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

영화감상평

'위대한'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

1 ROCK 9 4672 36
멀티라는 단어가 키워드가 되어버린 요즘 세상에, 여러 분야에서 능수능란한 활약을 보이는 멀티플레이어가 돋보이는 것은 별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연기도 잘 하는 가수, 교향악단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변호사,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여는 CEO,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질투하거나 엄청난 고통을 딛고 꿈을 이뤄낸 자부심을 선망하는 찬사가 쏟아지거나 상관없이,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속담은 더 이상 그들 앞에 없다. 우물 하나는 언젠가 말라 버릴지 모르지만 그들이 파 놓은 여러 곳의 우물은 결코 쉽게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우물도 제대로 못 파는 나는 그런 괴물 같은 부류들을 볼 때마다 항상 되뇌이게 된다.
 ‘아,...정말 더럽게 부럽네...’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는 백여 년 할리우드 역사에 가장 깊은 획을 남길 위대한 멀티플레이어가 틀림없다.
40년 동안 50여 편의 주연으로 잊지 못할 캐릭터들을 남겼기에, 배우로서 그는 위대했다. 또한 중년에 접어들어 직접 메가폰을 잡고 만들어낸 스물 몇 편의 영화 또한 굳이 유명 영화제의 감독상 꼬리를 달지 않더라도 위대한 감독의 반열에 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 앞에 붙어야 어울릴 법한 ‘위대한’ 이란 수식어를 마구 남발하는 이유, 오래전 주말의 명화에서 봤던 냉소적이고 터프한 건맨이 늙어서 미스틱 리버 같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되었다지만 이를 전무후무한 멀티 플레이어라며 혀를 내두르는 이유, 아직 볼 수 있는 것이 그저 반가운 왕년의 올드스타에게 이런 무한한 존경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는 바로 그 이유.
밀리언달러 베이비(Million Dollor Baby)란 한 편의 영화에 있다.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이다.
스포츠액션이니 멜로니 가족드라마니 하는 뻔한 장르 구분의 틀 속에서 정의를 내릴만한 것이 아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이다.
하나의 인생 모두를 영화에 바친, 영화를 사랑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만든, 그리고 삶에 대한 격의 없는 충고가 그대로 마음 깊은 곳에 전해지는 노선배의 나지막한 울림 같은, 그런 영화이다. 이미 오래전에 말라버렸다고 여겼던 눈물샘 속에 아직도 진실한 영혼의 떨림에 반응하는 눈물이 남아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소중한 영화.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가족이지만 친부를 청부살해하려는 패륜아가 동방예의지국에 버젓이 살아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하물며 미국이란 곳은 말할 나위 없을터, 감독은 기형적으로 비틀린 가족간의 관계를 주시한다. 그들은 서로 막혀있다.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고 별로 소통하고 싶지 않은 관계가 되어 버린지도 모른다. 혼자가 되어버린 사람들, 막다른 곳에서 어두운 현실의 위협에 쫓기면서도 작은 희망을 빛을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그들의 어우러짐을 통해 감독은 아직 남아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필름은 차갑게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표면 속에는 따스한 온기가 넘친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영화 속 인물들의 상황변화가 닥치지만 무겁고 어두운 흐름 속에서 그들의 우정과 사랑은 더욱 강하게 부각된다. 애초부터 상황변화는 복선의 반전이 아니라 주제를 극대화시키려는 장치로 존재했던 것이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 전개를 감칠맛나게 해주는 모건 프리먼의 해설이 주는 효과는 많은 평론가들이 이스트우드를 ‘아직도 성장하는 감독’으로 꼽는 반증인가 싶다. 전작 미스틱 리버는 모건 프리먼과 같은 훌륭한 해설자가 없었기에 상당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던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영화적 장치들이 역시나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지만 머리말고 가슴으로 감동의 느낌을 전달하는 능력, 힐러리 스웽크와 모건 프리먼 같은 배우들의 완벽한 캐스팅 - 과연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스크린 뒤에서 잔잔히 번져오던 선율을 골라낸 음악감독으로서의 역할 등 열거한 디렉터로의 활약과 더불어, 프랭키란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스트우드란 배우를 보면서 느꼈다.
저 유명한 은막의 스타도 저런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는구나, 세상살이 아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저런 사람도 가족을 생각하고 자식을 생각하며 저렇게 깊은 주름사이로 눈물을 흘리는구나.
74세의 이스트우드는 영화 속 프랭키 그 자체였다.
작년에 타계한 흑인음악의 대가 레이 찰스가 아니었더라면 이스트우드는 작품상, 감독상에 이어 배우로서 남우주연상까지 3대부분을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견해로 그랬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혀.

7000원짜리 영화 한 편은 그저그런 시간 때우기가 될 수도 있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하여 삶을 달라지게 하는 묘약이 될 수도 있다.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단어의 의미와 같이 '숨겨진 보석'처럼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 남을 것이다. 가족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영화로, 아버지란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한 영화로.
사람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기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교육에서 제대로 얻지 못하거나 배운 것을 금새 잊곤한다.
피곤한 일상에 지쳐 소중한 것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고 정말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잊어버리곤 한다.
그런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할 것이다. 진정한 가치와 소중한 꿈에 대한 희망까지.

“당신은 아버지가 진실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이 위대한 이름 앞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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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omments
1 박해철  
  클린트이스트우드의 팬으로서 Rock님의 위대한 감상평에 경의를 표합니다.
1 忍者1209™  
  정말로 위대한 영화에 걸맞는 위대한 감상평이시네요..혹시 무비매거진 기자분이 아니신지..
1 송군  
  감상평에 감동 받아 락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려고 닉넴 옆에 홈페이지
를 클릭했습니다...근데......기간이 만룍된 페이지 입니다...의 압박....
저도 모르게 웃음이....
1 권병두  
  감상평 정말 잘 읽었습니다.
G 오뚜기  
  위대한 영화에 걸맞는 멋진 영화평 잘 읽었습니다.~
저도 ROCK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특히나 그가 남우주연상감이라는점에서~

초반에는 아카데미의 수상장면이 떠올라서 집중이 안됐지만 ^^
영화를 볼수록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안보이고 프랭키라는 사람만 보입니다.  힐러리 스웽크, 모건 프리만과 함께 영화속에서 뿜어내는 그 아우라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제가 볼때 이렇게 가슴을 울리며 삶을 얘기하는 영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G VAMP.HUNTER  
  시네스트 감상평의 수준을 느끼게 하는 글이네요
회원가입하게 만드시는군요...
1 navy1807  
  햐...정말 로그인하게 만드는 감상평이군요...글 잘 읽었습니다...
1 강성훈  
  저도 로그인 합니다.. ^^
그 영화에 그 감상평..
멋집니다~
1 이일우  
  정말 멋진 감상평이군요. 긴글이지만 재밌게 읽었네요. 평론가나 영화기자로 나가셔도 충분하실듯 그리고 위의 찬사글들도 너무 보기 좋습니다.
한번더 봐야 겠네요 후제.......경상도 말도 다음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