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언제나 나를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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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언제나 나를 보고있다.

1 흰곰 1 6463 1

출근길 차 안에서


아내가 정성스레 타준 커피를 우아하게 마시다


앞차의 급정거로 홀라당 쏟아 호들갑이란게 뭔지를 제대로 보여준


아침의 무용담을 말하고 있을 때,


커피가 뜨거워서 혼났다는 말을 들은 4살 갓 넘긴 둘째가 대뜸 말한다.


"아빠, 누구? 누구한테 혼났어?"


"ㅎㅎㅎ 커피한테 혼났다,ㅎㅎㅎ"


"커피한테? 왜?"


이 녀석은 늘 이런 식이다.


언젠가는 "아이 씨~" 짜증내는 이 놈한테


국어학자의 심정으로 "아이 참~ 해야지! 아이 씨 안돼" 혼냈는데


한참 지난 어느 날,


친구에게 지리를 설명하다 불쑥 튀어나온 "중동ic"라는 말에


정색하며 "아빠 아이씨 하면 안돼! 아이 참 해야지~" 나를 타이른다.


아무것도 모를 것같은 눈망울과 어설픈 발음으로


태연히 말하는 날카로운 지적이 왜 이렇게 신기한지...


앵무새처럼 이 사람 저사람 어투를 흉내 내다가


스나이퍼의 정확한 총알같이 날아드는 예리한 말을 만날 때면


순간적인 놀람으로 하하 웃음이 나다가도 뒷통수를 가만히 누르는 뭔가가 느껴진다.


홍길동의 한을 풀기 위해 가르쳤던 아버지, 어머니 호칭 교육으로


다니던 어린이 집에 존댓말 쓰기 열풍을 불어 넣은 우리 둘째에겐


나의 얇디 얇은 위선적 가르침은 맹장염에 소화제마냥


뭐 하나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아~ 이쯤되니


링컨 대통령이 말씀하신 40대 너머 책임져야 할 자신의 얼굴보다


의도치 않은 내 망할 인생의 부스러기로 인해 치부와 같이 속속 드러나는,


친절히 반복 학습된 아들의 행동이 더 무서워진다.


까짓거 흠많은 인생


투 엑스라지 박스t로도 감출 수 없는 뱃살처럼


넘쳐나는 내 삶의 허술함이야 어찌 숨길 수 있으랴 마는


혹 광대한 길을 가야하는 아들의 발목 잡을 수 있는


미천한 유산을 기어코 남기고야 마는 내 자신이 두렵다.


고대 중국 여성에게 행해졌던 전족의 관습처럼


나 또한 내 아들에게 얽매인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멀리가지 못하고 뛰지 못하게 하는 전족과도 같은 습관을 물려 줄까봐


정말이지 무섭단 말이다.


눈 감고 자고 있는 천사같은 녀석들...


아빠라는 단어를 제대로 말하기 위해 4000번을 고치고 고치며 말했던 이 아가들 앞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하나?


삶으로 가르친 것만이 남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곧 눈 뜰 아들녀석들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은 몹시 안타깝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환한 웃음으로 해맑은 그 볼에 뽀뽀 할테지만


그리 환하지 않은 내 인생 그림자를 감출 수 없는 지금을 어떻게 해야할지....


내 아들들은 나를 언제나 보고있다.


볼품없이 벌거벗은 내 몸뚱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젠장,


턱시도에 정장이 아니라도 좋다.


누가 팬티라도 던져주었으면 좋겠는데...


정말 나는 부끄러운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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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0 사라만두  
어린이에게 자극을 받고 자가반성중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충분하진 않더라도, 이미 그것만으로도 된게 아닐까요?
일련의 과정중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터인데 말이죠.
아직 결혼도 안해본 놈이 내 일 아니라도 함부로 말해봅니다.. 하하 -_-