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atar - 하나로 연결된 인간을 꿈꾸며(스포일러)

영화감상평

Avatar - 하나로 연결된 인간을 꿈꾸며(스포일러)

1 諸法無我 0 4478 0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지만, 무척이나 비싼 광석을 채석하기 위해 원주민을 몰아내고자 하는 지구인들과, 거기에 맞서 싸우는 나비족, 그리고 지구인 몇 명.....

이 영화에서의 대립은 너무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구인과 판도라의 원주민의 대립, 그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대립이다.

하지만 거기에 연결된 모양을 살펴보면 지구인은 물질문명, 기계문명, 폭력과 개척을 앞세운다. 판도라의 원주민 나비족은 정신문명, 자연문명, 조화와 순응으로 연결된다.

판도라의 모습은 흡사 꿈과도 같다. 다양한 짐승이 나오진 않지만, 정말 환상적인 식물들... 꿈처럼 아름다원 정원같기도 하다. 물론 맹수와 사나운 짐승들이 살고 있지만, 그곳은 나름대로 조화된 곳이다. 마치 우리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우리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원시의 열대림과도 같은 곳, 처녀 총각이 정말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곳을 우리는 돈을 위해 파괴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한 쪽에서는 빙하가 녹네, 해수면이 올라가네, 온난화가 어떻고, 열대우림 벌목이 심각하다고 떠들지만, 좀 더우면 에어콘을 틀고, 10분 걸어갈 곳도 차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우리의 원시림, 우리의 고향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망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원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알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는 척 할 뿐이지 실제로는 모르고 있다.

맞다. 모른다. 그래서 경험해봐야한다.

이 나비족과 외교를 하기 위해 만들어낸 아바타. 아바타가 반드시 필요한 까닭은 판도라의 대기에는 인간에게는 유해한 가스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보호마스크를 써야한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은 하나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결"을 해야한다. 연결....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 연결에 있다. 연결하기 위해 아바타가 필요했다. 인간과 나비의 연결, 그 중간 매체가 바로 아바타다. 그래서 아바타는 일종의 보호마스크이다. 보호마스크,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할 장치이다.

이 보호마스크, 아바타를 통해 인간은 나비와 연결된다. 물론 나비의 단점을 캐내 효율적인 공격을 위한 계획을 포함한 연결이지만, 어쨌든 연결된다. 그리고 한 인간이 나비에 물들어간다. 채색되는 것이다. 회색의 기계에 원시자연의 아름다운 형형의 색깔을 수놓는 것이다. 그렇게 제이크는 조금씩 나비와 인간 사이에서 망설이게 된다. 그리고 결국 나비의 편에 서기에 이른다.

하지만 인간의 무자비한 공격을 과연 맨몸으로 받아낼 수 있을까? 제이크는 기도하기에 이른다. 그는 그가 믿지 않던 것을 믿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인간은 정말 절박한 상황에 이르러 기도를 하곤한다. 그 상황에 처하면, 인간은 기도밖에 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의 조상, 유일의 신, 이 우주, 자연, 스승, 부모, 그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도로부터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그 기도를 통해 나비와 진정 하나가 된다. 아니 그냥 나비가 된다. 아바타를 벗어버리고, 보호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쓴 탈을 벗어버리고, 원시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우리가 우리의 원시자연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마스크를 벗어버려야한다는 것이다. 탈을 쓰고, 간을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연의 부분으로 돌아가야한다. 도시의 회색에서 원시자연의 형형색색에 물들어야 한다. 그렇게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자연과 도시는 이미 "불편"이라는 유해가스로 장막이 쳐진 상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가 대부분 그렇지만, 나비족을 되살리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인간에게 그러한 의지가 있기를 바라는 감독의 기도가 바로 이 영화인 셈이다.

영화의 내용을 본다면, 인간은 충분히 그럴 힘이 있고, 그럴 의지도 있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연결되어 눈만 뜨면 모든 인간은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무한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거기에 눈을 감고 있으며, 보호마스크를 쓰고 있다. 연결되지 않고, 모두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외롭다. 편안한 침대를 가졌지만, 동시에 사방의 콘크리트 벽도 가진 것이다.

제이크가 시험을 통과해 나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때의 의식, 모두가 어깨에 손을 올려 하나로 연결되는 모습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다. 모두가 하나되어 같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우리는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당신을 본다는 말은 당신의 탈을 본다는 것이 아니다. 네가 입고 있는 옷, 예쁜 화장, 잘 빗어진 머리카락을 본다는 것이 아니다. 아바타를 본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나와 너를 본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점에서 탈서구적이다. 이 점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개인을 독립된 개체로 보는 서구의 시각으로부터 그들 스스로가 탈피했다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의 문명보다 너의 신에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완전한 인간성의 회복을 뜻한다. 나의 믿음이 아닌, 너의 신에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그보다 큰 축복이 있을까? 기독교인이 알라 라신께 기도하고, 불교인이 하나님의 복음에 눈물을 흘리며, 무슬림이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세상.... 우리가 그렇게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꿈같은 곳이 아닐까?

제임스 카메론은 확실히 큰 꿈을 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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