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대한 의문들

영화감상평

<청연>에 대한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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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서 친일의 여부를 떠나 한 여자의 삶만을 바라봐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나는 감독에게 이렇게 묻고싶다. 당신은 친일의 여부를 떠나서 한 여자의 삶만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나? 그 삶에 친일 여부와 무관하게 어떤 감동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나? 혹시 그 삶에 그 삶이 이루어진 시대의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추상시켜 적당히 '보편' 감동주의 포맷에 맞춰 가공하면 상업적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흥미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닌가? 하필이면 왜 박경원인가? 그녀가 비행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여성이자 식민지 출신 여성이라는 이중의 불리한 조건에 '맞서 싸운' 감동적 인간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인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친일이냐와 무관하게 그녀는 일제의 호의를 얻음으로써 그 꿈을 실현했다. 물론 호의를 얻기 위한 적당한 타협이 그녀의 성공을 다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그녀는 어떤 투쟁이라고 할만한 것을, 꿈과 진취적 기상을 지닌 인간이라면 늘 하기 마련인 어떤 남다른 노력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적어도 영화 속의 그녀는, 꽤 어여쁘고 안타깝게 삶을 마감했다. 아마, 그녀가 그렇게 비극적이고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죽지만 않았어도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그녀가 그 불리한 조건들과 자신의 자발적 선택으로 맺었던 관계보다는, 그녀가 꿈을 성취하기 위해 한 타협보다는 그녀의 꿈에, 그 꿈을 이루려는 남다른 인간적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영화를 영화 자체로서만 보기를 거부하거나 열혈 민족주의자나 애국자들의 감수성보다는 잘못만난 시대와 인지상정상 이해할 수 있는 타협만 했을 뿐 그 외의 행적에서는 기특하고 용감한, 매력적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보통 인간들의 보통 감수성을 타켓으로 한다. <청연>은 철저히 보통의 감동을 원하는 보통의 대중을 위해, 즉 거의 흥행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혹,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가?  <청연>에는 어떤 네티즌이 말한대로 '자신의 내면의 고민과 맞서는 사람, 상충되는 가치들 속에서 선택을 고민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욕망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사람, 아무런 고민도 없이 자신의 길을 우직하게 갔던, 일관되게 '위대한' 사람보다 훨씬 매력적인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가? 자신 한몸의 영달이나 성취를 넘어서는 큰 가치들의 실현을 위해 단순무식하게 완전한 확신을 갖고 매진하는 위인도, 개인적인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면 규모 큰 가치들에는 거의 신경을 몰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타락한 인간도 아닌, 가장 인간적인, 고민하고 갈등하고 좌절하고 자학하면서만 시대나 조건과 타협하는 인간이 있는가? <청연>에 그 고민, 갈등, 좌절, 자학이 드라마틱하게 형상화되어 있나? 그 고민, 갈등, 좌절, 자학의 시대적 및 사회적 조건이 일말이라도 구체적으로 장면들을 차지하고 있나? 이 모든 의문들에 긍정적 답변을 달 수 있다해도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의문이 남는다. 박경원은 '정말로 그런' 인물이었나? 들려오는 소문이나 올라오는 글들을 종합하면 <청연>은 그 정도의 영화는 아닌듯 하고 실존 인물 박경원도 그 정도의 인물은 아닌듯 하다. 그리고 그 정도의 영화도 아니고 그 정도의 인물도 아니면서 '아름답게' 잘 만들어진, 볼거리 많은 영화이기에 <청연>은 '전형적인 대중'이 아닌 이들에게는 좋은 영화가 못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자막만 정확히 받쳐준다면 화성인이나 아마존 오지의 원주민도 감동할 수 있는, 무국적적이고 무역사적인 '보편주의적 휴먼 드라마'를 만드는데 아무런 문제도 못느끼는 감독의 무교양한 센스에 약간의 혐오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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