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be를 만든 감독의 차기작, Cypher: 관객을 세뇌시키다

영화감상평

Cube를 만든 감독의 차기작, Cypher: 관객을 세뇌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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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쓴 것처럼, 누군가에게 이 영화 Cypher에 대해서 소개할 때 가장 처음 하게 되는 말은 아마도 “Cube 만든 감독이 만든 영화”일 것입니다. 일단 Cube를 만든 감독이 만든 영화라면, 한번 볼만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만큼 Vincenzo Natali 감독이 영화 Cube로 관객들이나 영화계에게 준 영향이 컸다는 얘기이겠지요. 고작 35만 캐나디언 달러 (24만 미국 달러, 2억 8천만원)의 제작비로, 가로, 세로, 높이 약 4.2미터의 입방체 단하나로, 관객들을 폐소공포증과 충격으로 몰아넣으며 일약 독립영화의 대표작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후에 독립영화계에서나 주류영화계에서 어떤 성공을 하고, 어떤 평가를 받더라도 Cube는 Vincenzo Natali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힐 것이며, 관객들은 그를 Cube의 감독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97년의 충격작 Cube 이후, 드디어 그의 차기작 Cypher가 나왔습니다. 제작이 끝난 것은 2002년인데, 영화제에서 소수의 관객들에게만 상영되었던 지라 아직 일반 관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운좋게 DVD rip 판을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한글 subtitle이 만들어지지 않았는 지, 많은 분들이 감상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가 되지 않은 점은 여기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IMDB의 영화상영정보를 보면 미국에서는 단 한번의 상영도 이루어 지지 않았고, 스페인, 일본, 프랑스, 포르투갈, 벨기에, 덴마크, 독일, 호주, 영국 등등의 영화제에서만 상영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 신문에서 Vincenzo Natali 감독이 방한을 했다는 소식과 인터뷰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어떤 영화제에 출품되었는 지는 모르겠네요. 어찌되었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복받은 겁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에는 관계없이…. 미국에 있는 Vincenzo Natali 감독의 매니아들은 아주 격분을 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캐나다사람이지만, 미국사람이 출연하고, 미국돈으로 제작됬는 데, 어떻게 미국에는 한번도 안보여주냐고 게시판에 울분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요. Vincenzo Natali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기 영화는 아시아와 유럽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미국 관객층에게는 잘 어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너네들처럼 무식한 할리우드 블락버스터나 좋아 하는 애들은 내 영화 안봐도 되, 씨이 ^^; 라고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을 가진 것일까요?

Cypher의 줄거리에 대해 짧게 쓰겠습니다. 스포일러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teaser trailer 정도로만 쓰죠.

-- 한적한 교외에서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다가 실직한 회계사 Morgan Sullivan (Jeremy Northam)은 언젠가 멋진 인생을 가질 것을 꿈꿉니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DigiCorp라는 다국적회사에 취직해 산업스파이가 됩니다. 회사에서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고, 각종 무역박람회에 참석하여 기밀들을 수집하고 회사로 송신합니다. 그러던 중, Rita (Lucy Liu)라는 미모의 여성이 다가와 그에게, DIgiCorp 회사가 그를 세뇌하고 있으며, 무역박람회는 세뇌를 시키기위한 장소라는 충격적 사실을 알려줍니다. 망설임끝에 Morgan Sullivan은 Rita 에게서 세뇌를 막을 수 있는 약을 받고, DigoCorp의 라이벌 회사인 Sunways System을 위해 이중 스파이로 일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이고, 누구를 믿을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릅니다. 알아내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하는 데...... -- 

