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잃은 스릴러,

영화감상평

긴장감 잃은 스릴러, <패닉룸>

1 jgatsby 1 2127 0
&quot;언젠가 인류문명은 안에서만 문을 열 수 있는 자동차를 개발해낼 것이다.&quot;

편리하고 안전한 것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현대인들을 풍자한 움베르토 에코의 재담이다. 밖에서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안전한 곳. 이것은 안에서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위험한 공간이 될 수 있다. 영화 <패닉룸>(Panic Room)은 이런 역설을 바탕으로 관객들을 폐소공포 속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낙엽 지는 가을날의 맨하탄 거리. 대학원을 다니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온 부유한 이혼녀 멕(조디 포스터)은 외동딸(크리스틴 스튜어트)과 함께 지낼 집을 찾다가 터무니 없이 큰 집에 덜컥 계약을 하고 만다. &quot;남는 방에는 세를 들이면 되지 않겠느냐&quot;는 부동산업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집을 둘러보던 조디 포스터는 다른 곳보다 벽이 유난히 두꺼운 곳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비상시 몸을 숨기기 위한 작은 밀실인 '패닉룸'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날 밤, 세 명의 괴한이 이삿짐도 풀지 않은 그 집에 숨어들고, 공포를 피하기 위한 밀실은 말 그대로 &quot;공포의 방&quot;이 되어버린다.

영화로서는 '하룻밤 사이에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설정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다. &quot;내러티브&quot;랄 것도 없이 두 시간을 온전히 스펙터클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파이트클럽> (Fight Club)이라는 재기발랄한 전작을 냈던 데이빗 핀처 감독의 상상력에, 조디포스터의 연기력이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높은 기대를 가질 만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는 관객들을 공포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다.

마치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를 설거지를 하면서 힐끗 힐끗 쳐다보는 기분이랄까. <패닉룸>은 분명히 매끈하게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스크린 속의 등장인물과 그들이 느끼는 공포에 온전히 몰입시키지 못한다.

일단 세 명의 악당이 별로 위기감을 자아내지 못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데다, 그나마 너무 느슨하게 행동함으로써 모녀에게 너무 많은 기회와 여유를 주는 '악행'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중 한 명이 심하게 다치는 지경에 와서는, <나홀로 집에>에 나오는 세 악당을 막기 위해 <양들의 침묵>의 클라리스 형사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긴장감 잃은 스릴러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패닉룸>은 여러 모로 볼 거리를 제공한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놀랄 만큼 자유롭게 움직이는 카메라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전통 가운데 하나는 &quot;투명한 카메라&quot;의 원칙이다. 영화 속의 배우들은 카메라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고, 오직 관객만이 그 카메라의 존재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quot;천리안&quot;이 되어 이곳과 저곳,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면서 관객들을 전지적 시점이라는 신의 위치로 초대한다.

비록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신의 눈'을 관객에게 제공해온 카메라지만, 거기에는 항상 제약이 존재했다. 배우들은 카메라를 못 본 척하면서 관객들을 속일 수 있었지만, 카메라 뒤에 서 있는 기사까지 신의 능력을 갖출 수는 없던 탓이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에만 갈 수 있고, 사람이 움직이는 속도로만 움직이는 신의 눈. <패닉룸>은 이런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보다 자유로운 '천리안'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조디 포스터가 잠자리에 드는 순간, 침실로부터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쳐 물러난 카메라는 이층 난간 밑으로 떨어져 일층 현관을 가로지른 뒤 출입문의 열쇠고멍 속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자물쇠 속으로 들어온 열쇠 끝에 부딪친 카메라는 열쇠구멍 밖으로 튕겨나와 주방 테이블을 넘어 커피메이커의 손잡이 속으로 빠져 나간다. 영화사상 이렇게 자유로운 카메라가 있었던가. 이 영화 속에서 카메라는 벽을 뚫고 지나기도 하고, 환기구를 빠져나가기도 하며, 구조신호를 보내는 손전등의 전구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두번째 볼거리는 뛰어난 음향효과다. 계약을 마친 후 빈 집에서 단 둘이 저녁을 먹는 모녀. 침울한 표정으로 모래 씹듯 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계약서에 서명한 것을 후회하는 기색이다.

자기 컵에 가득히 콜라를 따르려다가 제지당한 딸. 그녀가 엄마를 위로하려고 한마디 한다.

&quot;망할 것들 같으니라구.&quot;
&quot;....엄마도 동의하지만, 욕을 하는 건 안돼.&quot;

이번엔 웃으며 자기 손으로 콜라잔을 채워주는 엄마, 그리고 유리잔 속에서 사르륵 탄산이 터지는 소리. 그리고 밀실에 갇힌 모녀가 악을 쓰면서 이웃집의 도움을 청할 때 빗소리에 서서히 잠겨가는 목소리(이 부분은 정말 무섭다).

계단에서 공이 튀는 소리, '패닉룸'의 철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건물 속 파이프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 등. 이 영화가 그나마 이 정도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공들인 후반작업의 덕이다.

세번째는 뛰어난 시각효과다. 그리고 이 시각효과의 백미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제작진의 이름이 나열되는 서두(opening)에 할애되었다.

영화보다 더 큰 공을 들이는 것이 할리우드 영화의 오프닝이라지만, <패닉룸>의 서두는 그중에서도 빼어나다. 공중에 떠 있는 활자가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움직일 때에는 특수효과에 웬만한 내성을 갖춘 사람도 여지없이 턱을 떨어뜨릴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 조디 포스터. 두 번째로 아버지 없는 아기를 임신한 채 돌아온 그녀. 변함없이 매력적이다.


<오마이뉴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1 Comments
3 에스카  
후와..  ^^
 대단한 감상평이군여... 
 
 
 했더만 기사거리였네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