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 거~하게 낚였.....;;;

영화감상평

친절한 금자씨 - 거~하게 낚였.....;;;

1 리디 5 2573 1
스포일러라고 부를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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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이벤트에 당첨된 무료 쿠폰으로 방금 관람하고 왔습니다. 영화관을 빠져 나오며 머리 속을 퍼뜩 스치고 간 생각은..... "거~하게 낚였삼....."

별 세 개를 주었지만, 별 두 개 반과 세 개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여러 번 말씀 드렸듯이 별 세 개는 제가 '조낸 돈 아깝네' 내지는 '리디 ㅅ ㅂ ㄹ ㅁ' 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준에서 추천해드리는 영화 별점의 마지노선입니다. 당초 두 개 반을 결심했으나, 바로 뒤에 언급할 오프닝과 '말죽거리 영화' 씬 때문에 반 개를 보탰습니다.

오프닝은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올해 본 영화 중에서 외화/방화를 불문하고 가장 맘에 드는 오프닝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읽어본 영화평 중에 오프닝이 멋지면 영화가 달리 보인다고 말씀하시기까지 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그런 깐깐한 분들마저도 탄성을 지르지 않고는 못 배겨낼 정도입니다. '내가 영화를 잘 못 고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죠. 그러나 이 기대는 곧 깨지게 됩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산만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주로 한국영화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문제점입니다. 감독은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영화의 전체적인 긴장도를 점점 높여 관객에게 자신이 '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끔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시나리오가 중요하겠고 둘째로는 감독의 연출력과 함께 편집 능력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장면 장면들을 배치하는 순서를 결정하고, 관객의 몰입도를 방해하는 장면을 과감히 잘라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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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의 영화들은 관객들이 '도대체 저 장면을 왜 넣었을까' 싶은 장면들을 영화의 군데군데에 끼워넣음 - 혹은 방치함 - 으로써 '분위기'를 깨놓는데 아주 기여를 합니다. 감독이 특별히 의도한 내용이 있다손치더라도 그 의도를 관객이 연장된 긴장선상에서 받아들여야지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편집해버리는 건 남녀가 성관계 도중에 내일 아침밥 뭐 해 먹을까, 현관에 화분 물 안줘서 말랐더라, 아참 아파트 관리비 안 냈지 하고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생뚱하고 뜬금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친절한 금자씨'에서 '건식'이라는 인물의 의의는 무엇일까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 인물이 이 영화에 등장해야 할 필연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 하나 있군요. 차 운전해 주기.

하지만 말입니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내가 두려는 이 한 수 때문에 상대방이 어떤 수를 둘 것이고 그 다음 상황이 수습이 불가한 것으로 계산이 돌아간다면, 당연히 이 한 수를 과감히 포기해야 하듯이, 영화의 연출과 편집에 있어서도 특정한 인물과 특정한 설정이 필연적으로 불러올 무리한 진행이 예상이 된다면, 그 인물과 그 설정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 금자씨의 딸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금자씨가 유괴살인범이란 누명을 쓴 동기이자, 또한 13년동안 옥살이를 하게 된 이유이며, '죄와 벌'이라는 화두로 번민하는 그녀를 정화하고 위로하는 최후의 보루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등장하여 진행되는 장면들은 하나같이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립니다. 아이를 찾으러 호주로 간 장면이 그랬고, 아이와 함께 소풍을 간 장면이 그랬으며, 올드보이의 엔딩을 생각하게 하는 마지막 장면은 - 올드보이와는 달리 - 설득력 없이 마냥 건조하고 난해합니다.

