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자막제작이란,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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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자막제작이란, 완전...

S 줄리아노 18 1818 6

완전 노가다 인거 같습니다.


어쩌다 친구 놈이 영화자막을 만들어 보겠다기에

'구래? 그거 얼케 하는 건데?' 그랬더니... 어쩌고 저쩌고...

한 마디도 못 알아 먹을 얘기들만 하더군요.


나름 고전영화를 꿰고 살아온 연차도 있고(지금, 고전이 되었지만)

영화 얘기라면 어디나 코를 들이미는, 자칭 영화광이기에...

"그럼 나도 함 매달려 봐?' 이런 실수를...


뻔한 싸구려 영화 스토리처럼

친구 놈은 뻥 만 치고 시작도 못하고 때려치고

저만 술, 친구 다 잃고 고립무원에 남았네요.

담배를 끊어 보겠다던 결심은

독수리 타법도 아닌, 병아리 타법 (벙어리 장갑을 끼고 쳐도 비슷하겠네요)

키보드위에 내린 재를 불어낼때 마다 가슴을 저며오고 

바쁜 일과중 남는 시간은 이 놈이 다가져가

수면시간은 처참히 줄어들었지요.


초반 몇 편은 신기한듯 같이 봐주던

맘씨 착한 마눌하는, 이젠...

'이 화상아! 이제 고만 좀 하지?'하는 눈빛이죠.


한번은 영자막도 없는 놈을 붙들고, 씽크까지 맞추다

때려치고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도

오기로 다시 보고 듣고... 또 지쳐 쓰러지니

이건 뭐, 자학도 이런 자학이 없습니다.


퀭 해진 내 얼굴을 거울에서 만날 때면

흠짓 놀라며 '황금 팔의 프랭크 시내트라' 나 

'잃어버린 주말의 레이 밀란드'를 떠 올립니다. 


그래도 찾고 공부하고, 관련된 책은 모조리 읽어가며 

너무 원 대사표현이 좋아서 눈물을 훔치며 감동하기도 하고

끝장을 보리라, 마지막 대사 한 줄을 넣으면서

족히 100번은 더 본 것 같은 영화 한편을

오롯이 가슴에 담는 아득한 느낌도 가져 봅니다.


그럴 땐 여기 이곳에 조용히 들어와 

비슷한 느낌들의 글을 찾고, 미소 짓다가 가곤 하지요.


그래도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본 그 수많은 영화들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혹은

그 너무 영화를 사랑해서든... 

모두 누군가에 의해 이런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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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Comments
17 바스붐  
영화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

이렇게 정성과 시간을 들여서 자막을 만드는데
가져가는 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막 가져가는걸 보면 속상하기도해요
S 줄리아노  
그냥 넋두리 한마디가 길어진 것에
정성스런 덧글이 더 감사합니다.
덕분에 용기 내어 작업 분을 올려보려 합니다.

"비록 부족하나 장단지 뚜껑으로 쓰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 김부식, 진삼국사표 中
43 Hoony™  
자막 제작자분들... 존경합니다 ㅜ.ㅜ
S 줄리아노  
존경은 잔소리 삼가해주는 가족들에게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존경은
이런 허허로운 마음들과
따듯한 심성의 회원들을 모으고 다독이고
살림살이까지 이끌어가시는 운영자님께 모두 돌립니다...
진심입니다.                              (뭔 시상식 수상소감?)
S MacCyber  
제가 가끔 언급했는데 자막 제작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홀로 싸워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죠. ^^
빨리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씽크도 손 보려면 영화 한 편에
적어도 사나흘은 꼬박 매달려야 하죠.
그거 안 하면 더 즐거운 일, 더 편한 일 아니면 마음 편히 쉴 수도 있는 시간인데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자괴감도 생기고요. ㅎ
하지만 그러면서도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자막 제작의 매력이 있죠.
S 줄리아노  
맞습니다.
시간 과의 싸움이죠.

