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 윌 비 블러드, 유전업자의 최후

영화감상평

데어 윌 비 블러드, 유전업자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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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먼 배경에 'There Will Be Blood' 라는 흰 색깔의 중세시대 기독경에나 볼만한 글씨체가 새겨졌고, 페인트가 흘러내린 것 같은 모양이다. 오로지 두 가지 색깔로만 이뤄진 영화의 제목 제시방식은 2007년에 찍힌 영화로 느껴지지 않는 어색함을 나에게 던진다. 이어지는 도입부에서 여러 암시와 함께 죽은 인부의 아기를 주인공이 데려가는 서사가 시작된다.

수직갱에서 곡괭이로 벽을 두드리던 구레나룻 성한 사나이는 금을 탐사하다 낙상을 입는다. 그러고도 ‘there she is’를 내뱉으며 갱 바닥의 금덩어리를 골라서는 애벌레마냥 기어나간다. 이후 계약서에 'Daniel Plainview'를 휘갈긴다. Daniel은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의 이름이다. 기독경에 나오는 예언자의 이름, plain과 view 가 합쳐진 성씨 - 로 이뤄진 그의 이름 다니엘 플레인뷰는 영화 제목의 글씨체와 중세 기독경 글씨체의 유사성이 암시를 형성한다.

이후 인부와 함께 바닥을 파던 다니엘 플레인뷰는 구레나룻은 사라졌고 콧수염만이 남았다. 그렇지만 금덩어리는커녕 시커먼 흙덩어리만을 퍼올릴 뿐이다. 원유로 눈길을 돌린 그는 금광에 쓰던 거중기에 대못을 매달아 박아 보고서는, 석유가 솟아남을 확인하곤 기뻐한다. 아이를 가진 인부는 그의 일을 거든다. 그러다, 원유 못 앞에서 양동이에 담긴 석유를 붓고는 뜬금없이 집게손가락으로 원유를 찍어서 아가의 머리에 찍는다. 이후 원유를 한꺼번에 퍼올리다 무너지는 거중기에 그 인부는 운명한다. 옆에 있던 플레인뷰는 피와 원유가 묻은 얼굴로 아가를 바라본다. 아가가 울자, 젖병의 주둥이에 보드카를 적셔서는, 입가로 들이민다. 아가는 외면하고는, 가죽침대에 몸을 파묻고 운다. 아가의 머리에 원유를 찍은 아버지의 죽음, 보드카에 적신 젖병, 아가의 통곡이 암시를 형성한다.

이어지는 기차 씬에서, 아버지가 아가를 뉘이던 가죽침대에 앉은 아가와 좌석에 앉은 플레인뷰 둘만이 남아 있다. 거기서, 아가가 플레인뷰의 양복자락을 부여잡자, 고개를 숙이고 은은한 눈길로 내려다보는 플레인뷰, 그런 그를 올려다보고 한참 눈을 마주치던 아가는, 그의 콧수염을 만지작거린다.


영화는 도입부에 던진 암시들을 기독교 목사 일리아, 경쟁자, 양아들의 청각장애, 이복형제, 기독교근본주의자 농장주 밴시와 얽히며 이어지는 서사로 이어나가며 층위를 높여나간다. 그 과정에서 별다른 대사는 없지만 전체 상징구조에서 주연 다니엘 플레인뷰나 악연 일리아 선데이 못지않은 무게감을 차지하는 조연이 플레인뷰의 양아들이자, 죽은 인부의 아들이다. 그는 H.W.

플레인뷰의 유전에서 가스가 폭발했을 때, 몸은 무사했지만 청력을 잃고 만다. 처음에 땅을 구할 때, 아들이 아파서 그랬노라고 거짓말을 쳤던 것이 진실이 되고 만 것이다. 염소우유를 먹으면 귀가 좋아질 거라고, 억지로 먹인다. 청력을 잃은 H.W.는 반항끼가 부쩍 늘었다.

그 때에 플레인뷰의 이복동생이 온다. H.W.는 아무도 없을 때 그의 일기를 들춰보다 한 여자의 사진을 발견한다. 그 날 밤, H.W.는 일기와 이복동생의 일기와 옷가지에 불을 붙여 버린다. 깨어난 플레인뷰와 이복동생이 허겁지겁 불을 껐을 때, 문가에서 서성이며 아버지를 보던 H.W.는 밤중의 사막으로 도망치다 붙잡힌다.

