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영화 두 편, 럭키 마일 & 카이트 러너

영화감상평

사막 영화 두 편, 럭키 마일 & 카이트 러너

1 께봉이삼촌 3 4618 1

모래에 대한 기억이라면 어릴적 놀던 동네 개천 가의 깨끗한 모래나, 그리 자주 들르지도 않는 국내 몇 군데 해수욕장의 모래 사장을 몇 번 밟아본 게 거의 전부이지만, 그냥 그림과 영상으로만 접하는 영화의 세계에서는 왜이리 사막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내 마음을 끄는지 모르겠다. 막상 그런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져 한 낮의 뙤약볕과 한 밤의 찬 기운을 맞고 또 모래바람과 갈증에 시달린다면 그리 낭만적이지도 않을 텐데, 멀리서 영상으로만 허하면서도 황량한 사막의 모습을 보는 건, 그리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을 보는 건 웬지 우리의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같다.


'바그다드 까페' 그리고 내가 자막을 만들기도 했던 '카불 익스프레스', '악단의 방문(밴드 비지트)' 등, 한결같이 화려한 영상이나 웅장한 사운드도 없는, 어찌보면 정말 볼품없는 영화들이지만, 정말 푸근하고 정감이 가는 영화들.....


그리고, 작년 12월 중에 또 다시 두 편의 사막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하나는 바다를 통해 호주의 외딴 사막 지역에 떨어진 밀입국자들의 사막 방랑기를 그린 '럭키 마일 (Lucky Miles, 2007)'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 원작 소설이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항상 베스트셀러 상위에 랭크돼 있는 걸 보고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언젠간 읽어보려고 했던 '카이트 러너(The Kite Runner, 2007)'다.


D4522-01.jpg


우선 럭키 마일은 앞에서 말한데로 호주에 밀입국하려는 동남아인들과 아랍인들 두 무리가 인도네시아 국적의 조그만 통통배 어선을 타고 호주의 외딴 사막지역 부근의 한 바닷가에 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두 무리의 밀입국자들 그리고 그들을 호주로 태워온 밀입국 브로커격인 한 인도네시아 어선의 어부들, 그리고 호주의 경비 경찰들, 이 각각의 조그만 무리들이 호주의 사막에서 얽히고 섥히고 엎치락 뒤치락하다, 밀입국 동남아인들 중의 하나로 호주인 아버지를 찾아 온 캄보디아인 아룬, 또다른 밀입국자 무리인 아랍인들 중 이라크에서 도망쳐 나온 요시프, 그리고 어선의 어부들 중 하나였던 라멜란의 3인은 각자 본래의 무리에서 떨어져 다국적 다목적으로 어쨌든 도시를 찾아 사막을 헤매며 생사고락을 같이하게 되는 삼총사가 된다.


셋이서 그렇게 헤매다 한 폐가에서 엔지니어인 요시프의 노력으로 한 폐차를 다시 살려, 타이어가 없으면 차가 못달린다던 한 TV 광고를 비웃듯, 없는 앞 타이어는 나뭇가지를 덧대어서 균형을 잡아주고, 앞이 아니라 뒤로 달리며 한 명은 보닛 위에 앉아서 운전대를 잡고, 차를 세울 땐 다른 한 명이 브레이크 대용으로 클러치에 돌을 얹어야 하는, 세상에 다시 없을 그 차를 운전하며 달리는 모습은 이 코메디 아닌 코메디의 압권이다.


럭키 마일은 우여곡절 끝에 만난 한 호주인의 도움으로 버스를 타고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해 한 외딴 버스 정류장에 앉아 그동안의 고생이 한꺼번에 감회로 밀려오는 듯 그렇게 흐느끼고 있는 아룬 뒤로 보이는 버스 정거장 벽에 써 있는 이름이다.


F9337-01.jpg


그리고 카이트 러너(The Kite Runner)...


카이트(Kite), 연이라고 하면 어릴 적 연을 만들려고, 좋은 대나무를 구하기 위해 동네 야산을 헤매던 기억, 집에서 어머니 몰래 한지와 실을 훔지던 기억, 가늘게 깍은 대나무 살에 한지를 붙이는 데는 종이가 젖지 않아 붙이다 대나무 살의 힘에 종이가 찢어질 염려가 없는 밥풀이 제격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이 되면 그렇게 구한 재료들을 가지고 형이랑 연을 만들어 날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아이들은 문방구나 구멍가게에서 파는 걸 사서 날리기도 했었지만, 사실 용돈 한 푼 없던 내 어린 시절엔 그걸 살 돈도 없었을 뿐더러 그렇게 재료를 구하고 만드는 게 다 만들어서 날리는 재미 못지 않은 재미인지라 살 돈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느니보다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다른 아이들과 연 싸움을 하며 연 줄을 끊고 하는 놀이를 해본 적은 없는데, 아마도 내 손으로 그렇게 어렵게 만든 연이 아까워 함부로 그런 싸움을 할 엄두를 낼 수는 없었던 이유인 듯 하다.


