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 - 배반의 미학

영화감상평

지구를 지켜라 - 배반의 미학

1 김원규 3 1940 1

'장준환'의 재기어린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배반의 영화이다.

제일 먼저 말할 수 있는건 장르영화에의 배반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SF이자 추리극이고, 추리극이자 코미디이며, 코미디이자 새드무비이다. 대중오락영화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계급론적 투쟁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영화의 추세가 탈장르에 있는 만큼 "지구를 지켜라"가 장르영화를 배반했다 해서 크게 주목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역시 중요한건 뭔가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그 내용물인 것이다.

그러나 "지구를 지켜라"는 그 내용물에서 더 심하게 배반을 한다.

주인공 병구는 순이에게 배반당하고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 또다시 형사에게 배반당한다.
하물며 주인공 병구조차 우리를 배반한다.

그 부분을 좀더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영화 속 병구는 형사에게 "지구를 부탁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아주 단순한 장면같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않다. 그 순간에도 우리는 배반당하고 있으니까...

이 장면에서 병구가 형사에게 외계인존재증명을 이뤄내는 과정에 있어서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부탁하는것 같지만 병구가 고개를 돌리며 개를 쳐다보면서 저 대사를 읊음으로 해서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관객은 이미 지구가 병구의 개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병구는 미친놈에서 정상인으로 둔갑하고 강사장은 정상인에서 외계인으로 변신하고 "지구를 부탁해."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지구가 아니며, 병구가 지구를 지켜내지 못함으로써 "지구를 지켜라"는 제목에게 배반당하며. 주인공은 승리한다는 케케묵은 공식에 다시 배반당한다.

이 인식에 대한 배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행되며 상상력이 부족한 관객은 조롱당한 기분까지 들 것이다.

특히나 이 치열하고도 진지한 전쟁의 엔딩을 텔레비전 속으로 밀어쳐넣음으로 해서 영화가 어렵게 획득한 리얼리티마저 배반하고 나서는 대목에서는...

이렇게 관객을 배반한 영화가 흥행에 배반당한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개인적으로는 참 아쉽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영화속 주인공이 만든 영화만큼 웰메이드 필름이기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영화에 깔린 배경은 "식스센스"나 "매트릭스"에서 성공적으로 시도된 바 있고, 숨어있는 외계인이야기는 "맨인블랙"과 흡사하며. 지구의 역사씬에서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닮아있다.

병구와 강사장의 갈등은 신경향파 카프문학의 답습이며 순이는 "길"의 젤소미나와 비슷하고 형사는 "도망자"에서 '토미리존스'가 맡은바 있는 캐릭터이다.

병구의 강사장 납치는 "미저리"를, 외계인의 지구침략 부분에서는 '팀버튼'의 "화성침공"을 연상시키며 파국에 다다르는 결말 부분에서는 "혹성탈출"에서 그 자유의 여신상을 떠오르게 만든다.


사전적 의미에서 배반이란, '신의를 저버리고 돌아섬'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배반이란 단어는 기존 영화들을 해체하고 다시 만들어낸 이 "지구를 지켜라"에게 가장 잘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끝으로 여담 한마디 하자면 "지구를 지켜라"는 홍보마케팅에서 조차 배반당했는데... 영화사는 해체와 결합의 예술품과도 같은 이 영화를 일반코메디물인 것처럼 홍보한다. 그래서 한바탕 웃음을 기대하고 극장으로 들어간 관객들은 쓴웃음만 띄면서 나왔던 것이다. 이는 마치 새우깡인줄 알고 뜯었는데, 양파링이 나오는 것과 같았다. 참으로 바보같은 일이었다.


어쨋든 "이 영화가 사는 법"은 참 힘들고 고단했던 것 같다. 배반을 밥먹듯이 당하고 때리고...

병구가 죽은지 2년이 되는 지금... 병구의 묘비에 이렇게 적어주고 싶다.

"지구도 흥행도 지키지 못한 병구 여기 잠들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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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박찬수  
  감상평 잘 봤습니다..^^
1 클리어  
  이 영화는 홍보때문에 망한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보고 난뒤에는 괜찮은 포스터같은데
영화보기전에는 허무맹랑하고 얼토당토안한 유치짬뽕영화인줄 알았으니까요..

암튼 대한민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영화임엔 틀림없습니다.
1 용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이 였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크윽...나도 농락당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