다음 날, 플레인뷰는 기차에 아들을 앉혀서는, 역무원에게 무어라 하고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슬쩍 내리고 만다. 그렇게 아들을 보낸 플레인뷰는, 자신에게 찾아온 경쟁자에게서 돈을 적당히 받으려다, 아들에 대한 언급을 참지 못하고 겁박을 주고선,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다. 이후 경쟁자의 경쟁자 유니언 오일사에 석유를 팔아넘긴다.

이후 이복동생과 놀던 플레인뷰는 동생의 거동이 수상함을 느낀다. 어느 날, 밴시의 농장에서 질문을 하자, 사기꾼이었음을 자백한다. 이에 그를 죽여서 매장시켜 버린다. 그리곤 이복동생의 일기를 들춰보며, 흐느끼다 잠든다. 다음 날 아침, 토주 밴시가 범행에 사용된 권총을 들이민다. 불리한 처지에 내몰린 플레인뷰는 밴시의 요구에 따라 교회에 나간다.

청각장애 아들을 고칠 수 있다는 헛된 희망 끝에 두들겨패준 악연 일리아가 연단에 플레인뷰의 무릎을 꿇리고선, 광기어린 의식을 행한다. 네 녀석은 여색을 즐겼으며, 자식을 포기했다. 네 아이, 네가 키웠던 것을 네 녀석은 포기했다. 그가 아프기 때문에. 그래서 네녀석은 죄인이야. 말해! 나는 죄인이라고. 이에 플레인뷰의 표정은 부아가 치민다. 하지만, 작은 목소리에 그친다. 그러자, 더 크게 말하라고 한다. 한 번 숨을 들이킨 플레인뷰, 저는 죄인입니다. 더 크게! 다니엘! 나는 죄인이다! 저는 죄인입니다. 오 주님 죄송해. 난 보혈을 원해. 네 녀석은 네 아이를 포기했어! 전 제 아이를 포기했습니다. 나는 타락하지 않겠다! 저는 절대 타락하지 않겠습니다. 난 잃었다. 하지만 찾았다. 전 잃었습니다. 하지만 찾았습니다. 난 내 아이를 포기했다. 플레인뷰의 표정이 굳어지고 숨이 가빠진다. 말해! 말해! 이에 입술을 다문 채 이를 악물던 플레인뷰, 양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번민하다 딴 곳을 바라보며, 전 제 자식을 포기했습니다. 더 크게 말해! 더 크게 말해! 전 제 자식을 포기했습니다! 얼굴이 온통 빨개진 채 고성으로 그 대사를 반복하는 플레인뷰. 보혈을 구하라! 보혈을 주세요, 일라이. 나가게 해 주세요. 보혈 주세요, 주님. 그래서 나가게 해주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는가? 토 나올 듯하다 자세를 고친 플레인뷰, 네 그렇습니다. 물러가라! 사탄아! 외마디와 함께 플레인뷰의 뺨을 후려갈긴다. 저로 하여금 주님의 권능을 느끼게 해주세요, 일라이. 물 만난 고기처럼 뺨을 후려갈긴다. 의식의 종국에 이르러 보혈의 씻김을 받고 밴시의 땅을 얻은 플레인뷰는, 악연에도 불구하고 일리아에게 거금을 헌금한다.

아들에 대한 애타는 걱정에서 비롯된 일리아에 대한 분노도 모자라서, 아들을 버렸다고 단정짓는 일라이의 만행에 불구하고 보혈을 위해 참았으며, 이후 천연덕스럽게 헌금을 하는 모습은 아버지의 죽음이다. 치열한 경쟁 와중에 이복동생을 죽였고, 그것 때문에 토지 협상을 할 예정이었던 밴시에게 몰리게 된 상황이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로서의 일차적 정당성을 파괴한다.

이후 밴시의 땅은 플레인뷰의 손으로 넘어왔고, 한참 송유관을 건설할 무렵 아들도 농아학교에서 돌아왔다. 플레인뷰는 H.W.를 껴안다 따귀와 배를 두들겨맞고 물러선 후 숨을 돌려야 했다. 이후 아들을 잘 차려입히고는, 경쟁자가 오자, 자신의 사업과 가족 모두 아주 잘 있음을 강조하며, 콧대를 눌러준다. 아들이 아버지를 패는 행동과, 플레인뷰가 아들을 이용하는 것은 우울한 암시를 형성한다. 아들은 동정을 견디기 싫어하는 플레인뷰의 경쟁심에 놀아나는 존재에 불과한가?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대저택에 살고 있던 그에게 아들이 통역사와 함께 찾아와서는, 독립하여 애인 마리와 함께 멕시코로 떠나서 유전사업을 하겠다고 한다. 플레인뷰는 아들에게 경쟁자가 될 셈이냐고 한다. 이에 아들은 당신이 참 완고하다고, 내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자, 플레인뷰는 네 녀석은 내 아들이 아니라고 선언해버린다. 아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실이었다고 한다. 플레인뷰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지난 모든 세월동안 자신의 아들이 자신에 대해 증오를 차곡차곡 쌓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어야 했었다는 후회와 함께, 네 녀석 따위는 애초부터 자식이 아니었고, 다른 이유 없이 그저 땅을 사기 위해 데려왔을 뿐이라며 한 마디 한 마디 잔인한 넋두리를 아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내뱉는다.

