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 잔혹한 현실과 상징의 무거움....

영화감상평

[판의 미로] 잔혹한 현실과 상징의 무거움....

1 kysom 5 2414 6
이 영화가 개봉하기전, 각종 매체에서의 홍보의 영향이기도 했지만, 많은 판타지 영화팬들이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리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다가 영화가 개봉해서는 이상하게도 그 열기가 죽는 듯이 느껴졌고, 범상치않은 감독임에도 영화가 재미가 없었나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서서히 잊혀져가던 어느날~~ 이 영화가 홍보의 잘못으로 관객들로부터 잘못된 평가를 받았으며, 그만큼의 평가절하가 있었다는 내용의 글을 무비스트에서 접하게 되었다.... 그럼, 판타지가 아니라면 무엇?


영화를 보고나서야 그동안 이 영화가 개봉이후 겪었을 부침이 이해가 되기시작했고 왜? 우리나라 영화 수입업자(유레카 픽쳐스)는 <기예르모 델토로>가 어떤 감독인지 뻔히 알면서 이런 황당무계한 보도문을 돌렸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그리고 왜? 기자들은 언론 시사회를 했을텐데 이 영화가 실은 판타지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음을 한줄 글로 실어 남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관객들은 감독의 전작을 접했음에도 어떠한 다른 밝은(?) 요소를 기대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도 마찬가지로 들었다.


난 판타지 장르가 무엇이고, 어떠한가에 대한 내 나름의 영화적 식견이 부족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것으로 유추해보자면, 가상의(허구의) 가공된 시대와 장소를 설정하여 인물들의 대하서사를 풀어가는 종류가 있었고(반지의 제왕과 같은), 현실에서 그 경계를 그어 한발만 더 디디면 실은 우리가 모르는 환상의(허구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며 극을 풀어가는 종류가 있었다(해리포터 시리즈, 나니아 시리즈). 물론 극을 풀어가는 철학과 관점은 모두 다를 수 있다. <나니아 연대기>처럼 기독교적 세계관이 강하게 개입할 수도 있으며, <반지의 제왕>처럼 신화에 바탕을 두고 전개될 수도 있다. 반전과 평화에 대한 메세지를 던질 수도 있으며, 그것이 성장에 대한 교훈적 드라마(테라비씨아처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영화에 대해 내가 개인적으로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는 이 작품이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창작 시나리오라는 점이다. 몇권에 이르는 원작을 바탕으로 해서 정말 중요하게 영화적 가치가 있는 내용을 뽑아내어 각색을 한 것이 아니라 감독의 역량으로 만들어낸 역사/비역사의 세계가 한데 섞여있는 나름대로 비극적이고 나름대로 몽환적이며 생략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영화적 공간을 구성해내었다는 점에서 인정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다보면 이 부분에서는 뭔가 설명이 더 필요한 것 같은데.... 라는 곳에서 잘라버리고 그냥 지나가기도 하고, 영화속에서 구성상 간과되거나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않다면 그냥 없이 지나가버리는 부분이 뚝뚝 끊어지듯이 존재하기도 하는데, 영화를 보는 데 있어서 그렇게 큰 애로가 되거나 흠결이 되는 것으로 보이지않는다. 영화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단히 단순한 큰 기둥줄거리에 관객이 쉽게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의 인물설정과 배경 및 부차적 극전개에 균형잡힌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메인 테마를 놓치면서까지 영화를 봐야하는 난해한 극전개나 정서상의 혼란을 초래하는 번잡한 소재등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과연 <판의 미로>를 판타지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혹자는 이 영화를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렇게 불리기에 합당한 근거를 이 영화가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우선 이 영화는 오프닝에서 전제로 삼는 가상의 세계 즉 <오펠리아>가 만나게 되는 그 정령 <파우노>가 속한 세계에 대한 허구적 묘사가 너무 부족하다. 심지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그 지하왕국의 세계는 묘사되지않으며 단지 <파우노>가 오매불망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공주를 영접할 그 장소 즉 어두컴컴한 미로 공간에 대해서만 보여줄 뿐이다. 현실과 경계를 긋는 비현실/비역사의 공간에 대한 디테일이 없는 것이 실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정녕 보여주고자하는 영화적 세계는 그 허구의 장소/시간이 아닌 <오펠리아>가 사시나무 떨듯이 두려워해야하는 바로 1944년 프랑코 총통하의 스페인 시골마을이 아니었느냐 하는 것이다.


