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6점] 릴 퀸퀸(Li'l Quinquin', 2014)

영화감상평

[리뷰: 6점] 릴 퀸퀸(Li'l Quinqui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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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 능력에 비해 기나긴 런닝타임은 의문이다.

평점 ★★★

 

<릴 퀸퀸>. 이 작품를 본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감상한다’는 단어보다 ‘정주행한다’는 단어가 더 어울릴 법하다. 2014년 칸 영화제에서 소개된 이후 그 해 9월에 프랑스에서 TV미니시리즈 4부작으로 방영되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목표로 두고 제작되었지만 4부작을 연속시켜 극장판을 만들어 영화의 영역으로도 인정받는 이 작품은 “영화인가, 드라마인가?”에 대한 질문의 각자마다의 답변에 따라 감상방법이 달라지겠지만 그 나름대로 장단점이 존재할 것이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영화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미장센과 몽타주의 영역은 감독의 역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다. 대부분의 영화보다 런닝타임이 2~3배나 더 긴 예술의 영역에서 감독의 역할보다 스토리를 창조하는 작가의 역할의 비중이 더 커진다. 스토리 없는 드라마를 정주행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지루하겠나. 하지만 <릴 퀸퀸>은 작가의 예술과 감독의 예술 사이에 있다. 인물과 배경 풍경을 담은  시네마스코프 쇼트의 구성과 캐릭터들의 배치와 사건이 각각 인상적인 이 작품의 감상방법에 따른 질문 “스크린이냐, 브라운관이냐?”에 대한 답변에 따라 장단점이 존재한다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릴 퀸퀸>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 토막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장르영화를 예상하게 하면서 추리극 같은 전개를 기대하게 만들 법하다. 죽은 소 안에 시체를 토막내서 삽입한, 기상천외하고 엽기적인 살해 방법은 호기심과 흥미를 더욱 부추기지만 영화는 런닝타임 내내 그러한 관객의 기대치를 채우려 들지는 않는다. 사건 수사의 진전은 거의 없고 각각의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아 억지로 메꾸려 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되려 이러한 구조는 ‘맥거핀’의 역할에 더 가깝다. 하나의 사건을 시작점으로 마을의 신변잡기적 사건의 연쇄에 더 주목하기에 이른다. 메인 플롯보다 서브 플롯에 더 무게추를 두면서 사건보다 마을의 전체적인 풍경을 보게 만든다. 플롯의 점층법이랄까.

 

이 영화는 캐릭터의 향연이다. 어떻게 보면 캐릭터의 영화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각각의 캐릭터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한쪽 입이 비쭉 올라간 얼굴이 인상적인 ‘퀸퀸’을 더불어서 수사방장치고는 맹한 인상을 가지는 ‘웨이든’, 앞니 하나가 빠져서 뭔가 모자라보이는 경찰 ‘카르팡티에’까지 캐릭터마다 아이콘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정상적인 인물이라고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이지만 영화의 중심에는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캐릭터들이 있다.

 

영화는 그러한 캐릭터들이 가지는 서로 간의 관계를 엿보는 데 있어 프랑스 사회의 현 위치를 투영시켜 보인다. 영화 내에서 벌어지는 특수한 사건들은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사건으로 보여지지만 마을 자체를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으로 투영시켜 본다면 꽤나 날카로운 시선을 겸비하고 있다.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의 관념의 차이, 종교와 인종 차별 문제, 그리고 테러 사건을 연상케 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사회성을 지니면서 그 자체로 통찰해보이려는 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고 캐릭터들을 활용하여 관념을 비꼬아 블랙코미디로 활용해보인다.

 

<릴 퀸퀸>은 그러한 사회를 진단하려 한다. 사건의 관찰자로 활동하는 ‘웨이든’과 ‘카르팡티에’를 필두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철학을 내세운다. 그에 대한 근거로 영화는 에밀 졸라의 소설 <인간 짐승>(1부의 소제목과 같다)과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림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가 언급된다. (내가 미술에 대한 소양은 없지만 그 작품들의 해설을 찾아본 결과 인간의 오만함과 추악한 면을 보이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의 ‘악마’와 언급하면서 영화는 인간의 사회학적 악마성에 대해서 드러내려 한다. 그렇게 브루노 뒤몽 감독은 죽음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 보이는 주민들은 그러한 삶과 죽음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다. 범인이 끝내 잡히지 않음으로서 악마로 상징되는 명확한 주체는 모호해지면서 내적인 악마성이 개인마다 존재하고 통제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데 되는데, 이는 영화가 가지는 사회에 대한 비관론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비관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악마성의 반대로 순수성도 각 인물마다 심어놓기 때문이다.

 

브루노 뒤몽 감독은 그렇게 프랑스의 현 사회에서 개인에 대한 사회의 문제를 조명해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의 철학적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상징들이 하나로 쉽사리 연결되지 못하여 파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3시간 동안 연결되지 않고 산발되어 있는 그러한 상징들이 영화의 결말에 다다라서는 ‘웨이든’의 대사로 정리되는 듯하지만 대사 자체가 상황에 맞지 않아 작위적으로 들린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데 끝내 악마와 철학을 들먹이는 수사반장을 영화에서 만났을 때 이 장르적 괴리감은 무엇인가. 마지막은 어설프게 마무리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지적인 조망 능력이 있다고는 보여지진 않는다. 작가주의라고 하더라도 너무 어설프다.

 

영화의 장르 자체가 블랙코미디라고 하지만 좀 주의하면서 감상을 요할 필요가 있다. 코미디는 지역과 세대의 차이가 엄청나게 작용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취향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원어가 번역되면서 유머를 살리지 못한 번역의 차이도 적용될 것이다. 하지만 관객이 유머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쉽사리 알 수가 없다. <릴 퀸퀸>도 그렇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겠다. 감독의 취향인지 그 지역의 블랙 유머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머 자체가 너무 건조하게 느껴진다. 캐릭터의 설정과 배치는 상당히 흥미롭지만 유머 자체가 날카롭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영화의 메시지에 심도와 무게감에 비해서 런닝타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여기서 내 의견을 말하자면, 한 편의 영화보다는 TV시리즈로 쉬엄쉬엄 나누어서 곱씹어보며 감상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것을 영화로 공개하였을 때 런닝타임만 길면 심도가 자연스레 보장된다는 그러한 착각이 바탕이 되었을까. ‘악’에 대한 고찰에 이르기까지 의미 없이 너무 돌아서 가는 여정에 지치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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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27 블루와인  
이 영화, 인지 드라마인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됐다가 저는 아주아주 힘들게 끝냈습니다.
끝내놓고도 뭐가 뭔지 제대로 이해 못한 채라고 해야 맞는 것 같을 정도?
그럼 끝낸거 아니죠? ㅎㅎㅎ
하여튼, 많은 인내심과 영화에 대한 이해와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지 않고서는 소화시키기 힘든 영화였던거 같습니다.

항상 좋은 평으로 어떤 영화를 제가 어떻게 잘 못 봤는지, 혹은 아, 이런거 였구나 하고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8 godELSA  
제가 적어도 좀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지만...
나중에 생각하는 게 있으면 수정하고 그러거든요..;;

어쨌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