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교습소..

영화감상평

발레교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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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자. 물론 좋은 추억도 많았지만, '50분 수업, 10분 쉬는 시간'의 반복으로 구성된 하루는 무척이나 한창 꿈 많은 우리들에게 무척이나 답답했다. 대학입시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떨기도 했고,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막연히 고민하고 두려워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질문들에 답해주는 선생님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답답함, 두려움에 대한 답을 찾기는 힘들었다. TV나 영화같은 여러 대중 매체에서도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수는 없었다.

 
몇 년전, '학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었던 이 드라마는 방영될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로 부터 호응을 얻은 이유를 둘러싸고 많은 분석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드라마의 독특한(?) '소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이 드라마는 이른 바 '성인'들의 이야기만을 주로 다루던 평범한 드라마들과는 달리, 드라마 시청자의 상당 수인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고 인기도 있었지 않나 싶다. 즉, 답답한 청소년들의 일상생활을(비록 조금 비현실적인 면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여러 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고, 그것이 인기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 '발레교습소'도 드라마 '학교'처럼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10대의 마지막인 열아홉, 수능 시험을 치루고 20대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바로 그 시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주인공들은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재벌 2세도 아니고, 공부를 특출나게 잘 하는 것도 아니며, 속칭 '잘 나가는' 아이들도 아니다. 그들은 이제 막 수능 시험을 치룬 대한민국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고3 학생들일 뿐이다. 미래에 대한 확신, 확실한 장래가 보장된 것도 아닌 그들에게 20대는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하다. 이러한 두려움은 주인공 민재의 악몽에서 잘 나타난다. 꿈 속에서 "너 처럼 미래에 대한 생각 없는 애들은 국가 차원에서 모두 군대에 보내기로 했다, 축하한다"라고 말하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민재는 듣는다. 민재를 비롯한 청소년들의 무의식속에 존재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두려움을 이보다 더 절실히 표현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러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면허도 없이 차를 몰기도 하지만, 그 두려움은 좀 처럼 사라지지 않는 듯 하다.

 
20대로 접어들며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 답답함. 이런 감정들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을 영화 '발레교습소'가 제시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단지 주인공들이 인생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경험하는 장면과 그런 경험을 아파하고, 서로 보듬어 주려고 하는 장면들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포스터에는 '해피엔딩을 꿈꾼다'라고 되어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는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속에서 그들이 고민하고 답답해 했던 상황은 겉으로 보기엔 별로 나아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민재는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조경학과에 도피하듯이 진학해야하고, 수진은 강아지도 잘 만지지 못하면서 수의예과에 진학해야 한다. 창섭은 언제 '노가다 생활'에서 벗어나 다시 백댄서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며, 기태의 동생은 과연 병이 나을 수 있는지, 어떻게 될지, 어떻게 살아갈지 영화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끝난다. 포스터 속의 표지판처럼, 그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복잡하기만 하다.

 
그러나 영화 '발레교습소'가 가지고 있는 미덕은, 이러한 그들의 상황을 따뜻하고 진심어린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몰라, 이제 겨우 스무살인데!"라고 외치는 민재, 비록 어색하지만 마지막 발레 공연에 참가해 열정을 보여주는 민재의 모습은 참 인상깊었다.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그리고 방황하고 고민하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래도 너희는 아직 젊지 않니, 무슨 일이든 열정을 가지고 도전해 보렴"이라고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수 많은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내놓지 못하고 다소 어색하고 작위적인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격려해 주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다른 단점들을 커버할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고 미덕이다. 만약 누군가 '수능 끝난 수험생들이 볼만한 영화를 추천해 달라'라고 한다면, 나는 별 망설임없이 이 영화를 최우선으로 추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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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최진원  
  글이 길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