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망년회보다 더 좋은 이 영화 “스트레인져 댄 픽션”
이런 젠장~ 또 한 해가 다 갔다.
매번 시계를 볼 때마다 분침은 한결같이
째깍째깍 얌전한 보폭으로 느릿느릿 걷기만 하는데,
눈 돌려 잠시만 몇 가지 일로 허둥대다보면
금세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한해가 가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명수 세월은 너무 빠르게 지나친다.
모두가 연말정산 하느라 바쁜 이때에
장부상의 숫자는 복잡하디 복잡한데 내 인생의 궤적은 왜 이리 심플한지,
헛걸음에 헛발질에...뭐하나 번듯이 남겨 놓은 게 없으니...
유유자적의 삶은 꿈도 못 꿔보고 눈감고 내달린 인생.
먼지 나도록 땀나도록 뛰었건만 다람쥐쳇바퀴처럼 늘 제자리 뜀뛰기다.
그냥 단순히 우리가족 간신히 먹고 사는 것으로 위안 삼는
겸연쩍은 웃음을 언제까지 지어야 할까?
허황된 피라미드 쌓기 식의 성과중심 삶을 따르지 말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둘째의 발걸음에 기뻐하고
“아빠 힘내세요.”를 열창하는 아이들의 재롱에 웃으면서
“텔미~ 텔미~ 테테테테...”를 춤추며 부르는 3 살배기 아이의 파격에 놀라기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우리만의 행복을 겹겹이 쌓으며 살자는 고마운 와이프의
푸근해지는 겨울철 손난로성 멘트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딴 곳에 한눈파는 나.
늘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하고 품에 넘치는 많은 것을 감싸 안으려는
묻지마식 욕망은 불안한 마음이 비껴주는 틈을 찾기에 여념이 없으니
모든 성취와 성과를 전리품 나누듯 나열하는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그 욕구에 굴복하고 냉큼 자리를 내주고 만다.
그렇게 들여앉힌 빌어먹을 욕망은 그 자리를 숙주 삼아
하염없는 욕심과 대책 없는 눈높이의 싹을 틔우니
어느새 담을 뒤덮는 넝쿨처럼
가진 것에 대한 감사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슬쩍 묻어버리고는
끝 모를 목표에만 매달리게 해 결국엔 또 한해를 잡아먹도록 한다.
왜 매번 속기만 하는지...
시험 전날 저녁 잠깐의 단잠으로 활력을 충전하려 했던 47등 학생이
끝내 겨울잠 자듯 긴 잠자다 깬 아침의 허망함같이
속절없는 깊은 한숨만 일드, 미드처럼 시리즈로 밀려온다.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이 닦는 횟수도 넥타이 매는 것까지도 효율성을 따지며
심지어 출근 길 걸음의 수까지도 정확히 맞추어
한 치에 오차 없이 똑같은 8시 17분 버스를 타는 크릭.
국세청 최고참으로서 하루에 7134건의 보고서를 처리하고
1417x89의 답을 묻는 동료 질문에 간단히 대답해줄 정도로 주도면밀하고 유능하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심경과 행동을 이미 아는 듯 설명해주는 정체불명의 여자 목소리였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자신의 일상을 써라운드로 생중계하는 즉석 애드립에
도로 중앙선에 걸쳐 갈피 못 잡는 강아지마냥 초조, 불안으로 잡탕을 끓이는 크릭.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졸지에 취급주의 정신병자급의 예우를 받으시니
맨 정신 주인공, 진짜로 미치기 일보직전이다.
자 거기에다 정체불명의 목소리, 회심의 라스트 펀치를 먹이는데
성실, 원리원칙의 화신 우리의 주인공 크릭이
죽게 된다는 독도성 망언을 날리고야만다.
보험해지 다음날 암 선고 받는 것 같은 당혹감에 사로잡힌 크릭은
뜬금없는 죽음의 출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억울해하며
그때서야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크릭의 인생은 어떻게 될것인가?...........
계속될 것 같은 삶 속에서 "죽음" 그것은 늘 급작스러운 존재다.
시간을 예고하는 죽음이나 부지불식간의 죽음이나 황망하기는 매한가지다.
항상 목덜미를 낚아채는 야수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완벽한 삶을 살 수 없는 인간의 한계 때문아닐까?
무결점의 삶을 사는 것 같은 크릭의 인생
그는 죽음 앞에서 "인생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숨이 붙어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똑같을 것이다.
소설가 칼비노의 말을 인용해 더스틴 호프만은 말한다.
"문학은 크게 2가지로 정의된다네. 비극과 희극.
삶의 연속성과 죽음의 필연성."
비극과 희극...
어쨌든 삶은 계속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자 내일 당장 죽어야 한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처럼 천년만년 살 것같이 물 흘리며 살 것인가?
“스트레인져 댄 픽션 (stranger than fiction)"
“소설보다 이상한” 다소 엉뚱한 제목의 이 영화는
앞서 말한 분위기처럼 연말 우울성 증후군의 블랙모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생기발랄하고 신선하기만 하다.
이놈은 코미디, 로맨틱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 어정쩡한 위치에 엉거주춤 서있지만
그렇다고 컨셉 잃은 술고래 아저씨의 걸음걸이처럼
갈지자 행보로 보는 이를 고문하는 그런 고혈압유발성 영화 또한 아니다.
실험적이기는 하지만 난해하지 않고 쉽게 흘러가지만 그리 가볍지는 않은
뭐라 분류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할까?
늘 연말이 되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송년회, 망년회가 넘쳐난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역시 잘 맞이하자는 취지의 그것이
술집 사장님께는 희망찬 미래를 보장할지 모르지만
도로에 전 부치고 앉아 연신 "육두문자 랩"하시는 그 분들껜 뭐가 그리 유익한지...
잘하자고 하는 그 행사가 새해를 집이 아닌 거리에서 맞게 하고
맛난 아내표 아침상 엎게 할 쏠림현상과 다각적 두통만을 줄 뿐이지
과연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보다 이상한" 이 영화는
그 망할 망년회가 주는 메시지보다는 더 한 것을 줄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 번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할지도.....
혹시 아는가? 크릭처럼 삶을 바꿀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