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터의 눈물(1リットルの淚) - 슬픔의 저 건너편

영화감상평

1리터의 눈물(1リットルの淚) - 슬픔의 저 건너편

2 칼도 1 2152 10

http://as.donga.ac.kr/~rsc/kaldor/OnlyHuman.mp3

슬픔의 저 건너편에는 웃음이 있다 하는데
우리가 닿을 그 곳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을 좇기 위해서.
아련한 그 여름 날에 우린 길을 떠난거에요.
내일의 일만 알 수 있었다면
한숨도 없었을 텐데..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배처럼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요.
비구름이 걷히면 비에 젖은 길이 빛나고
어둠만이 우리를 격려해줘요.
너무나도 눈부신 그 빛이.
굳세게 앞으로 나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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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하고 상냥하고 총명한,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의 어여쁜 두부집 딸에게 척수소뇌변성증이 닥친다. 지적 능력은 유지되지만 신체의 움직임을 지휘하는 뇌세포가 조금씩 파괴되어 결국은 말을 하지도 글을 쓰지도 못하게 되고 옴짝달싹 할 수도 없는 채 누워 지내게 되는 희귀병이다. 예방이 불가능한 이러한 희귀 불치병은 당하는 이에게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교통사고와 함께 마땅히 행복을 누려야할 듯한 선량하고 성실한 이들을 결단내놓는 대표적인 녀석이다. 이 세상에 그런 이들을 갑작스럽게 깜깜한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사건이 일어나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떤 존재나 원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은 인간사에 대해 그저 한없이 무심하고 무정한 태도를 취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 그 무심함이나 무정함을 별로 실감하지 않고 살아간다. 자기 자신이나 사랑하는 이들이 아무런 대책도 취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죽거나 크게 다칠 때야 비로소 적어도 짧은 인생 동안에는 선업의 과보나 어떤 초월자의 온정같은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인간은 이러한 종류의 아무런 이유 없는 불행에 짓눌려 삶의 활력을 완전히 빼앗길 수도 있고 그 불행을 이겨내고 슬픔과 고통을 더 진실한 삶을 위한 정화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불가항력적이었던 죽음이나 그것에 준하는 사태가 우리에게 야기하는 슬픔과 고통은, 우리가 거기에 분노와 좌절만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인간존재의 비밀을 내보인다. 인간은 자신만이 가진 합리성으로 자연의 불합리한 폭력에 대항해 왔지만 그 불합리성을 결코 완전히 패퇴시킬 수는 없으며 인간과 자연을 모두 포괄하면서 넘어서는 '존재' 그 자체는 합리적이지도 불합리적이지도 않으며 그저 '선물'일 뿐이라는 비밀말이다. 인간만이 그 비밀을 드러낼 수 있는 한, 그 비밀은 인간존재의 비밀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진부한 윤리는 그 비밀의 윤리적 등가물, 선물받은 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덕목이다.

훌륭한 대중예술은 우리가 어렴풋이라도 추구해야 할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것들, 그래서 진부한 윤리가 되고 만것들을 생생히 극화시켜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1리터의 눈물>은 그 진부한 윤리 가운데서도 가장 진부한 것 -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 인간적 위엄을 잃지 않는 삶을 정통적이고도 세밀하게 서사한다. 시청자들에게 근거없는 희망을 갖게 하지도 않고 주인공들이 시청자들보다 먼저 눈물을 흘리게 하지도 않는다. 최악의 불치병에 걸린 이와 그 가족들이 겪고 처할 수 있는 모든 심정과 상황이 빈틈없이 전개되고 묘사된다. 가족과 의사는 그녀에게 병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주기로 결단한다. 그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병세가 조금씩 악화되면서 그녀가 할 수 없게 되거나 서툴러지는 것들은 하나 둘씩 늘어나지만 그녀는 일기를 쓰는 것을 포함해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을 놓지 않으며 그 상태의 자신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내려 애쓴다. 그리고 가족과 의사와 친구들과 국가는 그녀의 노력을 돕는다. 그것은 동정이지만 베푸는 동정이 아니라 의무로서의,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서의 동정이다.

부모와 담당의 등 주요 조연들이야 중견급 연기자들이 맡았으니 완숙한 연기는 애초부터 기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털어 최초로 주연을 맡은 에리카 사와지리의 탄탄한 연기는 예상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이것은 '밝히는' 아저씨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이제 그녀가 더이상 화보집이나 동영상 - 물론 그라비아 수준을 생각하면 안된다 - 을 내느라 신경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 진정한 그녀의 팬들이 좀 남다르게 이기는 하지만 귀엽고 청순한 미소녀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일 뿐인 그녀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캐릭터들'로서의 그녀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허구'라고 했던가? 허구이지만 실화를 소재로 한 허구, 어쩌면 실화가 훨씬 더 비극적이고 숭고할 허구이다. 허구는 매회 끝장면마다 열 네살에 발병하여 10여년에 걸친 불굴의 투병생활 끝에 46권의 일기를 남기고 생을 마친 실화의 주인공의 어린시절 모습부터 발병 이후 점점 병세가 악화된 후까지의 모습의 흑백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가족과의 단란한 한 때, 친구들과의 학교 생활, 병의 진행을 늦추는 운동을 하면서 잔뜩 찡그린 얼굴, 휠체어에 앉아서도 웃고 있는 그녀, 마침내는 병상에 누운채 문자판을 보고 있는 그녀. 나는 감히 한글판이 나와 있다는 그녀의 일기를 읽을 만한 용기는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그녀의 그 모습들을 잊지는 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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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crazycat  
  칼도님은 에셀알의 칼도님이군요!
예전에 칼도님의 글만 찾아서 읽은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에셀알에서 탈퇴한지 오래되었지만요..

아뭏든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