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 - 걸작 중의 걸작(스포일러)

영화감상평

그랜 토리노 - 걸작 중의 걸작(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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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랜 토리노를 감상하고 왔다.
가슴이 먹먹하다. 이런 여운을 주는 영화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니 나이 먹고 이런 감정을 느낀 건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의 나이를 고려해 보면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제작, 감독의 영화를 극장 스크린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이제는 거의 없을 거란 얘기도 들었고, 과거 밀리언 달러 베이비 같은 영화를 극장 상영이 끝난 후 TV로 감상하고 느낀 안타까운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싶지 않아
그랜 토리노는 일찍부터 극장에서 꼭 찾아보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차 이제야 감상하고 왔는데 극장에서 감상하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극중 이스트우드(월터 코왈스키 역)는 세상과 소통에 서툴다. 두 아들이 있지만 아들인지 남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이고 이는 그의 가슴 속에 큰 짐으로 남아있다.
이런 월터와 옆집에 사는 몽족 가족들이 엮이게 된다. 원래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월터 자신이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자신의 생활에 그들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고집불통 월터에게 이런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었을리 만무. 그 과정이 영화 초,중반에 걸쳐
전개되는데 거칠게 내뱉는 욕설이나 월터의 성격을 대변해 주는 갖가지 작은 사건들이
중간중간 웃음을 주며 흥미롭게 제시된다.

영화 중간 즈음 월터는 자기 친자식보다 옆집 몽족 어린애와 더 깊은 유대관계를 느끼고 있는
스스로를 조소한다. 지극히 미국적이고 집 앞엔 언제나 성조기가 펄럭이며 맥주도 미국산 맥주만
마시고 전쟁 후 포드사에서 일해온 월터의 극중 성격을 생각해 보면 심히 역설적이며
여기에서 이미 변화의 조짐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 끝부분에 극적으로 증폭되어 의외의 놀라운 결말로 열매를 맺는다.
초반에 자신이 한국전에서 쓰던 장총으로 몽족 갱단을, 갱단이 협박하는 방식과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위협하고 겁주던 월터의 모습은 매그넘 권총을 갖고 다니며 법을 뛰어넘어
스스로 법을 집행해 버리던 70년대 더티 해리의 모습과 마찬가지다.
손가락으로 권총모양을 만들어 보이면서 폼 잡기도 한다. 관객들은 이런 월터의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악당은 징벌을 받아 마땅하고 월터가 수행하는 심판자의 모습은 멋있기만 하다.

이러던 월터는 수가 갱단에게 폭행을 당하고 돌아오자 스스로의 행동에 깊이 회의를 느끼며
끔찍한 심적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대처방안을 궁리한다.
그가 도출해 낸 결론은 엄청난 것이었다. 월터는 스스로의 목숨을 던져 수를 폭행한 갱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비로소 가능하게 만든다.

월터가 지고 살던 죄책감은 어찌보면 이런 방식이 아니고선 그의 성격상 벗어버릴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과거 그의 방식대로 총으로 쓸어버리는 식을 선택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버려
수와 수의 가족들에게 속죄하고 나아가 과거 자신의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려 한 월터의
선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월터의 선택에 감동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갱단 집에 찾아가 최후를 맞는 월터는 끝까지 의연하고 당당하기 짝이 없다.

어디서 듣길, 이스트우드의 범작은 다른 감독들의 평생의 걸작에 비견될 만 하다 하던데 이 의견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바 그랜 토리노는 나에게는 이스트우드의 수작으로 느껴진다.

영화 마지막에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를 몰고 가는 타오의 모습에 이스트우드의 나지막한 노래소리
(이스트우드 목소리가 맞는 지는 확실치 않다. 그의 목소리처럼 들렸다;)가 겹쳐 나오는데
끝까지 다 보고 나올 걸 혼자서 이스트우드 죽는 순간부터 눈시울이 붉어지며 찍찍대다가
같이 영화보러 온 사람 보기도 민망하고 그래서 캐스팅 올라가는 것 보고 서둘러 나오는 중
이스트우드 목소리의 "my gran torino" 부분을 듣고 또 한 번 울컥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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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보따리  
노인네의 맨손 총질, 침뱉기 등이 웃음과 안타까움을 주었지요. 옛날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마지막 매마른 노성의 노래가 나오자 전 움직이질 못하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