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월드] 스스로 유령이라고 믿는 이니드에게..

영화감상평

[고스트 월드] 스스로 유령이라고 믿는 이니드에게..

1 김규한 0 1905 0
모두 그렇게 내 곁을 떠났습니다. 전 이 세계에서 이방인일 뿐입니다.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아무도 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저 엉뚱한 그림(KKK단 그림)을 전시회에 걸어놓은 죄로 사람들은 그녀를 죄인 취급합니다. 그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바보들입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에는 무덤덤하지만 정작 자신은 상처 받기 두려워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점점 내 자신을 거부하고 있는 듯 합니다. 사람들을 내 삶에 끌어들인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 일줄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 했습니다. 틴에이저 영화에 질리는 당신일지라도 이 영화 [고스트 월드]는 충분히 당신의 호감과 공감을 동시에 살만한 영화입니다.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 처럼 사회의 첫발을 내 놓은 이니드(도라 버치)와 레베카(스칼렛 조한슨) 이들의 모습은 영 불안해 보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등수에 따라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바뀌고, 점수에 따라서 취급이 달라집니다. 눈에 뜨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눈에 안 뜨는 사람도 있길 마련입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감이 없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서 계산을 하고 지레 겁을 먹고 도전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니드가 사랑에 빠진 세이무어(스티븐 부세미)도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 영화에는 이제 더 이상 버스가 다니지 않는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그리고 거리에 그냥 방치된 청바지 하나도 등장하지요) 영화가 끝날 무렵 그곳에 버스가 서지만 그 할아버지에게 달라진 것이라고는 없습니다(그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히 올 것이 마침내 온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 할아버지에게는 상대방의 충고가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곳에서는 버스가 서지 않는다고 말해도..' 그 할아버지의 귀에는 그건 소음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언제나 솔직하게 표현하는 이니드이지만 그것이 상대방이 아닌 자신에게 조금씩 상처를 주고 있다는 걸 모든 걸 잊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영화 속 이니드처럼(모든 사람이 그런 것 아니지만..저 같은 사람만 그럴지도 모르지요) 버려야 할 것과 잡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저 현실 앞에서 충동적이고 어리석게 보이는 행동만 되풀이 할 뿐입니다. 눈에 띄게 감상적인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남들을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걸 알게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단짝 친구 레베카는 너무나 몰라줍니다. 레베카의 유일한 관심사는 그토록 원하는 독립 뿐입니다. 레베카와는 달리 그토록 원하던 독립 앞에서 이니드는 자꾸만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만 합니다. 그 전에는 그것만 이루어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그것이 자신에게 과분한 짐인 동시에 부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영화 [고스트 월드]는 은근히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는 재미는 톡쏘는 재미가 아니라 가슴을 은근히 찌르는 그런 재미입니다. 세상을 다 살아본 듯한 이니드의 냉소에 가득찬 말은 시종일관 영화를 유쾌하게 만듭니다. 그녀의 행동들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일 뿐 더러 정상인의 상식과는 벗어난 돌출행동을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신을 포장하여서 남을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들과 별로 다를 바 없겠지요.

이 영화 [고스트 월드]를 보고 나면 가슴 한편으로는 우울함이라는 감정이 밀려와서 기분이 심드렁해집니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그녀가 가진 고독은 저를 미칠 정도로 외롭게 만듭니다. 이제 성인으로 넘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일부로 강한 척을 하지만 너무나 애처롭게 보이는 건 아마 내 눈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모습에 공감하는 건 저 역시도 가끔은 그런 돌발적인 행동을 하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불행히도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어릴 적 했던 꿈들은 어디간에 내버려두고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발버둥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억울한 건 그렇게 살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미소짓고 굽실거리고 싶지 않은 상대방에게 그런 억지스러운 감정들을 만들어 내냐 한다는 점입니다. 그녀가 살고 싶은 세계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들로만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반대의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자신만의 '고스트 월드'에 갇혀서 그녀는 정작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주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내모습은 아직까지 그대로인데 사람들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여야 할텐데 그 사람의 단점만이 보이는 이상한 시각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게 그녀입니다. 그리고 입이 언제나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대책 없고 어른이 되기 싫은 아이의 투정 같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그녀는 할아버지처럼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 안에 갇아두었던 것들을 버리고 행선지를 모르는 버스를 올라탑니다. 그녀가 내린 정류장 앞에 놓은 것인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 그녀가 가고 있는 그 길이 험하지 않기를 그저 두손 모아 기도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사족

중간중간 이니드의 일기장은 실제 스태프의 일기장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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