여기서 주목할 핵심 대사는 ‘You have none of me in you.’다. 이 대사가 두 번이나 등장했다. 내 것이 없다? 이전의 대사에서, ‘아들로서의 내 이미지’를 깼다고 한다. 이젠 그것이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당신이 참 완고하다고, 당신이 시키는 대로 살지 않겠다는 아들의 독립의지는 플레인뷰의 ‘아들의 이미지’에 대한 소유관계를 파기해 버렸고, 한술 더 떠서 경쟁자까지 되려는 아들은 그가 그토록 증오하고, 그들로부터 지키려 하던 ‘아들의 이미지’마저 파괴해 버린 것이다. 이젠 아들은 그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아들이 떠난 후 잠깐 나타나는 다니엘의 회상 장면에서, 아들이 모자를 돌려주지 않고 잠시 쥐는 모습은 그래서 아프다. 도입부에서 다니엘의 수염을 잡아당기던 아기 때의 모습과도 연결된다. 그런 아들의 얼굴을 함부로 밀친 다니엘.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된 비극이었다.

이후 과거의 악연 일리아 선데이가 궁상맞게도 돈을 빌리러 온다. 플레인뷰의 사업에 제 이름자 갖다붙여서 축원을 하려고 하질 않나, 기도하면 아들 귀 낫는다더니 그러질 못해서 두들겨맞지 않나, 이복동생을 죽였다가 토지 협상 대상자이던 밴시에게 걸려서 주님의 보혈을 구실삼아 아들을 버렸다고, 네놈은 죄인이라고 뺨을 패질 않나. 거기에, 바로 전에 아들이 떠났는데 찾아오는 센스는 무엇인가.

증오로 들끓던 플레인뷰는 일리아의 처지를 이용하여 ‘저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라고 목청높여 고백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이전에 ‘저는 죄인입니다’ 라느니 ‘전 아이를 포기했습니다’ 라고 말할 것을 강요당했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플레인뷰는 일리아를 패지는 않았지만, 네 몫은 없다고 선언한다. 절망에 빠진 일리아에게, 폴이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 괴롭히지 말라고 울부짖는 일리아를 볼링장 코스 위로 팽개치고 자신이 제 3 계시임을 선언한다. 네 녀석을 먹어 치우겠다며, 볼링핀을 휘두른다. 한 대 맞은 일리아가 뻗자, 더 강하게 후려친다. 일리아의 깨진 머리의 틈으로 피가 흘러나온다.

<제 3 계시> 교는 일리아가 이끌던 종교이다. 이것이 다니엘의 자본과 만나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그런 종교를 자신이라고 선언하고는, 일리아를 먹어치우겠다며 죽여 버린다.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라며 용서해 달라는 일리아의 비굴한 대사는, 자본가 다니엘과 종교인 일리아의 유착관계를 상징한다. 이것은 10년 전 양쪽이 보혈을 통해 신앙의 미명하에 토지와 자본을 맞교환했을 때에는 성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돈이 떨어진 종교인 일리아는 자본가 다니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무엇보다, 다니엘이 아들을 버렸으므로 죄인이라는 것을 말할 것을 강요하고 능욕하던 것을 참기란 어렵고, 잊기도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일리아의 불리한 처지를 이용하여 거짓 선지자 고백을 유도한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당시에 능욕을 참을 수 있었던 것도, 아들과 함께 잘 살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아들에게는 매몰차게 대했지만, 기차에 아들을 태워 보냈을 때에는 눈물을 보이지 않느라 참아야만 했다. 그토록 소중했던 아들은 정말로 그를 떠나가고 말았다. 이 처절한 상실감은 종교인 일리아의 거짓 선지자 고백 앞에서, 폭주하여 살인으로 이어진다.

타락한 종교는 더 이상 인간의 안식처가 되지 못했고, 유일한 위안을 잃은 자본가는 안식처의 기능을 상실한 자본과 다를 바 없는 종교를 살해하고 먹어치워 버린다. 이젠 정말 끝났다 - 아들은 떠나갔고, 그것을 능욕한 자도 죽었다. 이젠 희망도 증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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