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련 매체를 보기전에 ...

영화감상평

일본 관련 매체를 보기전에 ...

1 노동욱 8 2231 0

-소설 '아리랑'에서 발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의 히틀러 정권에 의해 학살된유태인들의 수
가 얼마나 될까. 유태인들이주장하기로는 3백만이라고도 하고 4백만이
라고도 한다. 그럼, 우리가 일본의 식민치하 36년 동안 일제의 총칼에 학
살당하고 죽어간 우리 동포들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3백만일까? 4백
만일까? 아니면 6백만일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그 어림숫자마저
도 공개되어 있지않고, 공식화되어 있지 않다. 나는 그 어림숫자를 3백만
에서 4백만으로 잡고 있다. 그리고작품 <아리랑>을 써나가면서 그 숫
자를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하고 있다. 그 작업은 <아리랑>을 쓰는 여러
가지 목적 중의 하나이다. 우리 동포들도 일제의 총칼 앞에서 3,4백만 명
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전제로 나는 독자여러분들과 전체 민족성원들에
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한다. 한 학급 60명이 손바닥 5대씩을 맞아야
하는 단체기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60명 중에서 가장 아픈 사람은 누
구이겠습니까? 내가 그동안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뜸 1번! 이라는
답이었다. 그러나 그건 틀린 답이다. 정답은 60번!이다. 왜냐하면1번 학
생은 제일 먼저 5대를맞고 나면 매의 공포로부터 완전히해방되어 그
뒤의 학생들이 매를 맞는 동안 자유를 맘껏 누릴수 있다.그러나 60번 학
생은 자기앞의 학생들이맞을때마다 59번의 공포에시달려야 한다. 이
답의 힌트는 흔란 우리의 속담속에 있다.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 유태
인들은 단 3년 동안에 죽어간 것이고, 우리 동포들은 그 10배가 넘는 세
월인 36년에 걸쳐서죽어갔다. 어느 민족이더 괴롭고 고통스러웠겠는
가? 유태인들보다 10배가 넘는 공포에 시달리고 고토을 격었음에도 불구
하고 우리는 어찌하여아직까지도 우리 동포들이얼마나 죽어갔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인가? 또 어찌하여 다른 민족인 유태인들의비극은 마치
우리의 일인 것처럼실감하고 분노하며 독일군들을증오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들의 비극에 대해서는 이야기 꺼내는것은 역겨워하고 지겨워
하고, 망각하려 하고 기피하려 하는가?그 시대가 달라서 그러는가? 과연
그 시대는 다른가? 유태인 처녀들이 발가벗겨져 독가스실에서 죽어갈 때
우리 민족의 처녀들도 동남아 일대 정글에서 정신대로 윤간당하며 죽어
가고 있었던 똑같은 시대다. 그러면 우리는어찌하여 그런 어리석은 군
상들이 되었는가. 우리는 두가지 집단최면을 당했던 것이다. 첫째는 자기
네들의 수난을 전세계적으로 알리고자 수없이 소설을쓰고 연화를 만들
고 TV드라마를 만들었던 유태인들에게 우리는 최면당했다. 둘째는 해방
과 함께 우리 사회모든 부분을 장악했던 친일파들의조직적인 음모로
일제시대는 망각이 최선이고, 일제시대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촌스럽고
모자라는 짓으로 매도되는 최면을 당한 것이다. 유태인들은 그들의 수난
을 극대화하며 자기네 민족의 자본을 확보하는동시에 미래를 개척하는
민족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과 반대로 살아온 부끄러움
을 저질렀다. 그러나 역사를 바르게 아는 데는 시기의 빠르고 늦음이 없
다. 민족은 영원하므로. 1994년 7월 조정래

-한국일보 발췌-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의 작은 어촌에 살고 있는 야마오카(다카쿠라 켄)와 아내 도모코(다나카 유코)에게 작은고기잡이 배 ‘도모마루’ 호는 그들의 자식과도 같은 존재이다. 배에서 마시는커피 한 잔으로 기쁨을 얻는 이 부부에게 천황의 서거에 이어 옛 친구 후지에(이가와 히사시)의 부음이 전해지고, 두 사람은 아픈 과거를 추억하게된다.

영화 제목 ‘호타루’는‘반딧불이’라는 뜻. 그들은 1945년 가미카제(神風)특공대였고, “내가죽거든 찾아오는 반딧불을 쫓지 마라. 그것은 나”라는 가네야먀 소위의유언이 뇌리에 생생하다. 조선인 김선재인 가네야마는 오키나와의 미군 함대로 돌격해 죽고, 그의 일본인 약혼녀였던도모코는 살아있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는 야마오카의 아내가 됐다.

‘호타루’는 지난해 5월 일본에서 개봉 250만명 관객을 동원하면서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한국 관객 입장에서 ‘호평’을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나는 조선 민족을 위해, 도모코를 위해 출격하는 것”이라는 김선재의 비장한 유언이나, 특공대원의 어머니로불리던 여관주인 도미코 여사가 “진짜 어머니라면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을 것”이라는 절규에서‘대동아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읽히지만 어디까지나 지엽적이다.

조선인이 ‘기꺼이’ 가미카제가 되는 설정은 한국인들마저 일본의 군국주의를 ‘운명적’으로받아들였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김선재의 고향인 안동에 찾아온 야마오카와 도미코 부부를 보고 싸늘하게 대하는 가족들이결국 도모코를 며느리로 인정하는 대목 역시 일본의 편의주의적인 ‘화해’의 방식을 단적으로보여준다. 천황의 서거소식에 자살한 야마모카의 전우였던 후지에의 손녀를 등장시켜 세대를 뛰어넘는 가미카제에 대한이해를 유도하는 대목도 억지스럽다.

