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시리즈에 대한 잡담

영화감상평

Terminator 시리즈에 대한 잡담

1 Memento 6 2055 0
Terminator 시리즈는 애초에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이나 다른 작품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의 머리 속에 불현듯 떠오른 작은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현실과 타협하고 그 속에서 관객들의 흠미를 유발하려하기 위한 노력과 기발한 착상을 했는 지등을 아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Terminator 시리즈를 만들게 된 감독의 아이디어는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유럽에서 다른 영화를 촬영중이던 James Cameron은 어느날 갑자기 (-.-)  '화염속에서 걸어나오는 금속 골격체(Terminator 시리즈에서 자주 보이는 씬이죠)' 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감독 생각에는 너무도 강력해 보이는 그 로봇의 이미지에서 출발해서 영화를 제작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작비였습니다. 금속 로봇은 미래의 과학기술의 산물인데, 미래의 사회를 그릴만한 제작비를 그 때의 James Cameron으로는 꿈도 꿀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James Cameron은 기껏, 1978년에 12분짜리 Xenogenesis라는 SF단편을, 그리고 1981년에 Piranha(피라나)라는 식인물고기 영화를 만들던 전형적인 초짜감독이었습니다. 그런 감독에게 2~3천만달러(이 금액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Star Wars V, VI의 제작비 수준)의 거금을 들일 영화사는 없었던 거죠.

그래도 James Cameron은 꼭 그 영화를 만들고 싶었나봅니다. 어떻게 해서든.. -.-;  그래서 최초의 이미지는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에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게 돈이 많이 든다면, 현재를 배경으로 하자. 그럼 로봇은요?? -.-  흠... 그러면 미래의 로봇을 시간이동 시켜서 현재로 데리고 오자. 어때? 나의 아이디어가?? 흠화화화.. -.-

Terminator 시리즈의 주요한 근간이 되는 시간 이동, 미래와 현재의 관계, 운명 등등 모든 것이 바로 제작비의 부족에서 비롯된 파생적인 아이디어입니다. 배신감 느끼십시까? 후후.. 신기하게도 현실에 타협하기 위해 만들어낸 (급조라고 하기는 어렵군요) 시놉시스가, 혹시나 제작비가 풍족했다면 만들어졌을 영화보다 더 훌륭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Terminator 는 1984년 3월부터 6 월까지 단 4개월만에 640만 달러라는 그 당시로 보더라도 적은 제작비를 가지고 만들어집니다. 처음에는 Terminator 역으로 O. J. Simpson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O. J.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바람에 다른 배우에게도 넘어갔습니다. 또 Arnold는 Kyle Reese (Michael Biehn 이 연기한) 역을 제안받았는 데, 시나리오를 읽어 본후에 terminator 역을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답니다. 탁월한 선택이었죠. 그 역에서 출발해서 이젠 governator (governor + terminator)를 노리는 정치적, 사회적인 거물이 되었으니까요. 그 전까지 Arnold도 Conan the barbarian, Conan the destroyer 같은 육체미만을 자랑하는 영화에 나오던 2류배우였습니다. Terminator에서도 Arnold의 대사는 기껏 열몇마디정도 밖에는 안되지만, 자신의 이미지에 딱맞으면서도 관객들 머리속에 존재감을 새겨넣을 수 있는 배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원래 로봇이어서 조금 어색한 듯 보이는 대사처리도 오히려 사실감을 높여주는 장점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만약 James Cameron에게 처음 아이디어 대로 만들 수 있는 제작비가 주어졌다면 어떤 영화가 만들어 졌을까요? 그것도 재미있는 상상이 됩니다.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로는 T4가 James Cameron이 애초에 만들려고 생각했던 영화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T4가 어떤 영화가 될 지 지금 알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미래 사회에서의 인간과 기계의 전투가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지금까지 시리즈를 이끌어 왔던 시간 이동, 현재와 미래와의 관계, 운명에 대한 이야기들은 빠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시리즈를 단순한 액션물에서 한 차원 높은 영화로 만들어 주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James Cameron이 T4의 감독을 하는 데, 흥미가 있을까요? 글쎄요. 처음의 아이디어가 어쨋건, 지금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제공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T1과 T2로도 감독은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해버렸다고 생각하기 않을까요?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긴 합니다.