<제이슨>이 나오는 슬래셔 공포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시작한지 15분만에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는(난 유리병으로 사람을 수십번 쳐죽일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장면으로 충격을 안기기 시작하는 영화는 영화내내 시골마을을 점령하여 기지삼아서 반군을 소탕하는 정부군의 잔혹한 소탕작전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 악명 높았던 스페인 내전의 전/후에 대한 상징적 묘사일 수도 있고, 그통치하에 살았던 국민들이 느꼈던 정서적 공포에 대한 묘사일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맥은 책에 빠져 사는 소녀 <오펠리아>가 요정과 <파우노>를 보게되는 것이 스페인의 공포상황을 축소판처럼 보여주는 그 마을에 도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는 것이다. 마을의 숲 입구에 자리잡은 <파우노>의 미로 구조물을 보면서부터 사실 판타지는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자유와 민주를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각오가 되있는 마을 전체 주민들, 그들은 성인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은 뒤 오직 어머니만을 보면서 살아왔던 어린 소녀 <오펠리아>가 할 수 있는 투쟁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두가지, 자기가 사랑하는 어른들이 안전하게 있는 것과 자신속에 구축된 동화적 세계에서 안식을 구하는 것 뿐일 것이다.영화는 크게 두가지 장면에서 잔혹한 현실과 동화적 판타지의 불명확한 충돌지점을 만들어놓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판타지적 설정에 대한 강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와 곧 태어날 동생에 대한 안전, 그녀를 이해하고 따스하게 감싸주는 가정부 <멜세데스>에 대한 염려와 그리움, 그속에서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지하 왕국으로의 귀환은 끝내 무산되고 만다. 그것이 <오펠리아>가 하는 3가지 선택의 미션수행에서 저지른 잘못때문이 아니라, 결국 그녀가 속한 현실이 그녀의 안식처가 더이상 안전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홍보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내뱉었던 단어가 <판타지>였기에 관객이 예상했던 결말과는 다르게(달라도 한참 다르게) 영화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그리고 잔혹하면서도 힘든 여정을 거쳐서 감독은 한 소녀의 피를 내보이며 말한다. "아름다운 왕국의 번영과 평안을 위해서는 결국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지금 버려두고 가는 진실한 가치들은 뒤안에 남더라도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겠지만 우리는 고이 다시 그길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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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S MacCyber  
  이렇게 현실과 허구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 하는 영화들 상당히 매력이 있습니다.
K-Pax (2001 : 외계인인지 아닌지)도 그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Oh God! (1977 :
하느님인지 아닌지) 같은 영화들은 어느 쪽인지 결론을 안내리지만 그 어느 쪽이라
해도 다 수긍이 가는 탄탄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1 BlueWing  
  "판타지" 라는 용어에 집착하지 않고 영화를 읽어내는 방법도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일례로 오펠리아가 파우노를 만나기 전에 이미 멜세데스와 의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게 됩니다. 그 이후에 파우노를 만나 자신의 왕국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세가지 과제를 받게 되는데 그것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멜세데스가 비달대위에게 준 창고열쇠-오펠리아가 두꺼비로부터 찾아 온 열쇠, 멜세데스가 허리춤에 감아넣은 칼-오펠리아가 눈깔괴물 있는 곳에서 가져온 칼 등등...<BR><BR>다시 말하면 프랑코 치하의 고통을 오펠리아도 자신의 방식으로 고스란히 체험하고 느끼고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이죠. 어린이가 단지 동화속의 세계를 꿈꾸거나 망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어른들과 똑같이 욕망하고 고통받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존재라는 것. 기예르모의 이전 영화 <악마의 등뼈>와 같은 맥락입니다. <BR><BR>어쩌면 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냥 반가운 리뷰 같아서 몇마디 긁적거려봤습니다. ^^;;
1 강마이  
  저도 판의 미로 재밌게 본 사람중의 한명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제일 먼저 느낀것이..이거 원작은 뭐지?? 만약 창작시나리오라면..이 시나리오쓴 사람은 진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이정도로 시나리오 자체가 맘에 들었습니다..저만 그렇게 느낀것이 아니었네요..ㅎㅎ 간만에 판의미로 평 보니 반가워서..ㅎ
14 DUE  
  장르가 무었인지..

홍보가 어땠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난후에 느낀점은

오랜만에 괜찮은 영화를 봤다는 겁니다..

후편이 만들어 진다면 또 보고 싶군요..

1 룰루 ~  
  아주 좋은 평과 댓글들입니다 ~<BR>(다만 감상평을 조금만 간략하게 해주셨으면... 읽기에 더 좋았을것이라는 생각이...)<BR><BR>'K-Pax'<BR>'케빈 스페이시'의 매력이 물씬 배어나오는 명작입니다 ^^<BR><BR>'판의 미로'에서 손바닥에 눈 박고 다니는 몬스터가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