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가 말하는 가족은 누구인가. 우주전쟁.

영화감상평

스필버그가 말하는 가족은 누구인가. 우주전쟁.

1 가륵왕검 1 1745 0
어느날 갑자기 외계인의 침공이 시작되고 이에 분연히 맞서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들, 그리고 지구인의 승리로 돌아가는 스토리는 SF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특히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무뇌감독 롤랜드 에머리히가 만든 [인디펜던스데이]는 거기에다 미국이 최고라는 뻔뻔함까지 더해서 난장판을 보여주기도 했죠.
 
헌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SF의 고전 [우주전쟁]을 다시 만든다고 했을때 익히 알려진 이야기라도 그가 만들면 다를거라는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본 소감은 약간의 놀라움과 실망, 그리고 우려스러운 생각이 들더군요.
 
우선 영화의 큰 축은 외계인의 침공이라는 위기상황과 주인공 레이(톰 크루즈 분)를 둘러싼 가족의 갈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처음에 땅속에서 솟아오른 외계인들의 거대한 기계가 도시를 파괴하는 비쥬얼은 좋습니다.
 
사람들을 일순간에 재로 만들어버리는 살인광선을 피해 달아나는 상황의 연출도 역시 스필버그다 싶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 참혹한 광경을 보여주면 되었다 싶었는지 이내 촛점을 레이가족의 탈출기 하나에 맞추어 버립니다.
 
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다니며 최후까지 살아남는 생존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주인공이니까 당연하다 싶지만,
 
9,11 테러를 연상시키는 초반 장면들처럼 극단적인 위기에 처한 인간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릴거라는 예상과 달리 재난영화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아울러 SF 스릴러 영화로서도 함량부족인 듯 합니다.
 
외계인의 모습도 단 한 장면 등장하고 주인공과 실질적인 대결도 이루어지지 않을 뿐더러 중반부에 시민들을 태우기 위한 여객선을 공격하는 장면에서 약간의 지루함을 떨쳐낼만 하지만 전체적으로 여름 블록버스타다운 화려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 따라 레이 가족이 심심할때나 외계인들이 나타나 괴롭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정작 외계인은 들러리일 뿐, 지구를 침공한 이유도 목적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는 이 영화를 만든 스필버그의 목적이 다른 것에 있음을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는 객체 자체가 생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에 집중하는,
 
영웅적 심리나 도덕적 원론 따위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이기주의적 발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신자유주의 이념을 명백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9.11테러 이후 무력감에 빠졌던 미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시말해 허울좋은 세계경찰 놀음 대신 내 가족의 안위부터 지키자는, 그에 반하는 모든 가치는 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시각말입니다.
 
그로인하여 허무해보이는 영화의 결론 또한 원작 그대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부시정권의 정책에 대한 회의적 반응으로 해석해야 하는지는 의문에 생깁니다.
 
다만 어쨌든 스필버그는 더이상 ET 를 만든 시절에 가졌던, 세상은 따뜻하다는 소년기적 발상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무튼 겉으로는 고전을 리메이크한 부담없는 SF블록버스터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묘한 정치적 시각을 집어넣은 스필버그의 선택이 어찌 받아들여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합니다.
 
배우들 이야기를 좀 하자면 톰 크루즈의 연기를 그냥 그저 그런 정도고 딸로 나온 다코다 페닝의 표정연기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오히려 할란이라는 약간 맛이 간 인물을 연기한 팀 로빈스의 연기가 휠씬 나아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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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뿡뿡이  
  동감합니다. 간만에 뚜렷한 주관을 가진 분석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