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트 Doubt를 보고.

영화감상평

다우트 Doubt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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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메릴 스트립이 죽은사람 연기를 하기위해 얼음물에 온몸을 한참 담근후에 촬영에 임한적이 있다는 글을 어떤 책에서 읽은적이 있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실제 죽음의 느낌을 알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도 메릴 스트립은 자기확신에 가득찬 늙은 수녀역을 정말 유감없이 해내고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작가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 부시가 결국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이라크 어디서도 대량살상무기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고 극본을 썼다고 한다.

남을 의심하거나 의심받는 일은 실제 살아가면서 흔하게 겪는 일이다.
자기확신에 강한 사람일수록 남을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어떤 증거를 들이 대어도 마약과도 비슷한 중독성을 가진 '의심'이라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남을 의심하는 일은 얼마나 달콤한 일인가. 하물며 그 의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을때는 더욱 그럴것이다.

이 영화에서 의심받는 신부(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는 명쾌한 변명이나 의심을 해소할만한 해명을 하지 않는다. 아니 열심히 해명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정말 진실인지 거짓을 감추기위한 위선인지를 이영화는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신부는 떠나버리고 마는데 그 이유역시 죄를 지은것이 들통날까봐 도망친것인지 신부인 내가 수녀에게 의심따위나 받고 구차스럽게 변명이나 해야하는것인가 하고 기가막혀 떠나버린것인지 알수가 없다.
자기 확신에 대한 의구심을 보여주는 수녀의 회개 비슷한 마지막 읊조림이 이 모든 알수없는 혼란을 일거에 해결하는것 처럼, 즉 신부가 옳았고 수녀가 틀렸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것 같지만 정말 그런가? 내 의심에 의구심이 들었다해서 상대는 옳은것일까? 무엇보다 명확한 해명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한번 품었던 의심을 정말 깨끗히 비워내는것이 가능한 일일까?

근본 원인은 소통부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대화가 되지않는 사이는 얼마나 위험하고 아슬아슬한지를 이영화는 말하고 있다.
애당초 수녀와 신부가 의사소통이 되는 사이 였다면 문제가 저렇게 커지지는 않았을것이다.
소통부재는 국가간이나, 사회내에서나 개인들 사이에서 의심과 혼란, 파국을 불러올 뿐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집단 계층간에 의사소통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같은 현실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였다.

연기와 대사만으로 이렇게 긴장을 유지하는 영화도 드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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