Cypher와 비교적 유사한 플롯을 가진 어떤 하나의 영화가 머리에 떠오릅니다만, 그 영화 제목을 쓰진 않겠습니다. 혹시나 여러분 감상하시는 데 방해가 될까봐서… 어느 정도 많은 분들이 보게 되면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Cypher는 Cube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선, 폐소공포증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하나의 장소에서만 이야기가 이루어졌던 Cube에서와 달리, Cypher에서는 거의 모든 씬이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 집니다. 영화의 무대도 거의 미국 전역으로, 주인공이 회사의 지령을 받고 이동하거나 자신의 정체를 알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여 다닙니다. 그리고 Cube에서 ‘왜 그들이 그곳에 왔는 지'는 전혀 알지못한 채, 단지 '어떻게 나가야 하는 지’에 집중을 했다면, Cypher에서는 치열한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투쟁끝에 친절하게도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답을 관객들에게 줍니다. 그것이 반전의 매력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 한 단어로 Cypher를 설명하라면, 아마 누구라도 [세뇌]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입니다. 세뇌는 말 그대로 [뇌를 씻는다]라는 뜻으로,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인간의 의식개조를 이르는 말로 쓰여졌습니다. 이 말은 그대로 영어로 옮겨져 brainwash가 되었습니다. 이 세뇌는 윤리적 측면에서 참으로 무섭고 악랄하기 그지 없는 방법입니다만, 영화의 소재가 되기에는 너무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의식을 개조한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의 조작을 필요조건으로 수반해야 하며, 미래의 행동양식 또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영화에서 뭔가 미스터리하게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가고, 복잡한 상황설정을 하는 데, 더 없이 멋진 소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세뇌를 소재로 한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먼저 Frank Sinatra가 주연한 John Frankenheimer 감독의 1962년작 The Manchurian Candidate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국전에서 군부에 의해 세뇌를 당한 병사들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불행히도 전 아직 못봤습니다만, Jonathan Demme 감독이 2004년에 리메이크를 한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The Slience of the Lamb 과 Philadelphia 를 만든 그 감독이 맞나하고 의심해야만 했던 최근의 졸작, The Truth about Chalie (이 영화도 1963년작 Charade의 리메이크입니다)의 실패에서 벗어나, 이전의 그의 면모를 보여주기를 갈망합니다. 또, 머리에 생각이 나는 영화로 Stanley Kubrick 감독의 The Clockwork Orange가 있네요. 폭력성에 물든 젊은 범죄자를 선한 인간으로 개조하기 위한 반복적인 자극적, 폭력적 영상과, 베토벤의 음악이 이루는 불협화음의 극치가 기억납니다. 일단 머리에 떠오르는 세뇌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구요, 위의 두 영화들은 모두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입니다. 물론 잘 찾아보면 아주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Cypher에서도 세뇌를 이용한 인간의 의식, 정체성의 조작, 개조를 기본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꾸려갑니다. 물론, 세뇌라는 기본 아이디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러가지 복잡한 전개와 반전이 어우러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주의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을까?’, ‘나를 도와주는 여자의 정체를 무엇일까? 진실을 알고자 하는 주인공의 그 치열하고 처절한 사투는 관객들을 혼란과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궁금함으로 몰아갑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주인공이 악몽을 꿀 때, 그리고 자신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할 때, 보여지는 반복적인 자극적인 영상들은 관객까지 세뇌를 시키려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당신들이 보고 있는 걸 의심해”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반복적인 영상의 흐름은 Darren Aronofsky 감독의 2000년작 Requiem For a Dream에서 , 등장인물이 마약을 투약할 때 느끼던 환영과 일면 비슷해 보입니다. 관객들까지 마약중독의 환각을 느끼게 만들던 유명한 씬입니다. Vincenzo Natali 감독이 같은 독립영화계 출신의 Darren Aronofsky 감독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오마쥬일지도 모르죠. 아, 오마쥬하니까 생각이 나는 데, Cypher를 보면, Stanley Kubrick 감독의 The Clockwork Orange와 Alfred Hitchcock 감독의 North by Northwest에 대한 오마쥬를 느낄 수 있습니다.