영화중 언급에  단테의 신곡이 나와
작업을 멈추고 신곡을 연옥편까지 읽었습니다, 한달 반이 걸렸고
에우리피데스를 읽는 데는 두 달이 걸렸습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휘리릭~ 자막을 만드시는
분들을 늘 부러워했습니다. (절대, 비꼬는게 아닙니다)
영화의 말들만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혼자 좋아서 택한 거지만

그냥 영화 감상자일 땐
"영화는 나의 영원한 스승이야"라고 상투적으로 말했지만
자막 제작을 하고 부턴 영화는 "아주 엄한 매를 든 스승"처럼 느껴집니다.
17 Fyou  
자막도 팀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번역팀/타임라인팀/최종교정팀/릴팀/....이렇게...
릴팀과 자막팀은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인데...현재를 서로 눈을 부라리고 있죠
많은 자막팀이 자생해야 살수있습니다...서로 경쟁적으로....
그래서 자막팀들이 자신들만의 색깔을 가지게 되겠죠.. 미드/일드/중드/다큐/...이런 다양한 자신들만이 개성을 가진 자막팀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지금은 웬지 고인물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잡아갈라나 ㅡ,ㅡ;;
그래도 지금 이대로론 영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S 줄리아노  
전 자꾸 흑백 고전으로 애착을 두게 되는데요...
(제 자신의 색깔이 우중충해서?)

특히 고전영화는 내가 한번 손대면
그 누구도 다시 수정 보완하지 않습니다.
'나의 이 작업이 끝이다' 라는 생각이어야겠습니다.

예로,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의 '젊은 사자들(1958)'의
마지막 대사 부분은 번역이 의미의 완전 반대로 만들어져
수 십년간 그대로 감상되어 오고있습니다.(어색하게 느끼신분도 있으실겁니다)

어떤 오역을 꼬집자는게 아니라
전체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의 작업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8 꼬꼬랑1  
공감이 가는 글들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S 줄리아노  
공감만 느끼시고
한 번 권해보고 싶진 않네요.

위의 맥님 말씀대로 상당히 중독성 있습니다...^^
26 티거  
글에서 그동안의 괴로움들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ㅠㅠ
개인소장용으로 싱크만 맞출때도 무척 힘들고 번거롭다라는걸 느끼는데 하물며...

이 글을 빌어 자막제작자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S 줄리아노  
고수님들 많으신데
다시 한번 외람된 사과를 올립니다.

저역시 많은 제작자님들을 통해
울고 웃었던 소년같은 감상자였으니까요...

이젠 저도 받은 행복을 다시
되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저도 선 제작자님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10 원조가시버시  
자막 제작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매번 수고가 많으십니다. 보는 사람 입장이야, 싱크가 안 맞네, 자막이 저게 뭐냐?
불평만 하지만 만드신 분들의 노고는 이해해야합니다. 저도 영화광이지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1 혀니버터  
앞으로 자막을 읽을 때면 줄리아노님 처럼 고생하셨을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볼 수 있을것 같네요.
너무나 당연하게 자막을 찾으면서도 막상 자막을 제작하셨을 분들의 노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32 내별명은앤  
그쵸?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어요.

저도 몇 번 너무 엉망인 자막을 혼자 수정해서 소장하려고 몇 번 해 본 적이 있는데..
죽는 줄 알았어요. 그 이후로 다시는 안 해요. 아니 못 해요..ㅠ_ㅠ

그나저나 고생 많으셨습니다, 줄리아노님.^^
S 줄리아노  
앤 님, 늘
따듯한 님의 다른 댓글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딱 한가지! 그 수정하려는 영화에 대한
애정 이지요, 누군가는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거야...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그런 마음요.
1 톳치  
저는 공포영호광이라 공포영화 한글자막 좀 만들려고요...영자막으로 맨날 그냥 혼자 보고 말아버리는데, 잼있고 괜찮은 작품들은 좋아하는 분들하고 공유해서 보고싶더라고요ㅜㅜ 공포영화는 한국에서는 개봉도 별로 안하고 비주류라...진짜 잼있는거 많은데, 아쉽다능 ㅎㅎ
4 쇼지  
아무것도 모르고 자막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만드시는 과정을 상상해 보니 무척이나 애쓰시겠다 싶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