배우들의 깊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휴머니즘이 아니라 명백한 잘못에 대한구구한 변명과 어설픈, 그것도 개인적인 화해의 발상으로만 여겨진다. 감독은 철저히 일본적 정서를 반영한 영화 ‘철도원’의감독인 후루하타 야스오.






호타루....어느 게시판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을 봤다...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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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1 강만호  
글쎄요..물론 저보다 지식이 많으신 분의 글이겠지요.하지만 아리랑이란 글은..
 쉽게 동의할수 없는 글입니다. 저는 모든일에 비유란것은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매 60번째 맞는 학생..매첫번째 맞는 학생 실제로도 어느
 사람이 더 고통스러울지는 당사자 만이 알겠지만. 매60번째 맞는 학생이 더 고통스럽다는 저분의 가정이 맞다고 본 측면에서도. 그것을 유태인과 우리의 상황과 비교한다는것은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요.. 물론 우리조상들의 고통이 덜했다는건 아닙니다.하지만 10배라니요. 각자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었을 터..참고로 저는
 유태인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그들이 행하는 학살을 아는 사람은 다 알것이니.
 그리고 독일군을 지금의 우리중 누가 증오할것인지. 어떤 미친 광기를 일개군인의
 힘으로 컨트롤 할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제가 이분의 글에 이렇게 반박하는 이유는..우리는 그동안 친일파들에 의해 일제시대를 망각하도록 최면에 걸린게 아니라..오히려 반일감정을 주입받으면서 크지 않았나 싶었고.. 맹목적인 반일감정을 지금의 세대에게 주입해서..얻고자 하는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호타루라는 영화는 보지 못했습니다.내용만 봐도
 어떤 의도인지 알것같네요. 저감독이 상당한 노감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노감독의
 제국주의 미화..지겹습니다.그들은 그들의 시대를 살고 있는것입니다. 그들 젊은 세대들은.대부분 그런것에 관심도 없습니다. 과연 우리들은 어떤식인지.앞으로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어떤식으로 대처해야 할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리랑 상당히 유명한 책이지요..1994년..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역사를 바로 아는것은 중요하지만.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지금의 세대에게 심어주는건.. 이기가 아닐까 싶습니다...복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6 최원석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말이 있죠.. 일본인들도 자신들이 무슨짓을 과거에 했는지 자손들에게 가르쳐야될 의무가 있는것 같은데.. 근데 이런 얘기가 완벽하게 역사의 뒷편의 얘기라고 할수 있을까요.. 불과 백년도 안되기 전에 우리는 식민지 노예였는데.. 근데 영화 감상평에 올라올만한 게시물은 아니네요.
1 박정은  
제목이 일본 관련 매체를 보기전에라고 쓰셨는데 그것은 일본을 증오해야하며 따라서 마땅히 일본의 문화또한 증오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제가 생각하기엔  과거에 어쨌든 현재의 우리는 윗분 말씀대로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하겠고 또한 우리가 일본에게 무작정 눈을 돌리기 보다는 배울점은 인정하고 배워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1 빠나나우유™  
'맹목적인 반일감정', '일본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타'를 말씀하려는게 아니것 같은데요. 요새 10대 20대 중에 그런 사람 드물지 않습니까? 일본문화 좋아하는거... 자기 기호가 그런걸 어쩝니까? 하지만 반딧불의 묘나 호타루같은 작품은 걸러서 봐야된다고 생각됩니다. 맹목적인 찬양보다 더 무서운건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빠져드는데 있습니다.
1 박경훈  
일본문화,외국문화 모두 다 어느것 하나도 나쁘다 좋다 할 수 없고
 우리에 감정을 그들의 문화에 까지 기입시켜서는 안됍니다.
 좋은건 좋게 받고 나쁜것은 받아 들이지 않는 올바른 선택만 필요합니다.
 근데 슬픈건 우리는 항상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한짓을 배우게 돼고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일본나라.사람들 자체도 미워 하게 됍니다.
 일본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자신들의 식민지였다는 말을 들으며
 배우며 자랐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얕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시대가 변해서 우리는 나쁜 기억은 지우려고 발버둥 치지만 우리에 무의식 속에
 들어 있는 일본인들을 미워하는 마음과 일본인들 머릿속에 무의식 적으로 들어있는
 우리 나라을 얕보는 마음은 변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단 한가지 변화을 일으킬 수 있다면 우리나라가 일본 보다 더 잘살고 더 멋있게
 힘있는 나라로 발전하는 길 밖엔.......
1 김행복  
경훈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용서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리랑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무조건적인 배타주의를 지향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조상들의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잊지 말고 앞으로는 일본에 의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경고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린 자신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걸러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본문화를 보면서 알게 모르게 그들의 문화에 친화 되어 가는 건 사실입니다.
 
1 남현식  
친화되어가도 잊지않을것은 잊지않으면 그것이 올바를듯... 개인적으로 장애인들
 보고 억지웃음을 짜내는 놈과 정신대 할머니보고 이제 잊자고 하는놈은 화가 납니다. 애니 좋아하고 일본 음악도 좋아하지만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은 절대로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올바른 비판력이 정답이 아닐지
1 양원석  
  ==========================절 취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