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 누..

영화감상평

혈의 누..

1 Mazda 0 1873 1
예전에 '세븐'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 살인마가 성경에 나오는 '악덕'에 따라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두 형사가 이를 추적해 나가는 내용의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영화내내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와 음악의 조화로부터 풍겨나는 암울한 분위기였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이 분위기 때문에 몇 일간 괜히 우울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영화 '혈의 누'를 보고 다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동화도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 수사, 그리고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은 시종일관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먼저 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경고 아닌 경고를 하고 싶다. "가볍게 영화 한편 봐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 '혈의 누'를 보러갔다가는 낭패를 볼 지 모른다. 별 생각없이 영화를 접하게 될 경우 먼저 그 잔혹한 비주얼에 놀랄 것이며, 영화 후반부 클라이막스 부분을 지나 마지막 장면까지 보게 된 후에는 "젠장"이라는 말을 외치며 영화관을 나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관객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그것도 상당히.


영화는 1800년대 초반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전국에 단 한종류밖에 없는 국사 교과서에 따르면, '반상간의 계급질서가 붕괴되어가고, 자본주의의 맹아적 요소고 싹트고 있는'시기이다. 영화의 기본 플롯은 스릴러 장르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7년 전 천주쟁이로 몰려 일가족이 몰살 당한 후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마을사람들은 "강객주의 원혼이 떠돌고 있다"는 소문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떤다. 이 때문에 조정에서는 수사관 원규(차승원)을 파견하고, 사건의 진실을 차츰 밝혀나가는것이 이 영화의 기본 플롯이다. '사건의 발생 -> 수사관 등장 -> 사건 해결'로 요약될 수 있는 영화의 기본 플롯은 다른 스릴러 물들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스릴러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어떻게 사건이 일어났고, 누가 범인이며, 어떻게 사건을 해결했느냐'일 것이다. 지금은 완결됐지만 꽤나 인기 있던 만화였던 '소년 탐정 김전일'에서도 그러했듯, 사건이 정교하고 짜임새 있을 수록 관객에게는 더 많은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쏟아져 나온 여러 스릴러 물에서 반전이 중시되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혈의 누'는 이 점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 하다. 다만 영화는 "왜 사건이 벌어졌으며,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즉, 강 객주는 왜 누명을 쓰게 되었고, 왜 그 이후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졌으며, 마을사람들은 왜 그리도 강 객주의 저주를 두려워 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영화의 중심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화는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호흡 조절'을 하는데에는 그리 성공을 거두지 못한 듯 하다. 영화 초,중반에는 다소 급격히 사건이 전개되는 반면에 중,후반부에는 조금 늘어지고 다소 불필요한 장면들도 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범인이 밝혀지는 부분에서는(비록 영화에서 범인이 누군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별 설명 없이 그냥 지나가 맥이 빠지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들은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강력한 메시지,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느껴지는 전율감, 그 당시를 훌륭하게 재현해내는 의상과 소품, 깔끔한 영상과 음악의 조화로 충분히 상쇄된다. 그리고 단점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장점들은 영화를 단순히 '피튀기는 스릴러 물'이 아닌, 한 편의 잘 만들어진(Well-made) 영화의 단계로 진입시킨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실 영화는 그 마지막 장면까지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영화는 개봉 전 부터 그 잔혹성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이 꼭 '시각적 잔혹성'때문은 아닌 듯 하다. 그것 보다는 오히려 영화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의 행동과 지옥처럼 변해가는 현실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마음 속 깊이 숨겨져 있던 치부를 들킨 것과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도저히 영화를 무작정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심정적으로는 거부감이 들어도, 결코 거부할 수 만은 없었다고나 할까. 냉정하게 돌아볼 때 이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200년 전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 바로 '오늘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강 객주의 원혼은 아직도 세상을 떠돌고 있다. 그의 원혼은 우리가 인간인 이상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모습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 포스터 속 원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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