7년이 지나 T2에서는 이제 모든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감독도 이젠 최고의 흥행감독이 되었고, 배우도 예전의 촌스럽던 배우가 아닙니다. 제작비는 그 당시 영화사상 최초로 1억 달러로 늘어났고, 감독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Arnold가 받는 출연료는 1500만 달러로 전편 전체 제작비의 2.5배였습니다.  T2에서 아놀드는 약 700 단어 정도를 대사로 하는 데, 한 단어당 2만천달러(2천만원쯤 되나?)입니다. "Hasta la vista, baby" 한 마디는 8만5천달러짜리입니다. 예전에 Mike Tyson 주먹 한방에 몇억짜리라고 계산하던거 떠오릅니다.

이렇게 제작비가 늘어나고 감독, 배우가 거물이 되면, 액션의 양적인 팽창과 현란한 비주얼로 속편이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속편들,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영화 거의 없다고 봅니다. T2에서 제가 가장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관객들의 상상을 앞서는 플롯을 제공하며, 당시 획기적인 발전을 구가하던 CG를 가장 효과적으로 영화에 담은 점입니다. 꾸준히 영화의 시나리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제작진이 고민을 해왔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약 100만 피트 (300 km)가 넘는 분량의 필름이 촬영에 사용되어졌고, 그 중 1%도 안되는 분량만이 극장에 상영되었습니다. 1억달러 제작비도 이렇게 쓰이면 돈내고 보는 관객도 아깝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91년 T2를 처음 보던 때가 기억납니다. T1을 보지도 못한 상태였고, 뭐 디게 쎈 로보트가 나와서 멋지게 싸운다드라 정도의 영화평만 듣고 갔었습니다. 요즘처럼 멀티플렉스도 아니고, 지정좌석제도 없는 사운드도 허름한 어느 소도시 극장이었습니다. 영화가 막 시작되고 나서 자리가 불편하다는 걸 느끼고, '조금 한적한 장면이 나오면 자리 옮겨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결국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었던 것은 영화가 끝난 후 였습니다. 자리가 불편하다는 생각도 할 겨를도 없었고, 했더라도 자리 옮길 마음의 여유를 영화보는 내내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겠지요. 아놀드가 총맞고 다시 일어나는 거야 '흥.. 당연하지' 하고 넘어갔는 데, T-1000가 액체금속으로 아무 모양으로나 변형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는 '커헉~~' 숨이 막혔습니다. 요즘 다시 보면 조금 유치해 보일 수도 있을라나요? 제겐 아직 지금봐도 굉장한 액션영화로 보입니다. 올해 여름 블록버스터들 다 합쳐도 T2 못 당한다고 하면 과장일라나요? 아닐걸.. ^_^

또 다시 시간이 흘렀습니다. 무려 12년이.... 나온다 나온다 하던 T3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현재 까지 승인된 제작비로서는 최대 규모인 1억 7천만달러를 쏟아 부어서 양적을 팽창을 했습니다. 처음에 Vin Diesel, Shaquille O'Neal 이 T-X역으로 고려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후에 제작이 진행되면서 T-X 역은 여자가 맡기로 결정되었고 Kristanna Loken에게 돌아갔습니다. 감독에는 James Cameron이 고사하면서, 일당 Ang Lee에게 제안되었는 데 Ang Lee 감독은 The Hulk 찍느라고 거절했습니다. Ang Lee가 만든 T3는 어땠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Jonathan Mostow보다야 낫지 않았을까요? Jonathan Mostow 감독은 영화 내내 James Cameron의 그림자에 씌워져 있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뜻대로 영화를 꾸려갈려니 (그럴 의도가 있었다면) 흥행안전위주의 제작사와 충돌을 감내하기도 껄끄러웠겠지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Ang Lee 감독은 그런 점을 꺼려 감독제의를 고사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The Hulk가 자신의 스타일을 나타내는 데 더 적합한 영화였다고 판단한 것이 주요 이유이겠지만요. 시나리오 작가들의 상상력의 한계를 탓해야겠지만, 그렇기도 참 난감합니다. 왜냐하면 T1, T2에서 시작하고 보여주고 끝내버렸는 데, 또 속편 만들려니 상상력과 소재의 고갈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 다시 관객들을 기대를 한 단계 앞서는 영화를 기대한다면.... 흠... 가혹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냥 영화 만들어 주신 것만도 '캄샤함다' 라고 해야 할까나요.
 
