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 용서란 결국 자신이 자유롭기 위함인 것을...
상처가 치유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누구나 마음의 안정을 원한다.
누구나 고통보다는 평안을 원한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을때, 우리가 선택할 수있는 길이란 많지 않은 듯 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종교가 아닐까?
세상을 초월한 어떤 존재를 믿음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고, 평안을 얻으려는 행위를 비난할 수도, 비난 해서도 안되겠지만, 치유와 안정이 아닌 되려 더욱 깊은 배신감만 얻게 된다면 어쩌란 말인가?
용서한다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저주를 퍼붓는 심정이 어찌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는가.
정말 용서해야지 하면서도 끝내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이세상에서는 도저히 용서가 안될 것만 같은 것을 어쩌란말인가.
끝없이 상실감을 겪으며 자연스레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는 보상심리를 우리는 어쩔 수 없다.
처참하게 살며 괴로워하고 있을 그를 위해 내가 베풀어야지 하는 최소한의 우월감마저 하느님께 그 순위를 빼앗겨버렸을 때의 괴로움과 허망함은 어떨까?
때문에 하느님께 분풀이라도 해보지만, 그마저도 상처를 치유하기는 커녕 그 깊이만 더해가게 할 뿐이다.
도둑질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는 하느님 말씀을 거역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베푸는 자리를 훼방놓음으로써 잠시간의 자기만족과 희열은 느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오히려 안에서부터 자신이 황폐해져가고 망가져가고 있었지 않은가.
그렇기에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하느님의 말씀 중 가장 실행하기 힘든 것이 "원수를 사랑하라" 는 것이지만, 힘든 만큼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었을 때, 얻게되는 마음의 평화가 어떠할 것인지를 말이다.
용서라는 행위를 함으로써 우리는 진정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며,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용서란 결국 자신이 자유롭기 위한 최선의 행동임을 기억해야 한다.
끝내 용서하지 못하고 영원히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자신을 황폐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정말 힘들고 괴롭겠지만 진정으로 용서를 함으로써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날 것인가.
잘못을 저지른 죄인뿐만 아니라 아무 잘못도 없을 그 핏줄들마저도 용서가 안되는 뿌리깊은 원한이지만,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용서를 함으로써 자신을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친구도, 가족도, 하느님도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뿐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세상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옆을 지키고 서있음도 잊지 말자.
신애는 자신이 인간임을 깨달은 순간에 비로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죠. 걍 어린 양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기로 결심한 것 뿐입니다.
신애 같은 경우 용서란 해탈하지 않거나 자신을 양으로 취급하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걍 인간으로 사는거죠
그리고 끝장면의 미용실에서도...용서하려는 갈등을 좀 보이다가...그냥 박차고 나옵니다...그렇다고..살인범의 딸에게 손찌검을 한다든지..복수는 안하지만...그렇다고 더 이상 어줍잖게 용서하려 들지도 않지요....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냥 자신을 받아들인 겁니다...자신의 머리를 잘라내면서...거울을 통해...자신의 진짜 내면을 받아들이면서....그 후에 진짜 신애의 신앙생활이 시작될겁니다...신애는 진짜로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습니다...하늘을 그렇게 자주 쒜려보는 거...미친사람아닌 이상은 그렇게 진지하게 못합니다...절대적인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