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 1984
전작에 비해 우아하거나 고상한 맛은 좀 바랬지만 스케일이나 메시지 부분에선 발전한 게 눈에 띄었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로 한창 갑갑한 시기를 보내고 있던 우리에게 단비와도 같은 작품.
영화가 턱 틔인 자연풍광과 시원한 액션, 아바타삘 웅장한 음악으로 스타트를 끊더니 이윽고 쌈마이 돋는 80년대로 전환되어 당시의 화려함과 들뜸이 훅 다가왔다. 물론 수퍼히어로들의 영향으로 미래가 변했는지 80년대 특유의 디스코라던지 사각사각하고 엉성한 세트 등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적합했다.
이후 작품은 전세계를 누비며 관객을 대리만족시켜준다. 그때마다 신나게 따라오는 액션은 덤. 스케일 돋는 CG와 특수효과 및 감성소구의 콜라보는 감동스러울 지경이었고 기상천외한 동작과 마셜아츠의 가미는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특히 후반부 슈퍼맨 코스프레 및 구름사다리 씬은 '이게 뭐라고 감동이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메시지 부분에선 어찌 보면 타성에 젖은 20세기형 교훈일지도 모르지만 거짓이 만연하는 현재엔 오히려 더 와닿고 진하게 가슴을 울리는 아이템이 아닐까 한다. '진실은 언제나 승리한다' 진짜배기 격언엔 미사여구도, 긴 말도 필요없다. 영화가 이 부분을 사뭇 표현도 잘 했고ㅎㅎ
물론 아쉬운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우선 2시간 반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 세부묘사의 누락이 가끔씩 눈에 들어왔는데 DC 작품으로서 차마 3시간을 넘길 수 없다는 마인드가 낳은 편집의 폐해가 아닌가 한다. 감정선이 끊길 정도는 아니지만 나중에 곱씹어 생각해봐야 개연성이 사는 부분이 더러 있어서ㅋㅋ 그리고 이건 한국 특인데 자막ㅡㅡ 와, 무슨 90년대 비디오용 영화도 아니고 뭔 생략을 이렇게 많이 해놨대. 그리고 왜 혼자서 뜻을 유추하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까? 자막러로서 그런 자아도취는 엄청 위험하거든요? 이래서는 디테일한 의미 전달도 못하고 감동도 퇴색시키고... 자막 단 양반은 영화를 다시 보세요. 이게 2020년 자막이라니 미치겠다.
뭐... 왈가왈부는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론 만족스러웠다. DC는 원더우먼이라는 프렌차이즈에게 감사해야 한다ㅋㅋ 20세기에 슈퍼맨, 배트맨이 있었다면 21세기엔 원더우먼이 그 자릴 대신할 수 있으니까. (아치에너미로선 조커가 그 정도 위치려나?) 아무튼... 이 시국에 개봉해줘서 고맙고 닫혀있던 눈과 귀를 뚫어주며 양념으로 감동까지 선사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한 걸 보니 이제 속편은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거 같다.
☆☆☆☆☆☆☆☆★★+α
'열에 하나는 맞아떨어져. 후하게 쳐줘서 다섯중에 하나려나?' 비스무리한 대사에서 '후하게'부터 싹 빠졌구요.
'나같은 사람(People like me)은 처음부터 기회가 없어'가 원문에 가까운 문장을 '나는 원래부터 기회가 없었어'라고 해놨고
앞에서 대화하면서 아름답다는 말이 나왔기로서니 맨 마지막에 'So many things...'라고 읊조리며 여운과 여지를 남기는 장면에서
'모든 것이 아름다워.' 하고 퉁쳐버립니다. 이쯤되면 포괄적인 걸 넘어서서 눈가리고 아웅 수준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애당초 So many things가 '모든 것'도 아니잖아요. 더 웃긴 건 그 후에 꼭 넣어야 할 'See you around' 부분은 아예 생략돼 버립니다ㅡㅡ
극의 흐름상 반드시 들어가야 할 대사인데 이건 또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해서 뺐나 보네요. 이 얼마나 편리한 제작 방식인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