 지적인 생명체로 성장하는
그 과정 속에서 내 아들들과 함께 나의 그 편협한 마음도 같이 진화했다.
결국에….
이젠 식당에서 온갖 레이져 세례와 구국의 함성을 뒤로하고
욕설자에서 피 욕설자로
통제하기 너무 힘든 아이들을 돌보는 그 문제의 아빠가 됐다.
흐르는 물을 손으로 틀어 막는 것같이 절대 막을 수 없는 우리 아들들.
수줍고 얌전하기만 하던 우리 마누라를
이단 옆차기에 능한 액션 배우로 거듭나게 한 우리 두아들.
그 놈들이 소리치는 나의 호통 사이로 쏟아내는
독해 불가능의 이상한 의성어와
정신을 흐트리는 그 함성조차도 난 사랑하게 되었다.
가끔 뉴스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관한 비극적 사건이나 사고를 접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난다
그 아이들이 그냥 그런 아이가 아님을 그냥 자란 아이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수많은 나날의 기다림과 지새움, 기쁨과 걱정, 관심과 배려로 만들어진,
누군가의 마음을 태워 살려낸 불꽃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하얀 눈 위에 피를 떨구는 그런 범죄나 사고는 나를 흥분케 한다.
사나이가 태어나 세 번만 울어야 하는데
그렇게 치면 난 이미 죽고 부활한 예수님이 되도 천 번은 된 셈일 것이다.
우리 마누라는 위문편지 써주던 군인 아저씨들이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닌 아이들로 보였을 때
자신이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고 하는데
난 나의 아들과 더불어 다른 아이들을 사랑하게 된 때부터 어른이 된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실감이 가지 않았던, 자다가 울면 같이 울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절대 죽어선 안된다,
무단 횡단하다 차에 치어 죽더라도
횡단보도까지 기어코 기어가 손끝이라도 대서
많은 보상금을 이끌어 내고 가야 한다 굳은 결심하게 된 지금.
이처럼 죽음에 임하는 각오를 바꿀 만큼
나에게 있어 아이들은 정말 소중한 존재다.
이런 귀중한 존재에게 난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나를 우주로 보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 보는
저 눈망울을 보고 삶에 대해 뭐라 말해줘야 하나?
덩치 큰 힘센 사람이 끄는 힘보다 자동차가 끄는 힘보다 더 강한
마음까지 끌려가는 나의 아들들의 얇은 손의 이끌림이
나의 삶과 생활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
인간이기에 가지는 부족함과 한계를 어찌 말하며
살아가야 할 방식과 실제 사는 방식의 괴리감을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
어떻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정성스레 모아둔 동전들을 아낌없이 들고 와
고장난 차 버리고 새 차를 사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나의 꼬마들에게
난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하프 넬슨”
레슬링의 목 누르기 기술을 뜻하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내가 처한,
또한 영화 속 주인공 “던” 선생님이 처한 이 막막한 상황을
너무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포식자의 강압적인 힘과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내딛는 아이의 발걸음이 주는 압박과 조여옴을,
그 느낌을 느끼게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님과 “데인져러스 마인드”의 선생님과는
거리가 한참 먼“던”선생님.
자신의 삶도 바꾸지 못하는, 자신이 온전히 살아가는 것조차 힘든 “던”선생님.
선생으로써 단 한 학생만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 바램은
내 아들들에게 품은 나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감추기에 급급한 인생의 조각과 생각의 편린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선생님은
인간이나 역사나 늘 상반됨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계속 말하며 변명처럼 역사수업을 해나간다.
하나님이 만든 창조물은 완전한 것이 아닌 불완전한 것이라며
다만 이 부족함을 가진 존재가 옳은 쪽으로 변해가려는 것이라며
그 자신에 대한, 학생들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
나도 그처럼 늘 부족하기만 하다 어지러운 인생이다.
하지만 우리 아들이 꼭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
나의 모습이 내가 바라는 모습과 다를지라도 거기에 못 미치더라도
내가 바라는 이 마음은 진실이란 걸…진짜라는 걸…..
나도 “던”선생님처럼 꿈을 이룰 수 있을까?
Ps
표면적 감동 없음. 눈물따윈 필요없어……
잘 생긴 배우도 근사한 대사도 없지만 색다른 감동
10대 연령 분들 되도록 피할 것
톡 쏘는 맛없고 밋밋하지만 아련한,,,그 무엇.
정말로 애들이 싫었다.
특히 식당 같은 곳에서 그 저력을 보여주는 자유스러운 행동과 고함은
나의 숨겨진 야수본능을 불러일으켜서
그 아이들과 부모들을 번갈아 보며
연신 나오지도 않는 핏발선 안구 레이져를 발사하게 했다.
