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의 옷입은 영리한 사회고발작-더테러라이브 후기

영화감상평

스릴러의 옷입은 영리한 사회고발작-더테러라이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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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제 아내와 손을 잡고 극장을 방문, 최근 개봉한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관람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 이유는 영화가 기존 한국영화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세련함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릴러라는 당의정을 입힌 사회고발영화
 
당의정(糖衣錠). 먹기 좋게 겉을 당분 있는 것으로 싼 알약이란 뜻인데요,
‘더 테러 라이브’가 바로 그런 영화이고,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시나리오가 관객들로 하여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사회고발영화를 긴장감 있는 스릴러물로 느끼게 해준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더 테러 라이브’가 흥행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테러 라이브’는 기존의 스릴러와 차별성을 갖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전형적인 스릴러의 경우 테러범이 폭탄을 어떻게 입수하여 테러대상 위치에 폭탄을 어떻게 설치하는지
그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됩니다.
이 과정 자체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영화의 논리적 전개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더 테러 라이브’는 이런 과정(테러범이 폭탄을 입수하고 설치하는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합니다.
테러범이 대체 어디서 폭탄을 구했고, 어떻게 본인이 원하는 지점,
그것도 한강다리와 대형건물에 손쉽게 설치했는지 일언반구 없는 것이죠.
 
기존의 ‘테러’를 다룬 영화들과 다르게, 더 데러 라이브는 테러범의 시점을
기존의 ‘테러’를 다룬 영화들과 다르게, 더 데러 라이브는 테러범의 시점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왜냐하면 영화 속 폭탄은 사회적 지위도, 경제적 능력도 충분치 않은 사회 하층민의 목소리를
사회가 듣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수단일 뿐 그 자체로써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즉, 감독은 영화 속 테러범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고,
그 관객들을 극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스릴러라는 당의정으로 영화를 포장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폭탄테러라는 소재가 필요했을 뿐이지요.
 
이런 감독의 의도는 세련된 연출과 치밀한 시나리오를 통해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는 런닝타임 내내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영화를 보고 나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많은 고민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양극화의 심화, 위기의 한국사회
 
 
’더 테러 라이브’에서 범인이 폭탄테러를 일으킨 이유는 사회하층민으로 평생을 착실하게 살아왔지만
달라지지 않는 자신의 경제환경, 사회구조적으로 닥친 필연적 사고,
이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 등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30년간 열심히 착실히 살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인 사회 지도층 때문이며
이를 대표하여 대통령이 사과하라는 요구를 합니다.
 
이는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며 과거 자기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생활고의 원인을 자기자신 내부로 돌리던 사회 하위계층들이 생활고의 원인을 사회구조와
지도층의 비리 등 자기 외부로 인식을 전환하며 발생하는 사회적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사회하층민을 대변하는 테러범을 통해 우리사회의 양극화문제를 꼬집고 있는 영화 ‘더 테러 라이브’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이런 이유로 한국사회에서는 ‘묻지마 살인’등의 반사회적 성격의 사건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2012년 8월 의정부역에서 한 남성이 커터칼을 휘둘러 8명의 승객이 중상을 입힌 사건,
2012년 9월 고교자퇴생이 초등학교에 난입해 흉기를 휘둘러 6명의 학생이 부상을 입은 사건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사회에서 소외된 범인들이 저지른 ‘묻지마 범행’이라고 대대적인 보도를 했는데요,
해당 사건들은 사회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또는 사회가 정해놓은 모범 영역에 포함되지 않으면 상대적 박탈감만 더욱 커지는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적 위협으로 커졌다는 반증이었습니다.
 
’더 테러 라이브’의 감독은 관객들에게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며,
이를 방치할 경우 더욱 끔찍한 사건사고가 한국사회에 닥칠 수 있음을 경고하려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 ‘더 테러 라이브’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희생했으나 국가발전의 과실을 공유하지 못한
다수의 서민들과 하위계층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익단체를 결정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효율적으로 사회에 전달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리된 사회의 겉모습만을 자주 접하게 되고
그것이 사회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더 테러라이브는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던게 아닐까요?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지만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봉투가 매일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각에
환경미화원들을 통해 수거 되고, 방문한 적 없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이동하여 처리되듯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직접 본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요소 하나하나가 모여 사회가 유지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지금 이 시각, 어딘가에서는 평생을 착실하게 살아왔지만 사회구조적인 불합리 때문에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며 사회를 향해 분노하는 박노규씨가 있을지 모르고,
그들의 분노가 폭력적으로 사회에 표출되기 전에 그들의 분노와 상심을 어루만져줄
사회적 합의와 대안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영리하게 전달하는 ‘더 테러 라이브’는 분명
한국영화에 한 획을 긋는 웰메이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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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0 사라만두  
진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