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 원정기-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영화감상평

나의 결혼 원정기-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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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신문 광고란 조그만 칸에는 '베트남 여성과 결혼 하실 분, 100% 결혼 성사보장'과 같은 희한한 광고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도무지 '나의 일'로는 여겨지지 않는 이 광고를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곤 했다. '저런 광고를 보고 결혼 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굴까'하면서.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는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바로 그들, 이른 바 '결혼 원정'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영화는 멜로와 코미디의 전형적인 틀을 잘따라가면서 관객에게 기대한 것 만큼의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제공한다. 만택(정재영), 희철(유준상), 라라(수애)의 특별히 흠 잡을데 없는 훌륭한 연기 또한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을 듯 하다. 영화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두 시간을 즐기기에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멜로/코미디 물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들(영화는 단지 농촌 현실에 대한 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을 동시에 '잘' 담아내고 있으며, 이것은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예컨대 영화 초반부에 만택과 희철이 막걸리에 취해, 마을회관에서 한 바탕 사고를 치는 장면이 있다. 영화는 술에 취한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면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나 배추 농사 망해서 갈아 엎었을 때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와 같은, 결코 웃고 넘어 갈 수 없는 장면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평소에 얼마나 답답했었는지, 영화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거쳐 온 마을에 퍼져나간다. 이처럼 영화가 끊임없이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우회적인)비판, 문제제기는 영화를 단순한 코믹멜로물 이상의 그 무언가로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꽤나 '찡'한 장면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한 가지, 그 이름도 거창한 '제13기 결혼 원정대'가 우즈베키스탄에 처음모여 술자리를 갖는 장면이 있다. 만택이 원정대 중 이전에도 온 경험이 있는 상진에게 묻는다.

"외국인들하고 선 볼때 말입니더, 말이 잘 안통해가꼬 힘들지는 않습니꺼?"

이에 상진이 답한다

"어차피 말 안통하는기야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아니겠능기요. 언제는 마 사람들이 우리말 들어준 적 있능교. 그라도 여기 사람들은 내 보면 환하게라도 웃어줍디다. 내는 그게 참 좋소"

아아, 시쳇말로 정말 '안구에 습기차는' 장면이다.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도덕 교과서에서는 항상 '농민분들은 우리가 먹을 밥을 만들어주시는 고마우신 어쩌구 저쩌구..'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그리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아무도, 아무도...
 
만택은 자신의 결혼 원정기를 회고하며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였다'라고 평했다. 글쎄, 영화속 '그들의 원정기'는 창대하게, 행복하게 끝났을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언제는 마 사람들이 우리말 들어준 적 있능교"라는 상진의 말이 귓가에 맴돌기만 한다.
 
영화는 분명히 보면서 웃을 수 있고 꽤나 뭉클한 감동도 느낄 수 있는 멜로/코미디 영화다. 그러나 결코 그저 웃을 수는 없는 영화다. 더군다나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봤을때, 영화는 결코 흐뭇하게 웃으며 지나칠 수만은 없다. 사실 영화는 무척이나 슬프다. 그리고 이 슬픔이 단지 영화속에 존재하는 갈등구조 때문에 오는 것 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영화 속 이야기는 그저 영화로 끝날 수도 있지만, 이 슬픔은 두 시간의 상영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도 우리를 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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