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말싸움
펌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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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경상도에서 20년 살은 토박이다.
물론, 우리가족 전부 경상도 토박이들이다.
내가 6살인가 7살 때쯤이었다. 내가 말싸움을 배우기 시작한 시즌이었다.
난 유치원 친구들과 말싸움이 붙었다. 말싸움의 시초는 내가 여자 아이의
머리 끄댕이를 잡아당긴 데부터 시작되었다.
여자 아이 : 야~! 왜 내 머리 잡아땡기노~
나 : 미안, 그냥! ㅋㅋㅋㅋ
여자 아이 : 미안하다카믄 다가~!
헉쓰, 저런 엄청난 발언을!!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말이지만 그 당시 나의 지능수준으로는
그 여자 아이의 말에 되받아칠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난 첫 번째 말싸움에서 무참하게 패하고 "미안하다카믄 다가~!" 라는
필살기를 숙지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나른한 주말....
아버지와 난 쇼파에 나란히 누워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근데, 아버지가 장난친다고 미는 바람에 난 쇼파에서 떨어졌다.
나 : 아부지, 와카노? 아부지가 밀어가꼬 떨졌잖아!
아부지 : 미안. ㅋㅋㅋㅋ
난 이때, 일주일 전에 습득한 필살기가 번쩍 떠올랐다.
그래! 그 말을 쓰는 거야!!
자, 받아라! 나의 말싸움 제 첫 번째 신공!!
나 : 미안하다카믄 다가~!
자, 어때요! 할 말 없죠!! 할 말 없죠!!
아버지가 난처해 하시는 표정을 상상하며 난 필살기를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을 깨는 아버지의 말씀.
아부지 : 미안하다카믄 다지! 뭐, 우야라꼬??
순간, 난 패닉 상태에 빠졌다. 나의 필살기를 저렇게 간단히 되받아
치실 줄이야...
난 아무 말도 못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한테 말싸움으로 무참히 깨진 사건 이후, 난 우연찮게 또 다른
필살기를 습득하게 되었다.
유치원에서 노는데, 어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사이에 말싸움이 붙은
것이었다.
남자 아이는 지가 잘났다고 말도 안되는 변명을 침 튀겨가며 이야기할 때
여자 아이는 간단한 말 한마디로 그 싸움을 종결시켰다.
여자아이 : 그래, 니 잘났다!
남자 아이는 순간, 패닉 상태에 빠졌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남자 아이가 불쌍해 보였다.
순간, 이거다 싶었다.
'그래, 니 잘났다!' 이거 하나면 끝이야!!
그 필살기를 습득한 이후로 난 수없이 그 말을 되뇌이며 연습, 또 연습한
결과, 완벽한 발음과 억양 그리고 간사한 표정까지 덤으로 연마할 수 있었다.
난 이제 말싸움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제물이 될만한 놈이 나타났다.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어떤 시덥잖은 녀석이 나타나서 내 그림에
딴지를 거는 것이었다.
"여긴 이렇게 그리는 게 아니네, 다리가 왜 이 모양이네?" 하며 별 시덥잖은
딴지를 걸며 내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참다참다 한계까지 오른 나... 아무래도 필살기를 쓸 상황이 온 것 같았다.
좋아~ 장전! 가는 거야!!
나 : 그래. 니 잘났다! ㅋㅋㅋㅋ
상대의 패닉 상태를 기대하며 난, 그 동안 연마해온 필살기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표정까지 정확히 전달해 주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을 깬 그 녀석의 말 한마디...
남자아이 : 그래, 내 잘났고 니 몬났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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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 이후로 난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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