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月의 크리스마스' 그 절제와 관조의 미에 대해....

영화감상평

'8月의 크리스마스' 그 절제와 관조의 미에 대해....

1 빌리 4 1939 0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영화.

다시 봤다.
역시 좋았다.
그래서 다시 감상평을 쓴다.
이 영화에 대한 내 느낌을 어딘가에 꼭 간직해 두고 싶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모든 것은 철저히 관조되고 절제된다.
이 영화는 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낼 줄 안다.

영화속 주인공들 사이엔 사랑이라는 말, 또는 사랑의 행동이라고 단정지을만한 어떠한 표현도 오고가지 않지만 보는 이는 조금도 못알아 듣는 일이 없다.
표현의 절제를 통해 더 큰 표현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테다.

비교적 말수가 적은 정원은 동생이 그의 옛 사랑 지원에 대해 물어 보자 한 마디 대답도 않은 채, 애매한 수박 씨만 불어 내뱉는데 이게 바로 정원의 표현 방식이자 영화의 표현 방식이다.

또한 죽기전에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도 비밀을 감추고 있는 정원의 한탄도, 이불속에서의 울음도 늘 같은 중간자적인 위치와 시선을 유지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별다른 극적인 감정의 굴곡 없어도 주인공들의 몸짓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시선 하나하나에 볼때마다 새로운 의미와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특히나 정원이 고장난 스쿠터를 맡긴 비내리는 어느 날
다림을 만나 함께 우산을 쓰고 오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정원의 쪽으로 우산을 기울이느라 어깨가 흠뻑 젖은 다림도 좋았고 그런 그녀를 조심스레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는 정원의 모습도 좋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어오는 장면에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 준 연출도 좋았고
극 중 내내 실생활에 가까워 보이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완벽에 가까운 하모니를 보여 준 두 주인공들도 좋았고
마치 우리의 일상을 보는듯한 화면들과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도 좋았다.

마지막 17여분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담아낸듯 절제와 관조의 미가 극치에 달하는데, 대사 한마디 없고 그 흔한 이렇다 할 클라이맥스 조차도 없다.
오로지 음향과 영상만으로 영화를 꼭꼭 채운다.
그래도 느끼기에 어느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죽음이라는 완전 소멸의 운명 앞에서 무언가 소중한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사진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말해지고 있는듯 한데...
특히 담담한 미소로 죽음을 준비하던 정원이 남긴 소중한 흔적 앞에서 환한 미소를 보이던 다림의 마지막 장면은 잊혀지질 않는다.

그 외 무거운 짐을 들고 가던 다림을 정원이 스쿠터에 태워 주던 장면, 파출소에서 절규하던 정원의 장면, 마루에 누워있는 정원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이던 장면, 서로에게 아이스크림을 권하던 장면, 자는 줄 알았던 다림이 나중에 차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는 장면, 사진관 유리를 돌멩이로 깨뜨리며 울먹이던 다림의 장면 등등.....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장면장면 대사 하나하나까지 버릴 것 하나없게 느끼게 해 준 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개인적으로 앞으로도 가끔 생각날 때마다 두고두고 감상하게 될 것이며,
나중에 내가 늙어서 돌연사가 아닌 자연사같은 걸로 준비된 상태에서 죽을 수 있다면 눈감기 전에 꼭 한 번 더 감상해 보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 평점
★★★★★/5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4 Comments
10 검풍  
  좋은 영화죠.
저도 두번 정보 봤습니다.
1 정경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시나리오는 수능 언어영역 문제집에도 자주 실립니다...^^*
1 삶의여유  
  저도 아주 좋게 봤습니다. '미술관 옆 동물원'과 더불어 심은하를 단지 얼굴만 이쁜 탈렌트가 아닌 영화 배우로 기억하게 해주는 영화라 생각합니다.
1 정일호  
  말씀 잘 하셨습니다. 제가 평소에 갖던 영화에 대한 느낌을 똑같이 표현하신 것 같아 감사하군요. 아직 그렇게 오래 산것은 아니지만 눈과 마음으로 보아왔던 그 어떤 작품과 비교해도 단연 최고입니다. 전 특히 파출소에서 절규하는 것과 마루에 누워있는 정원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고, 다림과 함께 스쿠터를 타는 장면이 가장 행복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