카이트 러너는 탈레반과 전쟁으로 우리에게 어느정도 익숙한 그리고 내가 자막을 만들기도 했던 '카불 익스프레스'라는 인도 영화로도 소개된 바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배경으로 소련의 침공이 있기전 탈레반이 점령하기 전의 평화로운 카불과 그곳에서 신분차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나누는 두 소년의 우정, 죄의식을 그린 이야기다.


옛날 우리처럼 아프카니스탄에서도 설날 같은 날이 되면 온 동네의 축제같은 연날리기 대회가 열리나 보다. 이들의 연 날리기는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는 연 싸움인데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연의 주인이 대회의 우승자가 되며, 승리한 자신의 연보다 그가 마지막으로 끊은 상대방의 연을 주워 전리품으로 집안 벽에 걸어놓고 기념하게 되는데, 상대방의 연 줄이 끊어지는 순간 그 날아가는 연을 주으러 쫓아 달려가는 아이가 영화의 제목 '카이트 러너(The Kite Runner)'다.


부유한 집안의 아미르와 그 집 하인의 아들 하산은 주인과 하인의 관계지만 절친한 친구로, 아미르는 책 읽고 이야기 쓰기를 즐기는 문학 소년이고, 하산은 연 잡기의 명수 즉 명 카이트 러너다. 연 싸움에 진 연이 날아가기 시작하면 모든 아이들이 하늘을 보며 소리를 치며 우르르 연을 쫓아 달려가지만, 하산은 친구 아미르를 데리고 날아가는 연도 하늘도 보지도 않은 채 그냥 한참을 달려 어딘가에 가서 앉고는 아미르에게도 앉아 쉬자고 한다. 아미르가 여기서 뭘 하는 거냐고 물으면 연이 날아오기를 기다린다며... 그리고 잠시 후 거기로 그 연이 날아와 하산의 손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위하여, 덩치 튼 아이들의 위협과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친구 아미르의 전리품을 지켜낸 하산의 우정, 숨어서 친구 하산이 자신을 위해 봉변을 당하는 걸 보면서도 끝내 나서서 도와주지 못한 아무도 모르는 죄의식에 더는 하산의 얼굴을 볼 수 없어 하산과 그의 아버지를 집안에서 쫓아내는 아미르의 배신, 그리고 소련의 침공으로 미국으로 피난하는 아미르와 그의 아버지


미국에서 어른이 된 아미르, 자신의 첫 소설의 출판 본을 받던 날,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뜻하지 않게 지난날 친구 하산에게 지고 있었던 죄의식에 대한 속죄의 길을 떠나게 된다.


여러번 원서 구입 목록에 올려 놓다가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원작 소설 'The Kite Runner'이지만 정말 감동적으로 책을 읽은 다른 여러분들의 평으로 미루어 영화는 책에는 많이 못미치는 느낌이다. 두 친구의 우정과 배신, 속죄의 감정을 가슴 깊이 전달하기에는 이 영화는 뭔가 모자란  느낌이다.


한데, 영화에서 아역들을 실제 아프카니스탄의 아이들로 썼다는데 영화에서 아이가 성폭행 당하는 장면이 있다는 이유로, 종교적 민족적 문제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를 받을까 우려하여, 영화에 출연한 4명의 아역 배우들이 고국 아프카니스탄을 떠나 아랍에미레이트로 피신했다는 이 영화와 관련한 기사가 또 다른 안타까움을 더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3 Comments
1 밤의불나방  
세심한 설명과 더불어 좋은 영화 추천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정말 좋은 감삼평 잘 읽었습니다.
1 흰곰  
깨봉이삼촌님 좋은 영화,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망각해버리는 것이 사람이라던데
세월이 갈수록 왜 이리 옛 시절의 추억이 가슴을 진동하는지..
향수에 취해 그 시절을 말할때면 어느새 풋풋한 탱글님들은
청국장만큼이나 고루한 냄새가 나는 듯 어정쩡한 미소로 바로 내치더군요.
투박하나 구수한 인간사의 내음을 이해 못해주니 금세 서운해지지만
어차피 그네들도 이 감정을 느끼고 절감할 묵은지가 되겠지 혼잣말하며 그냥 웃습니다.
깨봉이삼촌님의 감정을 제가 공감하듯 먼나라 외지사람의 감정 또한 이해되니
겉표지가 빠다스럽게 달라도 사람 속 내용물은 같은가봅니다.
그런 진한감성을 공유할 수 있으니 사실 보너스 봉투보다 더 뿌듯하니 행복하네요.
늦었지만 인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새요......꾸벅
그리고 올핸 꼭 좋은 사람 만나시길......
1 께봉이삼촌  
흰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올해도 재밌는 글, 멋진 글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