금자씨가 자발적으로 누명을 뒤집어 쓸 만한 이유를 찾기 위해 '딸'을 설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그 설정으로 인해 영화가 불필요하게 맥이 끊기고 산만해진다는 걸 간파했다면 그 설정 마저도 포기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차라리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진즉에 죽여버리는 쪽으로 설정을 바꾸든가요. (그 인간이 왜 안 죽였는지도 심히 의문이군요.) 심지어 어떤 생각까지 했냐하면, 몇 안 되는 유려한 씬 중 하나인 최민식을 통역으로 하여 아이와 금자씨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위해 일부러 그 무리한 설정을 이어온 것은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이런 것들은 정말 소소한 것들이고, 어찌나 산만한지 영화 전체적인 구조 자체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런 건 어떨까요? 나래이션과 플래시백으로 (교도소 생활의)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구성을 버리고, 영화를 3등분합니다. 처음 1/3은 금자씨가 교도소에 들어가 부적응하며 갖은 고초를 겪던 중 그녀 고유의 트레이드 마크, '친절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끝내 '그 교도소에는 천사가 산대'라는 평가를 얻을 정도에까지 이르는 겁니다. 그녀의 신앙 간증 씬이 희화화되는 것이 아니라 심금을 울리는 정도가 되어야겠죠.

중반 1/3에서는 출소와 함께 '너나 잘하세요' 대사 한 방 날려주고 복수를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갑니다. 이때서야 비로소 플래시백을 사용해야죠. 그 친절했던 장면들이 사실은 간악한 속임수였다는 걸 말입니다. 앞에서는 못된 죄수를 밥 떠먹여 주며 극진히 간호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여기서는 '사실은 락스 탄 밥이었다'가 나오는 거죠. 예제들도 좀더 상세하고 선이 굵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비누칠 같은 장난은 관두고요, 억압받는 남을 위한 '작업'이 아닌 자신의 생존을 위한 철저한 변장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그녀의 친절함만을 드러낼 뿐인 미전향 장기수(?) 간호 씬은 생략되여야 하고요.

인맥을 통해 복수 대상의 신원까지 파악해두는 건 좀 심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녀의 불타는 복수심이 동력이 되어 직접 철저하고 주도면밀하게, 관객이 '허.... 진짜 심하다'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혀를 내두를 만한 사기 장면도 나와야겠죠. 빵가게 따위에서 일하는 건 말도 안됩니다. 관객이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게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최민식이 격리실을 나와 '10대 찌질이 깡패 새끼들'을 맞닥드렸을 때, "통할까?" "통한다" 라고 나직이 읊는 그 모습,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고 미워하여 이 세상 하찮은 것들은 날파리만큼이나 소소하게 느껴지는 그 아우라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마지막 1/3에서 복수를 시작하는 겁니다. 저는 '죄와 벌' 화두를 주는 것부터 반대합니다. 왜 그녀가 눈물을 보이고 흔들려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저 13년동안 '격리 자원봉사 활동'을 다녀온 거 밖에 없으니, 흔들림 없이 적개심으로만 불타기는 힘들겠죠. 그래서 아이를 죽이거나 교도소 생활을 험하게 그리라는 겁니다. '올드보이'를 생각해 봅시다. 최민식이 느끼는 복수심을 관객이 전적으로 공감하고 함께 행동합니다. 관객을 그렇게 만든는 것이 감독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금자씨의 복수심은 아무리 공감을 할래도 공감이 안되더군요. 그 남자가 좀 심했네 하는 정도? 그러니 '올드보이'에서처럼 관객이 주인공 최민식과 함께 눈에 불을 키고 거리를 헤매는 게 아니라, '이제 어떻게 되려나' 하는 관전만 남을뿐입니다.

비교하자면 '말죽거리 잔혹사' 정도가 이 영화에 어울리는 대칭이 될 듯합니다. 보지도 않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제가 기억하고 있는 건 유명한 대사 하나 때문이죠. "대한민국 족구하라 그래!" 마찬가지입니다. '친절한 금자씨'는 종반부 '단체 복수극'이 시작되기 전,

"그걸로 되겠습니까? 이거 빌려드릴까요?"
"아, 저는 뭐...."


요거 하나밖엔 기억할 장면이 없습니다.