Cypher 에는 여러 번의 반전이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유난히 반전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지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반전영화]라는 묘한 영화장르까지 만들어서 리스트를 만들기도 하더군요. 이 정도로 관객들이, 복잡한 플롯의 반전으로 점철하는 영화들을 보면서 무장하게 되었기 때문에 Cypher의 영화줄거리는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닐 것입니다. 보면 다 이해가 갈만한 깔끔한 스토리입니다. Basic 같은 영화처럼 인과관계가 느슨한 다수의 반전으로 관객들의 짜증을 유발하지 않는 예의를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반전이 관객에게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는 정교한 플롯이 필수적입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관객 뒤통수 마구 때린다고 관객들이 ‘아, 저걸 내가 왜 몰랐을까?’ 또는  ‘저럴 수가… 정말 의외군’, 이런 감동받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반전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평탄한 진행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산꼭대기와 골짜기가 의미를 가지려면 평지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요즘 미스터리, 스릴러물들은 가끔 처음부터 끝까지 비비 꼬인 줄거리와 억지스러운 설정에 의한 반전 때문에 머리만 아프게 만드는 경우가 가끔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Cypher의 줄거리는, 여러 번 반전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영화에서 주어지는 정보로 앞에서 일어난 사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해가 완벽히 가능하기 때문에 **억지로** 관객들을 혼란으로 몰아넣지는 않는 배려를 보여줍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구요.

남자 주인공역을 맡은 Jeremy Northam은, 무기력한 남자의 모습, 세뇌를 당한 맹한 표정,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난 후의 자신감있는 카리스마까지 완벽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아마 대부분의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라고 생각되는 데, 여러가지 역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지는 영국출신의 배우로 유명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일부러 미국식 영어 억양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여자주인공역의 Lucy Liu는 별로 연기라는 것을 보여줄 것도 없었던 전작들의 틀에서 벗어나 만족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글을 쓰기만 하면 왜 이리 길어질까요? 나쁜 버릇인데... 빨리 끝내겠습니다. 저는 그냥 처음 영화 소개 사이트에서. Cypher가 Cube를 만들었던 Vincenzo Natali 감독의 차기작이며 세뇌를 기본 아이이어로 만든 영화라는 소개만 보고, 한마디로 뿅갔습니다. ^^; 봐야지, 꼭 봐야지... ^^; 여러 분들에게는 어떨게 다가오고, 보고 나서 어떻게 느껴질 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극장에 걸릴 지 모르겠네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는 봅니다만. ‘한글 subtitle을 만들어볼까’ 하고 잠시 허튼 ^^; 생각을 했습니다만, ‘보통 일이 아니겠다’라는 현실로 급히 돌아와버렸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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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hanson  
  큐브, 저는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저예산영화였다는 사실 외에. 어쨌든 <큐브 만든>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그렇게 호소력이 짙은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1 박병석  
  아이디가 메멘토이면 글쓴분의 취향이 조금은 이해갈듯......

장문의 글 잘 읽었습니다.
1 oozoo  
  글 잘 읽었습니다... 조리있게 잘 쓰시네요^^ 이런 류의 영화들은 그 내용들이 제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의 경계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더욱 매력있게 다가오던데,(그 범위라는 건 여러 요인에 의해 계속 변화되긴 하지만...) 이 영화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엉킨 실타래 하나 하나 풀어가는 재미,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거 엮어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암튼 저도 큐브 상당히 인상적으로 봤었는데 Memento 님께서 쓰신 글을 보니 Cyper 란 영화 더더욱 기대됩니다. 막 땡기네요^^
1 dudtjr21  
  cube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낼수 있는 감독은 세계적으로 손가락으로 꼽을수 있을 정도 밖에는 없습니다...
1 spare  
  부천국제 영화제 출품되었었죠.
출발 비됴 여행에서 내용 대충 보고 저도 무지 보고 싶은데  해석본이 없네요 ㅜㅜ
1 정성교  
  앗....보고 싶다^^ 큐브 너무 재밌게 봤어요...쿨럭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