또한 더 나아가 독립 운동가처럼
한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한탄하게 했다.
그러한 네가지 상실의 족속들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 때는
내 아이들이 생기고 자라면서부터다.
눈만 깜빡이던 것들이 아장아장 걷고 제법 엄마 아빠를 부르더니
이내 세뱃돈에 대한 소유권을 부르짖는 지적인 생명체로 성장하는
그 과정 속에서 내 아들들과 함께 나의 그 편협한 마음도 같이 진화했다.
결국에….
이젠 식당에서 온갖 레이져 세례와 구국의 함성을 뒤로하고
욕설자에서 피 욕설자로
통제하기 너무 힘든 아이들을 돌보는 그 문제의 아빠가 됐다.
흐르는 물을 손으로 틀어 막는 것같이 절대 막을 수 없는 우리 아들들.
수줍고 얌전하기만 하던 우리 마누라를
이단 옆차기에 능한 액션 배우로 거듭나게 한 우리 두아들.
그 놈들이 소리치는 나의 호통 사이로 쏟아내는
독해 불가능의 이상한 의성어와
정신을 흐트리는 그 함성조차도 난 사랑하게 되었다.
가끔 뉴스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관한 비극적 사건이나 사고를 접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난다
그 아이들이 그냥 그런 아이가 아님을 그냥 자란 아이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수많은 나날의 기다림과 지새움, 기쁨과 걱정, 관심과 배려로 만들어진,
누군가의 마음을 태워 살려낸 불꽃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하얀 눈 위에 피를 떨구는 그런 범죄나 사고는 나를 흥분케 한다.
사나이가 태어나 세 번만 울어야 하는데
그렇게 치면 난 이미 죽고 부활한 예수님이 되도 천 번은 된 셈일 것이다.
우리 마누라는 위문편지 써주던 군인 아저씨들이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닌 아이들로 보였을 때
자신이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고 하는데
난 나의 아들과 더불어 다른 아이들을 사랑하게 된 때부터 어른이 된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실감이 가지 않았던, 자다가 울면 같이 울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절대 죽어선 안된다,
무단 횡단하다 차에 치어 죽더라도
횡단보도까지 기어코 기어가 손끝이라도 대서
많은 보상금을 이끌어 내고 가야 한다 굳은 결심하게 된 지금.
이처럼 죽음에 임하는 각오를 바꿀 만큼
나에게 있어 아이들은 정말 소중한 존재다.
이런 귀중한 존재에게 난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나를 우주로 보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 보는
저 눈망울을 보고 삶에 대해 뭐라 말해줘야 하나?
덩치 큰 힘센 사람이 끄는 힘보다 자동차가 끄는 힘보다 더 강한
마음까지 끌려가는 나의 아들들의 얇은 손의 이끌림이
나의 삶과 생활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
인간이기에 가지는 부족함과 한계를 어찌 말하며
살아가야 할 방식과 실제 사는 방식의 괴리감을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
어떻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정성스레 모아둔 동전들을 아낌없이 들고 와
고장난 차 버리고 새 차를 사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나의 꼬마들에게
난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하프 넬슨”
레슬링의 목 누르기 기술을 뜻하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내가 처한,
또한 영화 속 주인공 “던” 선생님이 처한 이 막막한 상황을
너무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포식자의 강압적인 힘과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내딛는 아이의 발걸음이 주는 압박과 조여옴을,
그 느낌을 느끼게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님과 “데인져러스 마인드”의 선생님과는
거리가 한참 먼“던”선생님.
자신의 삶도 바꾸지 못하는, 자신이 온전히 살아가는 것조차 힘든 “던”선생님.
선생으로써 단 한 학생만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 바램은
내 아들들에게 품은 나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감추기에 급급한 인생의 조각과 생각의 편린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선생님은
인간이나 역사나 늘 상반됨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계속 말하며 변명처럼 역사수업을 해나간다.
하나님이 만든 창조물은 완전한 것이 아닌 불완전한 것이라며
다만 이 부족함을 가진 존재가 옳은 쪽으로 변해가려는 것이라며
그 자신에 대한, 학생들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
나도 그처럼 늘 부족하기만 하다 어지러운 인생이다.
하지만 우리 아들이 꼭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
나의 모습이 내가 바라는 모습과 다를지라도 거기에 못 미치더라도
내가 바라는 이 마음은 진실이란 걸…진짜라는 걸…..
나도 “던”선생님처럼 꿈을 이룰 수 있을까?
Ps
표면적 감동 없음. 눈물따윈 필요없어……
잘 생긴 배우도 근사한 대사도 없지만 색다른 감동
10대 연령 분들 되도록 피할 것
톡 쏘는 맛없고 밋밋하지만 아련한,,,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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