덧.
좀 우습군요. 따지고 보면 홍상수 감독의 쫄딱 망한 영화, '극장전'이 이 영화보다 훨 재밌고 기억에 남는 게 많습니다.(별점을 비교해보세요.) 복수 시리즈인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이나 '올드보이'에서 퇴행한 듯한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많은 관객들 불러모을 것이고 그것은 전부 마케팅의 힘입니다. 올해 제가 본 가장 대단한 낚시질인 것 같습니다.

덧2.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여고생 이영애'는 좀 심했습니다. 스타일은 좋았으나 디테일은 안쓰러울 정도..... 박찬욱 감독님, 메이컵으로 안되면 CG라도 쓰시지 그랬습니까?

덧3.
까메오 출연이 좀 과했습니다. 특히 홍길동(익명 처리;;)의 등장은 좀 깼습니다. 사뭇 진지해야할 순간에 관객석에서 "어머, 홍길동이다!!" 하는 탄성이 터져나오니 이거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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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1 BlooD  
  그래프까지 그려가시며 열심히 비판해주셨는데...;;
장황하게 늘어놓은 만큼 썩 와닿지는 않습니다.
자칫 영화의 장점으로 불려도 될만한 부문을 구지 단점으로 전환시켜 부각시키려는 점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란 생각이 드네요.
1 김경훈  
  별세개는 너무 혹평인것같지만..

어쨌든 저도 기대이하였습니다.
1 장문희  
  오랜만에 만족하면서 본 영화였습니다. 보는 내내 집중이 잘되고 감독의 냉소적인 유머와 장난에 빠져들더군요. 개봉 삼일째 전국 85만명관객을 넘어섰다는데 그분들 모두가 낚이신건가요??
1 서상권  
  대중 관객의 입장에서 [친절한 금자씨]는 친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시간의 선형적 구조 아래서 사건이 전개되는 게 아니라, 금자가 왜 복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과거의 사건들이 그 사이에 파편적으로 박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자의 복수를 도와주는 감방 동료들에 대한 사연들도 금자가 각각 그들을 만날 때마다 역시 파편적으로 등장한다.

이런 서사구조는 친절한 것이 아니다. 각각의 작은 이야기들이 만나 큰 줄기를 이루며 도도하게 흘러가는 대중적 서사구조와는 다르게 관객들은 계속 심리적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금자의 복수를 향해 앞으로 진전되지만 그러나 마지막 목표물인 백선생을 향해 내달리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멈칫거린다.

따라서 금자의 복수에 감정 이입되어 그녀와 함께 복수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대중들의 욕구는 철저히 배반당할 수밖에 없다. 박찬욱 감독은 서사의 수직적 구조를 무참하게 풀어헤쳐버린다. 금자는 출소 후 이미 13년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복수를 차질 없이 진행시켜 나가지만, 관객들은 그녀의 내면과 동일화되어 금자를 유아 유괴살해범으로 만든 백선생을 증오하는 대신, 제 3자의 객관적 시점으로 금자를 바라보게 된다.

박찬욱 감독이 서사의 파편화에 따른 관객들과의 거리두기, 즉 브레히트식의 이화효과를 도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복수 3부작을 마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복수에 대해, 죄의 근원에 대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발언은 서사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이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금자의 복수를 둘러싼 이 상황,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임신을 했고 집을 나와 아이를 낳을 공간이 필요했으며, 교생으로 왔다가 금자를 보고 섹시하다고 말한 백선생에게 전화해서 찾아가겠다고 말한 뒤 아이를 낳아 기르다가, 유아 유괴범인 백선생이 아이를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수하고 감옥에 수감되기까지의 과정과, 복수를 계획한 금자가 그 뒤 감옥 안에서 어떻게 동료들의 신임을 얻으며 친절한 금자씨가 되었는지의 출소 이전 과거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은 대신, 파편적 서사 전개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 구조는, 금자의 복수를 둘러싼 이 상황을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게끔 거리를 두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1 JungMoo  
  "그걸로 되겠습니까? 이거 빌려드릴까요?"
"아, 저는 뭐...."

라는 대사와 함께...

조립하던장면... 영화관이 웃음바다가 된 그기억밖에 나질 않는군요...

잘뻔했습니다...

감상평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