T3에 대한 구체적인 평들은 다른 분들이 너무 많이 훌륭하게 하셔서, 별 필요를 못 느낍니다. 단지 너무 흥행안전위주로 영화의 한계선을 그어 버린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흥행에서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박스 오피스 10위이고 다음 주에는 아예 차트 밖으로 밀려 나갈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 미국 시장에서는 제작비에도 못 미치는 1억 4천만 달러 조금 넘는 수익을 올렸습니다. Finding Nemo가 3억 2천만 달러 넘게 벌어 들인 것을 보면 차이가 확연합니다. 잘 해야 미국 시장의 흥행수익으로 제작비 본전 챙기게 될 것 같습니다. 해외시장의 수익과 나중에 DVD 등등으로 순익을 얻겠지요. 이쯤되면, 그냥 예전의 명성을 지키면서 안정빵 위주로 나가는 게, 속편으로서는 얼마나 위험한 제작방식인지 알게 됩니다. 세상 어느 일이나 마찬 가지지만...

아이디어의 중요성이 다시 여실히 드러나는 예라고 느껴집니다. 아무리 CG가 어떻고, 액션이 어떻고, 제작비가 어떻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plot이고 그 plot의 근간을 이루는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머지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보여줄거냐의 지엽적인 문제이죠(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T3에서는 관객에서 shock로 다가올 만한 지적, 감정적 impact가 미약해 아쉬워 보입니다.  T2에서 '이젠 다 끝났구나' 하고 끝내버린 시리즈를, 다시 살린 시간과 운명에 대한 고찰은 눈에 띄입니다. 

벌써 T4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놀드가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는 것과 T4 출연의 관계등 가십거리에서 시작됬습니다. 만들어 지겠지요. 흥행보증 시리즈인데. 그런데 T4가 만드어 진다면 이 전의 시리즈들과는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뭐 개인적인 상상입니다만, 이전 시리즈들은 미래에서 오는 terminator들에 대항하는 영화라면, t4는 인간과 기계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부분이 강조될 것 같고, terminator를 포획하여 re-program 한 후 과거로 보내는 이야기 등이 나오지 않을까요?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T3 offical comics 등에는 그런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T3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설정되었던 배경이겠지요. 단순히 terminator CPU를 다시 program 하는 작업이 아니라,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terminator가 인간과의 관계를 느끼고(!!) 인간과의 공존에 대해 공감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AniMatrix에서 그런 episode가 나오죠? The Matriculated 라는 episode보면 인간에 의해 잡힌 기계가 인간의 편에 서는 과정을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비주얼이 가득히 보여주었죠.

그러나 t4가 정말 이렇게 만들어 진다면 실망입니다. -.- 아무나 해 볼 수 상상 그 대로 만든다면... 쩝..  뭔가 획기적으로 화끈한걸 원합니다. 단지 액션만이 아니라, 기발한 상상력으로.....  언제 만들어 질 지도 모르는 영화에 대해 잡설이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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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박지훈  
  그럼 바이센테니얼맨+스타쉽트루퍼스 라는 소리인데,,,,,,,,,,,,,,,,,,,,,,,,,,,,,,,,,,,,,,,,,,,,,,,,,,,,,,,,,,,,,,,,,,,,,,,,,,,,,,,,,,,,,,,,,,,,,,,,,,,,,,,,,,,,,,,,,,,,,,,,,,,,,,,,,,,,,,,,,,,,,,,,,,,,,,,,,,,,나 참.
1 나그네  
  잼있게 잘 읽고 갑니다. 근데 아놀드가 과연 T4를 찍을지는.. 미지수인 것 같네요.
1 비트문  
  뭐가 나참이오..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는데서 작품은 출발하는군요.. T1처럼..
1 이힝힝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안감독은 스토리의 흐름은 더 잘 이끌어나갔을지 모르지만.. 액션 연출에는 별로 소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1 장정화  
  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 늘푸른나무  
  저도 글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