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팬이 잭 니콜슨을 만날 때 - 맹세(Pledge) [스포일러 가득]

영화감상평

숀 팬이 잭 니콜슨을 만날 때 - 맹세(Pledge) [스포일러 가득]

2 칼도 1 2015 1

평소 영화가 예술이 될 수는 없다고 믿는 나도 이런 영화를 보면 영화도 아주 가끔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그 믿음을 수정하고 싶어진다. 더구나 이 영화는 유럽 영화도 아니고 미국 영화다. 심지어 스릴러다! 이 영화는 아득하게 하고 두근거리게 하고 환호하게하고 조마조마하게 하고 섬찟하게 하고 슬프게 한다. 아주 깊숙히 그렇게 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결국 아름답다. 영화가 잔뜩 구름이 낀 하늘 아래 광막하게 펼쳐져 있는 잿빛 겨울 호수와 그 호수의 한쪽 끝을 겹겹이 둘러쳐 있는 산봉우리들의 단단하고 짙은 윤곽을 잠깐 보여줄 때 나는 이미, 꼭 첫 장면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를 알았다. 인형같이, 아니 인형보다 더 어여쁜 여자아이들 때문에, 그녀들을 무참히 폭행하고 살해한 괴물을 잡겠다는 맹세에 자신을 풀길 없이 묶어두는 노형사의 집념에, 그 어여쁨과 그 괴물과 그 집념이 어우러져 있는 그림같은 산골 마을의 풍경에 나는 두근거리고 아득해졌다. 서두르지 않지만 끈덕지게 실마리들을 하나 하나 찾아 꿰어내 괴물의 활동반경을 집어내고 자신을 그 한가운데 들이미는 노형사의 노련함과 혐의자들이 아이에게 접근하는 장면들에 나는 환호하고 조마조마했다. '마이 리틀 걸'을 가진 어떤 친아버지보다도 더 따뜻하고 상냥하게 아이를 감싸안아 주면서도 괴물이 그 아이에게 접근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괴물을 잡는데 이용할 수 밖에 없었던 노형사의 운명과 그 운명의 비극적 결말에 나는 섬찟해졌고 슬펐다. 물론 그 운명, 적어도 그 운명의 시발은 그 스스로가, 그의 '성격'이,  명예로운 정년퇴직을 몇 시간 앞두고, 얼마든지 자신의 후임에게 맡겨도 되는 그 사건의  현장에 따라 나서고 아무도 그 아이의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는 '괴로운 일'을 맡으려 들지 않자 선뜻 나서는 그의 '인격'이 초래한 것이다. 그의 정의감이 조금만 덜 했어도, 그의 선의가 조금만 더 약했어도 그는 맹세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누가 그 자신만큼 그 맹세에 관심있는가? 왜 무수한 타인들과 우연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그 맹세가 과도한 집착, 혹은 어쩔 길 없는 어긋남을 낳지 않겠는가? 한 평생을 성실만으로 채운 노형사가 마지막으로 맡은 사건이 멋들어지게 해결되고 그 과정에서 그가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어려운 선택이 이해되거나 최소한 숨겨지는 것을  보장해 주는 원리같은 것이 왜 이 세상에 있겠는가? 삶은, 적어도 우리가 지금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삶은, 그런 것이다. 선의는, 탁월한 능력과 심오한 고뇌를 거쳐 행사될 때 조차도, 비극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버림'받은 채, 마른 잎들을 흩날리는 스산한 겨울 바람 속에서 실성한 듯 중얼거리고 손짓을 해대는 그의 모습을 낮설어 해서는 안된다. 보기 힘들더라도 외면해서는 안된다. 영화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흘러간다. 영화는 보여주려고만 하지도 않고 이야기하려고만 하지도 않는다. 프레임 하나 하나는 내러티브의 진행에 수반되는  따뜻함과 삭막함과 쓸쓸함과 긴박함과 애뜻함의 정서들의 리드미컬한 분절들과 교차를 완전하게 형상화한다. 놓쳐도 되는 프레임은 단 하나도 없다. 잭 니콜슨은 잠시 비극적 집념을 지닌, 예리하면서도 온화한 노형사의 캐릭터와 한 몸이 된듯 싶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영화의 살 속에 피처럼 녹아들어가있는 나머지 들리지조차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아직 대가는 아니지만, 숀 펜이 멀지 않은 시간 내에 얼마 안되는 미국의 '작가' 감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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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G 천태산  
  숀펜이 감독하고 잭니콜슨이 주연한 2번째 영화네요..2001년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