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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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1 황정한 0 1866 0
- 노숙자 -
이 장희.

밤하늘에는 달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지하철역 광장 의자는 아저씨를 잠을 재우려 한다.
아저씨는 잠들기 위해 매일 소주 주둥이를 입술로 핥는다.
하루를 더하는 일은 금을 캐는 일같이 어렵게만 보인다.
매일 시간을 주워 담지 못하고 빨리 버리려만 한다.
태양의 눈동자를 외면하는 버릇 때문인지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보는 일이 더 익숙해 보인다.
아침밥대신 아침햇살을 품으며 끼니를 걸은 것 같이 보인다.
겨울은 봄 등살에 밀려 떠나갔지만 아저씨의 옷차림은 겨울이다.
지상에는 봄꽃들이 활짝 피어 웃고 있지만
지하철역 광장 의자엔 아저씨 몸에 눌려 봄꽃은 피지 않는다.
아저씨가 데려온 겨울만이 움츠리고 있을 뿐이다.
곁에 봄은 머뭇거릴 뿐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봄이 아저씨 주위를 맴도는 덕분에
아저씨의 노숙은 활기를 얻은 것 같아 보인다.
노숙을 가슴에 품은 사연은 소주병 속에 감추곤 한다.
언제부터 노숙을 했는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낮잠을 잘 때마다 강을 그리워했는지 모르고
빌딩 옥상만 손에 꽉 쥐고 있을지 모른다.
아저씨 마음속엔 바다도 없고, 산도 없어 보인다.
역 광장 의자 곁이 바다이고, 산이다.
한때 세상을 거머쥐고 살았을 아저씨
아저씨의 그림자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림자마저 아저씨 곁을 떠나려고 준비한다.
아픔과 슬픔을 소주병에 담아 마시는 애틋함
몸속으로 소주를 꾹꾹 채우는 아득한 저녁
일 년 같은 하루를 보내는 아저씨의 고뇌
지하철 막차가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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