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놈..
보고나서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연 30분이 안잘리고 온전히 남아있었다면 작품의 질이 올라갔을까?
이 작품도 그간의 마블, 소니 영화처럼 CG와 액션은 흠잡을 데가 없다. 허나 영화 특성상 가장 중요한
'유대감'이라는 요소가 결여돼 있다. (그렇다고 설정이나 개연성이 양호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순히
잔인해서,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해 편집한 거라면 너무 큰 희생을 한 거라는 느낌이 든다. 분명 그 30분
안에도 '한방'이라고 할 만한 씬은 없을 거라고 예상되지만 작품에 여유와 차분함을 제공하기엔
충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스포 구간)
제작진은 주인공과 베놈의 관계를 '애증'으로 표현하려 했겠지만 개인적으로 느껴진 감정은 '계륵'이었다.
왜냐면 둘은 감정적으로 접착이 되기도 전에 서로에게 영향을 받았느니 너의 고뇌를 이해하느니 하며 너무
급한 친교(?)를 감행하기 때문이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감정선을 따라 공감하게끔 해야 하거늘 같은
몸이라는 이유로 일사천리로 친밀감을 조성해댄다. 문제는 그 사이사이에 공백과 구멍까지 있다는 건데
가령 베놈이 주인공의 몸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내가 고칠 수 있어!' 거리길래 어떻게
갈등을 해소시키나 기대했더니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고, 여주인공은 여지껏 부작용으로 수없는 사람을
죽인 심비오트를 품고 와서는 주인공에게 전달하는 칼뱅의 예정론급 히로인 포스를 보여주며, 막판에는
베놈이 뜬금없이 '우리 행성에서 난 찌질이지만 여기선 킹왕짱이니 지구를 지키겠어' 하며 슈퍼맨 삘나는
커밍아웃을 시전하는 게 참... 이러니 막바지에 베놈이 자폭 비스무리한 행동을 했을 때 주인공이
'베놈, 노~~!!!' 하는 게 와닿을 리가... 공생관계라기보단 철저히 상대방을 이용하는 인상이 강했고,
아웃풋만 봐서는 그게 사실인 것 같다.
스파이더맨이 없는 심비오트에 대한 설정이 부담스러웠을 수는 있지만 너무 서두른 것 같다. 소재만 봐서는
명작 만화 '기생수'처럼 인구과부화에 대한 극단적 피드백의 성격을 띌 수 있었겠지만 가공 부분에서 영
하자를 보인 듯하다. 여주인공의 대사 '말은 적게, 키스는 많이.'처럼 너무 즐길거리에만 치중한 게 아닐까?
우디 헤럴슨이 등장하는 속편은 그동안 몸둥이 찜질당한만큼 정신차리고 만들고, 편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